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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Mar 22. 2021

청일점

군대에 가다

아빠는 유난히 아들을 좋아하셨다. 엄마도 아들바라기셨다.


아빠의 생신 때였다. 모두 다 모여서 맛있게 소고기를 먹었다. 그날 계산은 큰딸인 내가 했다. 아니, 나의 남편이 했다. 남편 입장에서 본 처가 식구들은 장인어른, 장모님, 처제 하나 다른 처제는 서울에서 오지 못했다. 그리고 둘째 처제의 남편인 동서, 그리고 그네들의 아이들. 더하기 형님(울 오빠)과 그의 처(나의 새언니)


더하기 나의 남동생의 아내인 동생 댁.


남자는 생신 당사자인 아빠, 그리고 두 명의 사위 모두 셋이었다. 소고기 회식이니 가격도 상당히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 여기서 아빠께서 주목하신 빠진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오빠와 남동생이었다. 둘은 그날 무슨 중요한 일이 있다고 못 왔던 것이었다.


그날 맛있게 드시던 아빠의 한마디로 나는 남편에게 오래도록 죄인이 되고 말았다.


다 껄짝들만 있네.


정말 너무 심한 언사셨다. 그 일은 잊히지 않고 오래도록 상처로 남았다. 이제 다시는 아빠하고 말 안 해야지 하다가 다시 화해 모드가 되기도 했다. 나야 괜찮지만 남편과 동생 남편은 무슨 수모란 말인지 나의 아빠지만 부끄러워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다. 우린 다 껄짝(화투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는 패)이 되고 만 사건이었다.


당사자인 아빠께서는 항상 그렇게 당당하셨다. 그래서 나는 아빠를 많이 미워했다. 큰딸이라고 나를 예뻐하셨지만 가치관이 달라도 너무 다르고 정치적 견해도 완전히 달라서 우리는 대통령 선거 때마다 다퉜다. 나의 음식 이야기에 등장하신 아빠는 정겹고 요리도 곧잘  주시는 분이시다. 그런 분이지만 보수적인 사고를 지닌 대표적 인물이셨다. 그런 분도 세월호 사건을 겪으신  자신이 지지하던 정당에 등을 돌리시긴 하셨다.


그래도 오늘은 아빠가 유독 생각나는 날이었다. 바로 우리 집안 하나밖에 없는 아들 손주가 군입대를 했다.


나는 5형제자매다. 오빠, 나, 여동생, 여동생, 남동생. 혹시 눈치챘다면 오빠 이후 딸 셋을 내리 낳으셨다는 것을 알 것이다. 혹시나 하면 또 딸이었다 한다. 마지막으로 아들을 낳으신 후 엄마는 기세 등등하셨다. 딸 셋 중 별반 사랑을 받지 못한 것 같은 나의 여동생들은 아빠께 효녀였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말년에 아빠의 거동이 불편하셨을 때 두 딸은 아빠 머리 염색이며 목욕까지도 해 드렸다는 것을 밝힌다. 나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먼저 결혼해 딸 둘을 낳았다. 그러자 계속 모두 딸 둘을 낳았다. 언젠가 언급한 것 같은데 아빠께서는 나의 큰딸을 몹시 예뻐하셨다. 첫 손주였기 때문이다.


태어난 산부인과 수술실부터 차로 이동한 경로 그리고 마지막 우리 아파트까지 촬영하셨다. 그 후로는 아이 어릴 적 매일같이 촬영하셔서 나중에 비디오로 만들어 주셨다. 이젠 비디오를 볼 수 없어 아쉽다.


그러나 자식들이 그 후로 내리 딸만 낳자 어느 날 나에게


모두 네 탓이다. 스타트가 잘못되었어.


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하필이면 청소년이 된 나의 섬세한 큰딸이 들었다. 그 후로 나의 딸에게 할아버지의 점수는 꽝이 되고 말았다. 첫 손주에게 할아버지는 불공정하고 보수적인 어른으로 보였음이 당연하다.


어느 날 우리 집안에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막둥이 남동생이 세 아이를 낳았는데 하나가 아들이다. 드디어 나의 아빠는 어깨를 펴시고 그 아이를 항상 끼고 다니고 싶어 하셨다. 열하나 손주 중에 손자가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나의 큰 딸이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아빠는 손녀를 데리고 가셔서 백화점에서 금 목걸이를 사 주셨다. 지금도 딸의 목에는 할아버지의 목걸이가 있다. 그러니 미워할 수 없는 아빠였다.


아빠의 장례식날 눈이 왕방울만 한 남동생의 아들이자 나의 조카는 세상 슬픈 얼굴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 우리만큼이나 슬픈 것 같았다.


그 아이가 오늘 군대에 들어갔다. 그러니 오늘 나도 아침부터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입대하러 가는 차 속에서 나에게 전화가 왔다.


고모, 저 괜찮아요. 잘 다녀올게요.


아빠가 계셨다면 조카 녀석 손을 잡고 우시 고도 남으셨을 것이다. 아들 없는 나는 군 입대시키는 부모 심정을 잘 모른다. 그저 우리 조카가 무사히 성숙한 모습으로 건강하게 다녀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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