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씨Luce Apr 06. 2021

사람은 사랑이 없이도 살 수가 있나요?

자기 앞의 생


<자기 앞의 생>은 1975년에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된 소설로 로맹 가리라는 작가가 쓴 것이다.



2017.7.30.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이 없이도
살 수가 있나요?(p.8)


모모(모하메드)라는 열 살 소년이 주인공인데 모모의 실제 나이는 열네 살이다. 유태인 로자 아줌마는 창녀의 아이들을 대신 양육해 주며 살아간다. 아랍인 모모의 나이를 속여서 출생신고를 했으므로 모모는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게 된다.  로자 아줌마와 모모는 서로에게 엄마와 아들과 같은 존재가 된다. 소설의 후반부에서야 비로소 모모의 출생의 진실이 밝혀진다.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삶. 자기 앞에 놓인 삶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내 앞에 놓인 삶을 생각하며 소설을 읽다 보면 내가 모모가 되고 로자 아줌마가 되고 하밀 할아버지가 된다. 로자 부인이 정신이 나가 몹시 추하고 괴물 같은 나체의 몸으로 창녀 시절 행동을 보일 때 모모는 "방 한 구석에 주저앉아서 그녀를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164).'  그것이 모모가 그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방향 방감각을 잃고 아이 같은 순진한 얼굴로 나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시는 엄마, 의사인 아들이 그 병원은 그쪽 전문이 아니니 가셔 봤자 아무 소용없으니 다른 병원 가셔야 한다는데도 이모가 가 보라고 했다고 끝내 우기고 가셔서 뻔한 이야기 계속하시는 엄마, 내가 어떻게 해 드리지도 못하는 속수무책인 내 앞에 놓인 삶을 생각하고 눈물이 마구 흐른다. 나 역시 후일 점점 추한 노인이 될 것이라는 형체 없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서글픔이 밀려온다.

며칠 전 엄마가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로자 아줌마의 증세와 약간 비슷한데 뇌에 피와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뇌경색이시다. 병원 계신 엄마에게 갔는데 전주역 방향이 이쪽이냐 저쪽이냐. 물어보신다. 응 엄마 이쪽이야. 그럼 10초도 안 지나 또 물으신다. 다른 것은 모르겠는데 방향 감각이 일단 아주 좋지 않으신 듯하다. 나머지 다른 것들은 다 나보다 나으시다. 오늘이 며칠인지 그런 걸 진짜 잘 맞추셔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신다.

아빠가 지난가을 돌아가신 후 부쩍 상태가 안 좋으시다. 운동 신경에서는 다섯 걸음도 못 가셔서 주저앉으신다. 걱정이다. 덕진공원 연꽃을 보러 엄마를 모시고 갔다.

우리가 살 나머지 인생 중 지금 현재가 가장 젊다. 엄마도 나도. 장마로 숨이 막히게 습하고 덥더니 다행스럽게 덕진공원 간 날은 그늘에 있으면 공기가 맑고 바람도 있어 좋았다. 엄마는 딱 두 세 걸음 걸으면 주저앉고 주저앉아서 아무 돌멩이 위에나 앉으셨다. 엄마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몹시 괴롭다. 거기에 지난가을 돌아가신 아빠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우리가 사는 삶이란 대체 무엇인가 반문하게 된다.

외로움이란 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감정은 아니다. 냉정하고 얌체로 알려진 우리 아이들이 키우는 고양이도 며칠 주인이 나갔다 오면 다가와 머리를 비빈다. 인간이 서로를 찾지 않는 요즘에는 자신들의 외로움을 달래려 반려견이나 반려묘들을 원한다.

흔히 말하는 반려동물을 키울 때 드는 책임감과 경비 그리고 귀찮음을 무릅쓸 만큼 외로움이 몰려올 때면 반려묘나 강아지를 분양하는 곳에 들락 거리는 것이다.

모모는 모모가 사는 '집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쉬뻬르의 보다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쉬뻬르를 다른 사람에게 주고 말았다.(25)' 그리고 그 대가로 받은 돈 5백 프랑을 하수구에 처박고 울며 집으로 온다. 자신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나 강아지 쉬뻬르가 살기엔 이 집은 시궁창과 같았다. 모모는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랑을 아는 아이다.

'개에게도 외로움이란 감정이 있고 더 나은 삶을 가질 권리가 있지만 사람은 오히려 그런 권리를 박탈당한다. 로자 부인이 암캐였다면 벌써 그녀를 안락사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개한테 더 잘해주기 때문에 사람이 고통 없이 안락사하게는 하지 않는 것이다.(113)'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의 '뇌 과학'이라는 강연을 유튜브로 들은 적이 있다.

외국의 실험에서 젊은 시절 간질병에 걸린 환자의 뇌에서 해마가 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했더니 5분에 한 번씩 기억이 재부팅되어 할아버지가 된 자신의 모습이 왜 그런지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지 왜 지금 여기 있는지 알 수 없다면 그는 더 이상 그 자신일까 의문스럽다. 정체성이란 기억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작가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소설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생에 긍정적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는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로맹 가리는 부모가 이혼 후 어머니와 살았으며 그 자신은 두 번 결혼을 했다고 하는데 특히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매우 큰 것 같다. 로자 부인에 대한 사랑을 보면 그렇다.

 <자기 앞의 생>이 필명으로 발표되고 4년 후 두 번째 아내 진 세버그가 죽었다.  그녀는 흑인 인권 운동가로서 로맹 가리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지만 부부 갈등으로 둘은 이미 이혼 상태였다.

그녀의 죽음에 미국 FBI 가 관여했다고 로맹 가리는 주장 했다고 한다. 진 세버그가 죽은 이듬해 12월 로맹 가리는 스스로 죽었다. 로맹 가리는 어쩌면 진 세버그를 몹시 사랑했던 것이 아닐까. 진실이야 어떠하든 나는 그의 죽음에 그녀의 죽음이 연관 지어 떠 올려진다.

몇 년 전 엄마는 심각하게 아프셨다. 그리고 지금은 거동이 조금 불편하지만 신기하게 나으셨다. 엄마에게도 기적이 찾아온 것이다.


나 자신의 삶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게 된다면 살 가치가 있을까.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친구는 말한다. 그때를 대비해서 우선 저금을 잘해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양홍도화


소설의 첫 부분에서 하밀 할아버지에게 모모가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냐고 묻는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에 스스로 대답한다.


'하밀 할아버지가 사람은 사랑할 사람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한 말이 옳은 것 같다. -------- 나난드 아줌마는 나에게 세상을 거꾸로 돌아가게 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 사랑이 무엇인가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법이다. 사랑해야 한다.'(270)


과거 어느 시점으로 거꾸로 돌아가서 내 앞의 생을 더 멋지게 만들 수 있을까? 거꾸로.


시간을 돌려 거꾸로 돌아갈 수 없다면, 사진첩을 열거나 타인의 사진첩을 들여다보거나 침잠된 기억의 행복했던 순간을 찾아보면 된다.

단독주택의 서부해당화


오늘 나는 타인의 글과 사진첩을 돌며 행복한 밤을 맞았다. 그리고 엄마가 아프셨던 과거를 돌아보았다. 지금 행복하다.


엄마는 건강하시고 가족도 모두 건강하다. 감사합니다.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행복의 여운을 지니고 일찌감치 누워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