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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May 27. 2021

나의 이모

앵두와 딸과 이모

앵두 같은 내 입술 예쁘기도 하지요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반짝

동생이 새벽 출근 전에 들려 딴 앵두

우리 큰딸, 어릴 때 하도 말을 조리 있게 잘하고 입모양새도 예뻐서 사람들이 '앵두입술'이라고 했다. 그러면 노래를 부르면서 손을 반짝반짝 돌렸다. 이제 다 커서 엄마에게 용돈을 부쳐준다.

남동생이 이모네 집의 앵두를 따서 <꿈꾸는 마당>에 두고 갔다. 큰딸의 '앵두 입술' 노래로 시작한 이유는 앵두나무의 주인인 이모의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이모는 평생 애지 중지 가꿔온 정원과 텃밭을 떠나시게 되었다. 9년 투석 생활 끝에 너무 힘드셔서 서울 딸에게 가시기로 하셨다. 얼마나 깔끔하고 부지런하신지 투석을 하고 오신 날도 텃밭의 풀을 뽑으셨다.


이모가 정원의 장미를 <꿈꾸는 마당>에 옮길 건지 물으셨다. 이모의 집은 팔렸다. 다음 주에 이모가 떠나신다. 새로운 집주인은 그 집을 허물고 다시 짓는다고 한다.


나의 공간에는 장미가 여러 그루라서 포화상태다. 작약이 예뻐서 작약이나 한그루 옮겨볼까 생각 중이다. 이모를 그리는 식물 한그루나마 나의 마당에 심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여겨져서다. 이모에게 나의 공간에서 식사를 하시자 했지만 한사코 움직이시기 싫으시다고 하신다.

나는 네 큰딸, 그 녀석이나 한번 보고 싶다.
어찌나 귀엽고 야무진지 자꾸 생각이 나.
커서도 예쁘더라


이모는 내 얼굴은 안 봐도 되지만 나의 큰딸은 꼭 만나고 싶다고 하신다. 투석을 가시는 날이지만 새벽에 일어나셔서 남동생이 도착하기도 전에 앵두를 따고 계셨다고 한다.



이모는 서울의 명문 영문과를 나오셨고 엄마는 교원을 양성하는 대학을 나오셨다. 외 할머님 연세 41세와 42세에 연달아 태어난 자매는 평생 쌍둥이처럼 지냈다. 두 분 다 고향을 떠나 전주에 터를 잡고 자식들을 키워냈다. 엄마는 '너희 이모가'이게 좋다고 한다, '너희 이모'가 그 병원 좋단다.


하시면서 모든 것들을 이모와 말씀을 나누시면서 살아오셨다.


지난번 엄마를 만났을 때 쭈글쭈글 주름진 나의 엄마가 이모의 이야기를 또 하시면서 세월의 덧없음을 이야기하셨다.


여고시절 학교에 다녀오면 둘이서 마루에 드러누워 놀았던 이야기며, 함께 별을 본 이야기를 하실 때 엄마는 그 시절로 돌아가신 듯했다.


이모네가 우리 집보다 훨씬 부유해서 어릴 적에 땅 넓은 시내의 이모 집에 가면 사촌동생들이 부러웠다. 우리 아빠는 시골의 농부셨고, 이모부는 대학 교수셨다. 사는 형편이 다르니 이모집에 가면 주눅이 들었다. 사촌 동생의 방에 실험 비커들을 보았을 때 부러웠다. 뭔가 있어 보였다. 이모의 집에는 동화책도 많았는데 그곳에서 읽은 것이 <눈의 여왕>이다. 차가운 눈의 여왕은 고혹적이었다. 심장이 쫄깃하면서도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이모와 이모부는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셨다. 이모의 성격이 나의 아버지와 닮아서 다혈질이시다. 이모는 당신 성격이 좋지 않아도 스스로 인정하신다.



우리 딸이 내 성격 안 닮고 지 아빠 닮았잖냐. 그래서 내가 우리 00이 있는 곳으로 가는 거야. 엄마, 우리 좋은 말만 해요~라고
다정하게 말해



꿈 많은 여고시절을 보내고 청춘의 대학을 함께 서울에서 보낸 엄마가 고생만 하는 것이 못내 불만이었던 이모였다. 항상 나의 아버지에 대해서 좋은 언급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 해도 우리 집에 놀러 오시는 것을 그만두시지는 않았다. 자주 오신 편이시다.


나는 너희 이모부 졸까 봐서 이모부 운전하면 절대 안 졸아.


항상 그렇게 웃으면서 말씀하시던 이모가 딱 한번 졸으신 날 교통사고가 났다. 사고를 당하신 후 이모부는 다시 뵐 수 없이 돌아가셨다. 이모는 이모부 사진을 매일 쓰다듬고 매일 저녁 사진과 이야기를 하면서 15년을 살아오셨다. 그중 투석은 9년이니 아프신 중에 더욱 이모부가 보고 싶으셨을 것이다.


나의 이모부는 성격이 정말 정말 좋으신 분이셨다. 특히 이모에게 말이다. 이모가 아프다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밤새 팔다리를 주물러 주셨다.




이제 이모부도 아빠도 모두 떠나셨다. 이모와 엄마만 서로 의지하고 살았다. 이모가 서울로 가신다면 다시는 전주로 오실 수 없을 것 같다고 엄마는 최근에 우울한 상태가 되셨다. 투석을 오래 하셔서 아주 마르셨고 잘 걷지도 못 하신다. 울 엄마 역시 걷기도 힘드시다.


두 분께서 요즘 기분이 좋지 않으셔서 걱정이다.


엄마는 이모와 함께 나의 <꿈꾸는 마당>에 오시고 싶어 하셨다. 이모는 정리의 달인이자 물건이 어질러진 상태를 싫어하시는 깔끔하신 성격이다. 분명히 정리가 안 된 상태에 대해 잔소리도 하실 것이었다. 더구나 두 분이 건강도 좋지 않으시다. 공사가 완벽히 마무리된 후에 두 분을 모시고 싶어서 미루던 중에 그만 이모 집이 팔리고 급하게 서울로 가시게 된 것이다.

이모의 깔끔한 텃밭

이모에게 함께 식사하자고 말씀드렸지만 일주일에 세 번 투석하시고 하루 코로나 백신 맞으시니 주말은 정말 쉬고 싶으시단다.


이번 주말에 공사가 마무리된다.


엄마, 남동생, 여동생 넷이 만나서 마당에서 고기라도 구워 먹어야겠다.


엄마와 이모에게는 전화가 있는 좋은 세상이니 자주 연락하시고 지내시라고 위로를 할 밖에 다른 묘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무 농약 이모의 앵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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