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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Aug 12. 2021

살려면 해야 하는 것

여름을 보내며

평균 수명이 연장되었다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몸의 여러 기관들은 평생 작동되어 왔기 때문에 노화 현상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여성들은 갱년기를 지나게 되면서 호르몬의 변화를 겪습니다. 몸의 달라짐을 뼈 아프게 느끼기 마련입니다.


갱년기


사람들은 저에게 아직도 팔팔한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런 저 역시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호르몬의 변화로 고생하던 때, 여기저기 아프고 힘들어서 병원에 갔습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세요. 그게 살 길이에요.
 몸이 축 늘어지려고 하는 순간
더 걸어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의 답변이었습니다. 죽지 않으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오십이 넘는 순간 삶이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호르몬 변화로 더욱 감정적이 되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하느라 나이만 먹었을까 싶었습니다. 여자 나이 묻는 건 실례라는 말이 있지요. 스스로 나이 이야기를 하지만 누가 물으면 화들짝 놀랍니다. 육십이 다 되는 나이가 되어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팔십 넘게 살아도 그때도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사놓고 읽지 않은 책, 무르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동료에게 먼저 빌려줬습니다. 다 읽은 동료가 제게 "이상하고 자유로운 000 선생님, 꼭 선생님의 초판 북 같습니다."라고 합니다. 읽지는 않았지만 저도 이상하고 자유롭게 늙어가고 싶답니다. 그러니 칭찬으로 들립니다. 제가 첫 책을 낸다면 그런 느낌일 것 같다 하니 더욱 궁금합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을 이후 제 삶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계단도 잘 오르지 못하게 무릎이 좋지 않았건만 지금은 아주 씩씩해진 편입니다.


저에게 운동은 무엇일까요. 정원의 꽃과 나무를 가꾸기 시작한 후로 웃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팔은 근육이 늘었고 새카맣게 타서 딸이 말하기를 아빠 피부색과 같다고 합니다.


잔디를 깎는 것도 운동입니다. 주말에는 둘레길 걷기나 가벼운 등산을 합니다. 모든 것들이 저에게 활력을 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편이 되었습니다.


살기 위해 열심히 궁리하니 기분도 나아졌습니다. 산과 들로 쏘다니는 계절 중, 유별난 계절은 여름입니다. 계곡에서 노는 아이들, 파도에 몸을 맡긴 이들, 얼음에 물이 방울방울 맺힌 음료, 이러한 것들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얻습니다.



여름과 가을


입추가 지나니 아침저녁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여름을 보내려니 아쉽습니다. 여름바다, 초록빛 산, 수박, 복숭아, 시원한 맥주가 그리울 것 같습니다.


제주 여름. 2021.
제주


제주 함덕해수욕장


천은사 산책로/ 내변산
친구의 과수원에서 수확한 황도와 백도 비슷한 품종.
텃밭에서 딴 것들. 아쉽지만 수박은 익지 않아서 못 먹었다.



메멘토 모리


그래도 다가올 가을을 긍정으로 맞이하고자 합니다.


가을은 저에게 삶과 죽음을 동시에 연상시키는 계절입니다. 큰아이가 태어나고 아빠가 돌아가신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이란 그림을 소개합니다.

그림은 인간이 지닌 한계, 죽음을 왜곡된 해골의 이미지로 표현합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그림의 자세한 설명은 아래에 첨부합니다. 그림의 등장인물은 한때 잘 나가는 대사와 모든 권력을 지녔던 주교입니다. 이렇게 지성과 명예를 지닌 인간이라 할지라도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그림의 가운데에 해골을 비틀어 놓아 설명하고 있습니다. 죽지 않는 인간은 없습니다.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



삶은 우리에게 늘 기쁨만 주지는 않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바로 곁에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고통 없이 죽는다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할머니는 치매로, 아빠는 폐가 굳는 병으로 가실 때 모두 힘들어하셨기 때문입니다.


살기 위해 축 처진 몸을 일으켜 걷기 시작하고 부지런히 꽃들을 살피니 모험의 하루하루가 되었습니다.


짧다 생각하면 짧은 그러나 어찌 보면 긴 인생길입니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 힐링할 만한 무엇인가를 찾는다면 인생이 그리 허전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엄마


최근 등산을 갔는데 하필 그 순간 배낭 속에 전화를 두었어요. 친정엄마께서 전화를 하셨는데 전화를 받지 못했답니다. 내려와서 전화를 드리니 또 우시는 겁니다.


왜 그러시냐고 여쭈니까 머리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서 자식들에게 전화하니까 다 안 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복지관에서 알고 지내셨던 분께서 운전하여 병원을 가셨는데 혈압이 200이 넘으셨다고 하더군요. 고혈압 약을 드시는 데도 순간 혈압이 그렇게 높았으니 메슥거리고 머리가 아프셨을 만합니다.


방광염은 합병증이 생길 경우 매우 위험한가 봅니다. 놀라셨을 텐데 위급한 순간에 자식들이 전화를 받지 않으니 서러우셨나 봅니다. 엄마께 죄송했습니다. 링거 하나 맞고 조치를 취해서 지금은 괜찮으시다고 했습니다.


저는 마구 우셔서 그 순간도 아프신 줄 알았거든요. 결국 병원에서 링거 맞으시고 저의 공간에 오셔서 쉬다가 가셨습니다. 제 공간에 오시면 좋아하셔서 다행인데 자주 오시지는 못하니 아쉽게 생각하십니다.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는 한, 나는 아프면 그냥 내가 차 불러서 병원 가야지. 택시 불러 못 걸으면 119 불러야지.' 하고 말입니다. 자식들이 멀리 서울에 있으며, 남편도 자주 여행을 떠나거나 농막에 가 있으니 독립적이 될 수밖에 없답니다.


그런데 엄마는 119를 부르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답니다. 바로 아빠가 119에 실려가셨고, 그때 엄마가 함께 차에 타고 가셨기 때문에 그 순간이 떠 오른다고 하십니다. 엄마 심정도 이해가 갑니다. 그날 엄마는 옷을 입은 채 실례를 하셨더군요. 엄마의 속옷을 빨면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오늘 포스트는 바로 엄마를 생각하며, 또 아빠를 그리며 쓰게 되었습니다.








그림 출처:구글

https://www.google.com/am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0/28/2016102801554.html%3FoutputType%3D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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