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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뭔지

늦잠 자는 루씨의 아침

by 루씨

"엄마, 실내 인테리어가 밋밋해졌어. 여기 있던 엄마가 색칠한 가구는 어디로 갔어?"


실내 인테리어


무거운 캐리어를 내려놓으면서 서울서 내려온 딸이 하는 말이다. 나였다면 옷이나 그런 것으로 가득했을 딸의 캐리어는 반 이상이 보드게임 상자들이다. 캐리어를 무겁게 들고 온 이유가 저 보드게임 때문이라니 나는 참으로 이해 불가능이다.


"그거? 너무 어수선하게 보인다고 해서 창고 쪽으로 이동했지." 하고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그거 완전 느낌 있고 정말 좋았는데. 지금은 그냥 너무 공방 같잖아." 하고 딸이 말한다.


"그래? 엄마가 원래 다른 건 알아서 잘했는데 요즘은 여기 오면 사람들이 자기들 취향대로 말하고 심지어 옮겨놓기도 해. 엄마가 팔랑귀 되어서 미안해. 그리고 엄마가 그림 가르쳐야 하는데 사람들이 뭘 어떻게 그리는지 알아야 하니까 그림 위주로 하다 보니 그러네." 하고 대답했다. (창고 쪽을 더 버릴 것을 버리고 옮겨간 나의 앤틱 가구를 잘 살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변명을 한다. 정말이지 인테리어에 걸린 시간이 몇 개월 안 된 데다가 조금 내부 정리하다 텃밭 보고, 조금 정리하다 정원 관리하느라 바쁘다. 그래서인가? 내부 정리가 안 되어 손님들이 오면 그분들이 이걸 이쪽으로 하면 좋겠다고 하면 바로 팔랑귀가 되어 옮기게 된다.


딸이 내가 만든 빨간 커튼을 찾아서 흰색 탁자 위를 덮는다.


"그래, 여기 공간은 그냥 자기들이 머물 때 좋은 대로 하는 거지 뭐. 잘했다." 하고 칭찬한다.


보드게임


보드게임을 몽땅 가지고 왔다가 못 한 딸은 다음부터는 절대 안 가져오겠다고 했었다. 그래 놓고 혹시나 하고 다시 들고 내려오는데, 정작 아빠나 엄마는 주말에 바쁘다. 나의 경우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렵기만 한 게임에 장단을 맞출 시간이 없었다.


코로나 시대 이후 보드게임을 더 좋아하기 시작한 딸은 다양한 보드게임을 구매했다. 본시 딸은 모든 게임을 아주 좋아한다. 지난번에는 닌텐도를 즐겨서 엄마와 춤춘다고 가져왔다. 상당히 운동도 되고 즐거웠다. 딱 한 번밖에 못 해서 딸이 실망하고 올라갔다. 재미는 있었는데 나는 뭐가 그리 바빴는지 더는 못 했다.


큰 딸은 특히, 한때 <오버워치> 광팬이었다. 지금은 취준생 동생에게 그 영역을 넘기고 본인은 <보드게임>에 몰두한다. 취준생일 때는 무엇인가 몰두하면서 멍 때릴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큰딸의 논리다. 어차피 자소서 쓰고 합불을 기다려야 하는 초조한 시간이기 때문이란다.


반면, 큰딸은 주말이면 셋이나 넷이 캠핑을 가고 함께 보드게임을 한단다. 게임이라면 여러 종류를 즐긴다. 스포츠를 안 해서 그 점이 걱정이기는 하다. 어릴 적에도 퍼즐을 엎었다가 다시 끼우기를 반복하고, 미로 찾기 책을 엄청 좋아해서 두 가지만 있으면 몇 시간씩 잘 보냈다.

딸의 서울 근교 템플 스테이. 이 곳에서는 보드는 안 하고 힐링만 즐겼다고 한다.
수시로 다니는 캠핑, 요즘 캠핑은 참 시설 좋은 곳이 많다.
차에서 놀면서 보드게임하기. 딸을 보면 소확행이 뭔지 알겠다.
엄청난 난이도로 보이는 보드게임


나는 정말이지 게임이란 게임은 다 싫어한다. 돌이켜보니 두세 번 게임에 빠진 적이 있다. 맨 처음은 시댁에서 고스톱을 치다가 경을 친 경우다. 이미 브런치 매거진 <따뜻한 식탁>에 올려진 이야기다.


https://brunch.co.kr/@campo/204


그다음은 큰딸이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백 단 깨고 완벽에 이른 게임이 있다. 바로 <보글보글>이다. 빨간색 옷인가 모자를 쓴 아이를 계단을 올려 업 시키는 게임이었다. 실은 이름도 잊어버렸다. 딸에게 물어보니 신이 났다.


우리 딸이 돌이켜 본 실내에서의 생활 중 최애 가족 타임이라고 한다. (환경 단체에 엄마 아빠가 함께 다녔기 때문에 실외 가족 타임은 꽤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집에서 마땅한 대화가 부족했던 당시에 엄마가 퇴근하면 곧바로 겉옷만 벗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보글보글'게임을 하고 하고, 엄마가 하고 있으면 아빠가 퇴근해서 겉옷만 벗고 뒤에서 훈수를 두었다고 한다. 가족이 모두 한마음으로 게임을 했으며 이는 어른이어도 동심이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농막에 가서 바쁜 아빠는 빼고, 저녁 늦게, 9시 넘어서 나의 공간에서 딸과 보드게임을 시작했다. 아빠가 만든 파덕 테이블이 보드 게임하기 딱 좋다면서 신이 난단다. 여기서 함께 노는 건 엄마인 난데, 딸은 또다시 아빠를 향해 애정이 샘솟는다.


어렵게만 생각했던 게임들이 재밌었다. 원래 리액션도 좋지만 쉬운 <내 마음의 주파수>를 하다 보니 박장대소하게 된다. 서울에서 동생과 하는데 '잔소리꾼'이라고 한 것에 '엄마'를 곧바로 맞춰서 둘이 웃었단다.



참 억울하다. 나는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이것들이(!) 그렇게 생각했다니 말이다. 하여튼 둘 다 아빠 편이다. 아빠는 아이들의 마음을 세상 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꼬치꼬치

물어보지도 않고 아이들이 물어보면 아주 간단히 말한다. 마음속에 아이들을 믿는 믿음이 나보다 큰 것 같다. 원래가 말이 없고 해야 할 말만 하는 사람이니 당연하다. (아이들 말이 엄마는 심한 편이 아니라서 약간 중간으로 화살표가 갔다고 위로한다. 병 주고 약 준다.)


우리 집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것은 오로지 나 하나였다. 둘 중 비교하면 내가 정말 잔소리를 했음을 시인한다.


하여튼 보드게임은 성공적으로 즐겁게 했다. 특히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가장 즐거웠다. 내가 좋아하는 투명한 컬러 주사위를 실컷 던지며 놀았다. 참말로 다른 집들은 엄마가 아이에게 함께 해 줬으면 한다는데 우리 집은 반대라서 미안한 심정도 있었다. 그런데 진심으로 재밌었다. 딸은 나의 심각한 표정을 캠코더에 담아 나중에 보면서 웃는다.



딸에게


다정한 나의 딸, 사랑한다. 다음에는 가족 모두가 앉아서 꼭 우리 딸의 최애 시간을 만들게. 딸이 일 번이다. 자식이 일 번이다. 우리 딸에게 두 번째 집에서의 최애 시간을 가지도록 할게.


우리 딸, 고맙고 예쁘고 사랑한다. 엄마 눈 나빠지는

데 안 자고 뭐하냐고 잔소리하더니 금세 잘도 잔다.


내일 주말이잖아. 걱정 마~~^^



<루씨의 아침> 매거진은 주말에 편히 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늦잠 한번 자 볼까요? 아침은 언제나 즐겁지만 주말 아침은 특히 즐겁지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2021.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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