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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Feb 12. 2021

문화 충격, 시댁과 친정의 다른 설 놀이 문화

윷이요~, 옛다 고도리다


설 아침이면 제사상을 물린 후 어른들께 세배를 드린다. 그 후 돗자리를 넓게 펴고 윷놀이를 했다. 아빠께서 직접 깎으신 말(윷놀이의 장기)로 했다.


기억에 의하면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에 엄마도 앉으셔서 함께 이런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아마 그 전에는 엄마는 윷놀이하실 짬을 내시기 어려웠던 것 같다.


우리들 오 남매, 엄마 아빠. 총 여덟이 편을 짜서 했지만 누가 누구 편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왁자지껄 하하 호호하면서 엄청 웃다가 토라지다가 그랬던 것 같다. 특히 마지막에 목적지에 다 달았을 때에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우리 집의 룰을 이야기하자면, 다음 상황일 때 제일 가슴을 졸였다.


한 개만 나와야 최종적으로 빠져나오는 상태일 때, 도(1)가 나와야 하는데 퇴(2)나 걸(3), 또는 윷(4)이나 모(5)가 나온다면 소용이 없다.


더구나 바짝 뒤에서 나를 추격한다면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앞서가는 이가 뒤쳐지기도 하고 다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에 물러날퇴(-1)가 나와서 되로 한걸음 갔는데 다른 이가 목적지에 다다라 빠져나간다면 낭패다.


그래서 윷놀이는 내가 앞선다고 우쭐할 수도 없고, 뒤쳐진다고 죽상일 이유도 없다. 언제든 나를 앞지를 말이 내 뒤를 따르니 머리를 계속 굴려야 한다.


내가 머리 굴려도 사실은 운에 맡겨야 한다. 그러나 팀이 된 사람끼리 "이번에는 꼭 물러날 퇴가 나오게 해 줘~"라고 함께 주문을 외우고 그것이 정말 나오면 박수를 치며 웃게 된다.


그렇다. 물러날 퇴도 정말 중요하다. 적절한 때 뒤를 밟는 말, 특히 아주 바짝 추격한 경우 물러날 퇴 한방으로 날릴 수 있다.


윷놀이에 나쁜 말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 자신의 역할을 아주 충실히 한다.


때로는 정말 신기하고 이상하게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순간이 온다. 내가 정말 원하는 도가 나온다던지 모가 나와서 엄버(두 개를 합치는 일, 업어가는 일) 갔는데 연신 잘 나와서 승리의 감격을 맛보는 일이 생긴다.


환호성이 따른다. 그 옆에서 우는 동생도 생긴다. 윷놀이는 그렇게 우리를 웃고 울게 했다. 인생을 윷놀이와 비유하는 말들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모두 장성해서 집을 떠나고 두 분만이 남게 되셨을 무렵부터 우리 엄마와 아빠는 고도리(화투)에 몰두하시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과 하는 것이 아니라 두 분이 하시는 것이다. 특히 우리 엄마는 승부욕 끝판왕이셨다.


고 스톱(계속할 건지 스톱할 건지) 또는 고도리(그림의 세 장의 카드 때문, 일본말이며 새가 다섯 마리가 모이면 고도리가 완성된다)


엄마는 한번 시작하시면 물고 늘어져서 상대가 나가떨어질 때까지 공략하신다. 아빠가 지치셔서 슬그머니 화투를 고쳐 놓으시면 엄마는 벌써 눈치채시고 그 판을 덮고 다시 해야 한다고 우기셨다.  그래서 한번 시작하면 날을 새시면서 하시는 적도 많았다. 특히, 말년에 엄마가 교직에서 명예퇴직을 하신 후에는 한동안 날마다 두 분이 화투에 여념이 없으셨다. 그렇게 재밌게만 하시면 좋으련만 어떤 때는 정말 심하게 다투시고 나중에는 토라져서 종일 말도 안 하시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집에 들르면 함께 하자고 하셨는데 나는 정말 게임에 취미가 없어서 재미가 덜했다. 마지못해서 몇 번 하면 "엄마, 나는 그만 하면 안 돼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전번에 조카들이 엄마와 화투를 쳤다고 한다. 막내 여동생 아이들이 정말 천사들이다. 자주 할머니와 잘 지낸다. 나의 엄마는 그리보면 복 받으신 분이시다.


며칠 전 집안 리모델링 공사 중에 정리를 하다 보니 아빠가 과거에 나에게 사 주신 화투가 네 세트나 있었다. 아마도 아빠와 엄마께서 오셨을 때 없다고 사다 놓으셨던 고색창연한 화투들이다. 그걸 보니 돌아가신 아빠 생각에 울컥했다.


우리 엄마, 아마 아빠 안 계셔서 같이 화투를 칠 사람 없으시니 많이 쓸쓸하실 것 같다. 나도 엄마 만나서 함께 쳐 드려야 할 것 같다.



결혼해서 맞이한 명절들 가운데 가장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우리 집과 시댁은 집안의 분위기가 백팔십도 달랐다. 어르신들은 모두 점잖으시고 여자들은 입에 술을 한 모금도 안 댔으며, 어느 명절이든 곱게 담소만 나누셨다.


우리 집의 시끌벅적한 설과는 너무도 대조되는 풍경이었다. 게다가 우리 집은 엄마가 아빠보다 술을 좋아하셨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제사 지낸 후 음복을 남자 어르신들만 하는 것이 못내 부러웠다.


그런데 시 어르신들이 하나 둘 저 세상으로 가시고 몇 분 남지 않게 되었을 무렵이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몇 년 후, 시댁의 작은 아버님(시아버님 9남매의 막둥이 분)만 오시게 된 제삿날이었다. 우리 며느리 셋을 데리고 가서 맛집의 막걸리를 사 주셨다. 물론 나만 많이 마셨다. 나의 형님과 동서도 엄청 조신한 사람들이다.


그날 밤이었던 것 같다. 내가 동서와 형님을 사랑방으로 꼬드겨서 화투를 친 것이다. 나의 목소리가 조금 큰 편이니 사랑방의 화투판 소음이 안채까지 울렸던 모양이다.


다음날, 시 작은 어머님(술 사주셨던 작은 아버님의 아내)께서 나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셔서 한 말씀하셨다.


아니, 그게 무슨 일인가. 내 평생 그런 경우는 처음이네.


그 사건 이전에 시 어르신들은 나를 엄청 예뻐하셨다.  쪼르르 왔다 갔다 일도 잘하고 명랑하고 선생이니 참 괜찮은 며느리 들어왔다고 칭찬 일색이셨다.


아마 그 사건 이후로 다른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그 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웃픈 사건은 없다.


그런데 정작 우리 시어머님께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시면서 어떤 말씀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셨다. 남자 시 어르신들이 모두 돌아가시게 된 후부터 어머님께서 "너도 음복해라."라고 말씀하셨다.


설 아침에 처음으로 실컷 이불속에서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글을 쓰는 여유를 가지게 된 것도 트인 사고를 지니신 시어머님 덕분이다.


윷놀이나 고도리 문화는 없어서 심심했지만, 일만 산더미였지만, 어머니를 존경했고 시댁의 문화 또한 겸손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딸에게 전화하니, 3월에 온단다. 그리고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 나 친구랑 보드 게임하러 가.”


주말이면 가까운 친구 집에서 돌아가면서 만나 넷이 보드게임을 한단다. 마스크 쓰고 보드게임에 열중하는 그들 모습이 떠 오른다. 우리 딸은 건강 염려증이 심한 편이기 때문에 유랑을 다녀도 엄청 조심할 것으로 안다. 그리고 나와 닮은 것 한 가지가 있다. 도박은 싫어하는 것. 그래서 친구와 놀이로 하는 게임이다. 사진을 보내왔다. 보기만 해도 어질어질하다. 어려워서 안 한다니까 맨날 함께 하자고 조른다.


다음에 내려오면 우리 딸 소원을 들어줘야겠다.



지난번 집에 왔을 때, 소원을 들어주지 않아서 서운 해 했다. 아이의 소원은 가족이 다 같이 앉아 ‘보드게임’을 하는 것이다. 큰딸은 첫 월급을 타자마자 광폭 모니터 두 대에 반짝이는 자판을 구입했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다. 닌텐도 출시와 더불어 바로 구입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 엄마는 어디 나가셔서 고스톱을 하는 분이 아니셨다. 그저 놀이로 삼아서 하는 정도는 즐거운 일이라 여긴다. 나의 딸이 승부근성 하며 게임 좋아하는 것 그리고 놀이로 즐기는 정도를 닮아서 다행이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의 놀이 문화 또한 달라지고 있는 세상이다.




설 아침이니 떡국을 끓여 볼까 하고 언 곰국을 내놓았다가, 이렇게 자유로운 설 아침이라도 내가 먹고 싶은 것 먹어야지 싶다. 이럴 때 삐딱선을 탄다는 말을 할 수도 있다. 어긋나 보는 것이다.


 엊그제 만들어 본 피자 토스트를 다시 만든다. 피자 토스트가 쉬운 이유는 무조건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아무것이든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야채가 대부분 있지만 아무것도 없으면 김치를 볶아서 올린다.

치즈를 조금만 넣었다. 어제는 몽땅 넣어 줄줄 잡아 늘이며 먹었다. 최근 토스트를 두 번이나 먹게 되었다.

토마토는 후식, 세 개 모두 먹은 것은 아니다. 한 개 먹고 또 한 개.

피자토스트를 구울 때, 다만 한 가지만 주의하면 된다. 식빵 위에 제일 먼저 피자치즈를 뿌린다. 나중에 음식물이 서로 달라붙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토핑 후에 다시 치즈를 흩뿌린다. 그 후, 오븐에 10분 구우면 끝. 오븐이 없다면 프라이팬에 식빵을 살짝 구운 후 차례로 토핑하고 전자레인지에 3-4분 정도 돌린다. 토핑의 두께에 따라 달라지므로 나는 2분 후에 한번 보고 더 돌리는 식을 선택한다. 전자레인지도 없다면 가열된 프라이팬에 식빵을 놓고 그 위에 토핑을 올려 약불로 올려 토핑이 녹으면 다 된 것으로 삼으면 되겠다.


접어서 이렇게 하면 한입에 쏙 들어간다.


삶은 달걀 한 개,

감자 깍둑 썰은 후 삶기,

사과 한 조각,

파프리카 조금을 마요네즈 한 숟갈에 버무린다. 이때 감자 몇 개는 그대로 올리기 위해 남긴다.


토스트 위에 치즈 - 버무린 것 - 감자 굵은 것 몇 조각, 올리브- 치즈 - 굽기 - 땡!


커피 한잔과  피자토스트로 설 아침 음식 땡이다!









지난 일화 글로 떡국을 대신한다. (떡국떡과 다이어트 이야기 일화)

https://brunch.co.kr/@campo/148





















윷놀이 정보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7717934&memberNo=3980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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