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꽃
장마 후, 여름을 나는 꽃들이 <루씨의 아침> 정원에 가득하다. 그야말로 꽃 모닝이다(꽃 모닝은 @소리여행 님이 불러주시는 예쁜 이름이다. 공방 이름을 정할 때 '꽃 모닝'도 고려대상이었는데 어찌 아시고 댓글로라도 불러주시니 감사하다.)
며칠 만에 다시 제니퍼, 줄리아가 나의 공간에 놀러 왔다.(7.23. 금요일) 전원주택에 사는 친구들의 관심은 정원이다.
우선 정원부터 한 바퀴 돌아본다. 지난봄, 키만 멀대같이 크다고 제니퍼로부터 구박받은 배롱나무가 아름답게 나무의 점 같은 눈마다 꽃을 피웠다. 나무 백일홍이라고도 한다. 나무 백일홍은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묘목으로 심어야 잘 살릴 수 있으며 매년 여름 꽃이 귀할 때 나와서 가을까지 핀다.
꽃 백일홍은 매년 꽃씨를 심어야 한다. 한해살이이기 때문이다. 시기가 중요한데, 자칫 놓치면 발아되기 어렵다. 시기는 봄철이 적기다. 적어도 4월 초 이전에 뿌리는 것이 좋다. 3월 중순경에 뿌렸을 때 아주 적절했던 것 같다. 시기를 놓쳐서 아쉽게도 이번 해에는 나의 정원에서 백일홍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
꽃 백일홍은 여름날 피어서 가을까지 색색으로 아름답게 피어있다.
여름을 상징하는 접시꽃도 씨앗을 심어야 한다.
<루씨의 아침> 공방 배롱나무 옆에는 접시꽃이 담장보다 높게 무리 지어 솟아있다. 지난번 한 지인은 이 꽃들을 무궁화라고 했다. 의외로 사람들이 접시꽃을 모른다. 또 다른 지인도 접시꽃을 모르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접시꽃 당신" 이란 도종환 시인의 시 몰라? 하고 내가 그들에게 되묻게 된다.
내가 아는 것을 상대가 모를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유아적 사고라 한다. 나는 가끔 이런 실수를 한다. 그래서 때로 반성도 하니 그런 점에서 단순한 편이다.
봄에 접시꽃 잎을 본 사람들은 호박잎이냐고 했다. 호박잎으로 보일 수도 있다. 나는 시골 아이였기 때문에 구분을 하지만 다른 이들은 넓은 잎으로 인해 오인하기 쉽다. 어린 접시꽃은 줄기가 아직은 곧게 자라지 않아서 덩굴인지 착각하기 때문이다. (호박은 덩굴식물이다.)
올 4월, 줄리아에게 어린 접시꽃 싹을 줬다. 그런데 자라는 중에 줄리아 남편이 풀을 베면서 잘 모르고 다 쳐냈다고 한다.
접시꽃은 희한하게도 씨앗을 뿌린 그 한 해에는 잎만 자란다. 그 다름 해에 비로소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그리고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을 강렬히 이겨낸다. 4월에 첫 번 공방의 땅에 접시꽃 싹이 난 것을 그대로 옮겨왔다. 그리고 몇 포기를 나눠서 줄리아에게 준 것인데 다 쳐냈다니 안타깝다. 꽃씨가 주변에 떨어져 여름을 나고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싹을 틔우고 여름에 키가 무럭무럭 자라서 꽃이 핀다.
줄리아는 진한 색 접시꽃을 좋아한다. 제니퍼는 "연한 색으로 줘~."하고 말한다. 사람마다 색 취향이 다른 것도 신기한 노릇이다. 나는 이색 저색 다 예쁘다.
흰 접시꽃 뿌리를 달여서 먹으면 자궁의 염증 치료 등에 좋다고 한다. 다만 빈혈이나 임신한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고 한다. 차가운 성질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 너는 매리골드랑 백일홍 천일홍 꽃씨
잘 받아서 줘~
우리는 서로 꽃씨 교환을 약속했다.
내가 최초로 심었던 꽃씨는 해바라기였다. 우리 집 비닐하우스에 꽃씨를 심었다. 매일 가서 들여다보았는데 어느 날 두 잎이 나오고, 키가 점점 자란 후, 밝고 노란 꽃이 피었다. 꽃잎이 지면 씨앗이 여문다. 씨앗을 까먹는 재미가 그만이다. 그땐 씨앗 까먹는 맛이 솔솔 했는데 지금은 자그마한 것들을 까먹을 인내심이 적어졌다. 대신 껍질이 제거된 해바라기 씨앗이 시판되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가 있다. 백설기에 넣어 먹거나 잔멸치 볶음 또는 제빵에 이용하면 고소하고 영양 만점이다.
이래저래 내가 가장 좋아한 꽃은 해바라기 sun flower였다. 내가 심은 첫 씨앗일 뿐 아니라 밝고 화사한 노랑 색이라서 좋았다. 가운데 동그란 형태가 있어 웃는 얼굴 같았다. 그 동그라미가 해를 상징하는 것 같아서 이름도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되었겠다.
나는 너만 보여
키가 커서 담장 너머를 엿보는 모습은 호기심 가득해 보인다. 과연 해바라기가 너만(해만) 볼까 싶다. 해바라기는 꽃이 필 때까지만 해를 향해 얼굴을 돌린다고 한다. 꽃이 진 후에는 고정되어 있다고 한다. 과연 해바라기는 너만(태양만)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해바라기의 꽃말은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또는 숭배, 기다림 등이다. 그러나 올곧게 자라는 모습, 그리고 지치지 않고 환한 자태를 뽐내는 점에서 프라이드(자존감)라는 꽃말도 있는 듯하다.
첫 공방에 해바라기를 심었다.
앗, 그런데 벌레도 잘 타고 깨끗하게 그 모양새를 오래 유지하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한 여름도 되기도 전에 그만 꽃이 사라진다. 미니해바라기 종이어서 그랬을 수 있다.
어린 날에 비닐하우스 안에 심었던 것과는 달랐다.
완주의 송광사 너머 산 고개를 돌면 위봉사라는 자그만 절이 나온다. 위봉사 앞 동네 언저리에 해바라기가 무리 지어 피었다고 지인이 톡을 보내왔다.
그래서 어제(2021. 7.25.) 드라이브를 갔다. 그러나 이미 꽃은 져 버렸다. 대신 씨앗이 통글통글 잘 여물어 있었다. 꽃이 지고 나니 꽃잎이 볼품없다. 꽃은 씨앗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식했다.
해바라기의 한철이 참으로 짧다는 것을 안 이후는 접시꽃이 나의 여름 사랑 꽃이 되었다. 한 대에서 엄청난 번식을 하는데 해바라기처럼 한 얼굴 안에 많은 꽃씨를 가진 것이 아니라 마디마디 꽃이 피고 그 씨앗은 해바라기 한그루에 비해 훨씬 더 많다고 본다. 사정이 이리하니 접시꽃 꽃말은 풍요와 다산이다. 실제로 여인들의 자궁에 아주 좋다고 알려졌다.(자세한 약용 법은 인터넷 백과사전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접시꽃을 심어 보니 여름 내내 모양새가 제법 유지되고 키가 아주 높게 자라는 점은 해바라기와 비슷했다. 그냥 방치해도 벌레가 잘 생기지 않으며 혼자 알아서 피었다가 지면 그 위에서 다른 꽃봉오리가 꽃을 피웠다.
내가 지금 해바라기와 접시꽃에 관한 글을 쓰는 중에 공항 대기 좌석 뒤편에 앉아 있는 젊은이 둘이 해바라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 같다. 역시 젊은이들은 접시꽃보다는 해바라기에 대해 더 잘 아는 듯하다. 접시꽃은 나이가 조금 있는 이들이 더 좋아한단다. 나는 역시 나이가 조금 있다. ^^
접시꽃 수를 놓아 보았다. 다음엔 접시꽃 그림을 그려야겠다.
꽃씨 이야기를 꺼내니 여뀌가 생각난다. 우리 재래종 여뀌가 아닌 서양 여뀌인 털여뀌(노인장대)다.
지난 첫 번 공방에 심은 노인장대는 키가 장대만큼 큰데 고개를 숙여서 노인 장대라 하나보다. 꽃씨를 받아서 이듬해 뿌려줘야 한다. 혹은 꽃씨가 떨어진 자리 근방에서 이듬해 싹이 난다.
그러니 새로운 장소인 <루씨의 아침> 공방에는 꽃씨를 뿌리지 않았기에 노인장대가 싹을 피우지 못했다. 지난 공방의 앞집에서 '얼굴 보고 싶으니' 와서 호박죽을 가져가라는 말에 가 보니 이미 노인장대가 벌써 자라서 꽃을 피웠다.
"아이, 제 공간에는 이 꽃 없어요."라고 아쉬운 마음에 말했다.
그게 다 보험이지~. 이렇게 많이 피었으니 내가 씨앗 받아서 줄게요.
라고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내 농사가 안 되면 내가 드린 것이 몇 곱절되어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이 꽃씨 공유의 보람이다. 보험 한번 잘 들어 놓았다.
지난 4월 이른 수박을 먹고 씨앗을 두 알 심었는데 덩굴만 무럭무럭 자란다. 그래서 잎을 잘랐는데도 무성하다.
(이 안에 수박이 열렸다. 여행 시작 직전 오늘 새벽에 들려 물 줄 때 발견했는데 사진을 못 찍었다. 글의 시작은 지난 주였는데 끝맺음은 일주일이 지나게 되었다. 7.26. 월. 9:40)
이제 2021. 7.23. 금요일 오후로 다시 돌아가 본다.
이 날 우리 셋은 종일 특별히 하는 것 없이 수다 떨면서 놀았다. 아쉬운 하루가 금방 지나 버렸다. 제니퍼의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삼계탕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좋아서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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