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속에 입을 옷이 없다.
나는 토털 패션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경을 쓰고 산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명품으로 치장하는 것은 아니다. 옷장에 명품이 단 한벌도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지만 한 두벌 정도다. 그것도 잘 입지 않는다.
패션 Fashion은 옷뿐만이 아니라 머리에서 발 끝까지 우리 몸에 걸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옷과 장신구를 통칭해서 '복식'이다.
나는 '전생에 발가벗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옷에 관심이 아주 많다. 배낭여행을 가면서도 트렁크에 잔뜩 옷을 넣어 가는 성격이라서 '사서 고생'한다. 나의 스타일의 예쁜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당당해지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스페인 17박 18일 배낭여행을 갈 때 트렁크가 17킬로그램으로 출발했다. 지나고 생각하니 바보가 따로 없었다. 현지에 '자라' 등의 옷집들이 겨울 세일을 시작하는 것을 보고 후회막급이었다.
옷을 매칭 해서 입다 보면 어느 날은 조화롭고, 어느 날은 실수할 때도 있다. 나는 과하지 않기만 바란다. 그러나 지나치게 비슷한 것으로 통일하는 것도 멋이 없다. 화병의 곁가지처럼 무엇인가 하나가 멋들어진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멋을 좋아하신 아버지 덕에 대학시절 가야금을 배웠다. 일찍 한복의 아름다움과 생활 속 한복을 꿈꾸었다. 그러나 한복과 서양 복식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입체적인 것과 평면적인 것에 있다.
현재 한국의 전통 한복이라 하면 조선시대 복식의 형태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서양 복식에 풍덩 빠져 있기 때문에 한복의 일상화는 다소 힘든 편이다. 가장 큰 이유가 한복을 멋지게 만든 기성복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직접 생활한복을 만들어 입게 된 배경은 두 가지다.
첫째, 기성복화 한 옷들이 있기는 하지만 멋진 생활 한복 한벌 사려면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수요와 공급의 문제에 해당한다. 수요가 적으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둘째, 내가 예쁘다고 고른 것들의 치수는 젊은 층을 겨냥하여 치수가 작다. 인사동에서부터 그 어느 곳도 대략 난감이다.
무엇보다 원하는 디자인의 옷을 직접 제작하는 기쁨이 가장 크다.
한복을 서양 복식의 패턴으로 개량해서 만든 것은 진동 둘레에 있다. 한복은 소매의 산이 없다. 직선이다.
특별한 날에 입는 우리 옷을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일상복으로 한복을 입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엊그제 내가 만든 한복을 입고 출근했다. 아주 인기 만점이었다.
나는 직장에서 '귀여운 특별한 나의 클라이언트들'로부터 패피, 패셔니스타 소리를 듣곤 한다. 과거에는 아주 많이 들었으나 점점 20-30대 젊은이들에게 치여서 지금은 어쩌다 듣는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저희도 교복을 이런 것으로 샘이 만들어 주세요." 또는 "샘~ 예뻐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속으로 '흠, 이만하면 나의 한복 사랑이 실천되고 있는 것이로군.'하고 위안을 삼는다.
유명 패션 디자이너 코코샤넬은 평생 옷을 만들면서 지냈다.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의 일에 대한 신념과 사랑을 이야기했다.
한편, '옷'에 관해 충격적으로 인간 심리를 표현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토니 타키타니'가 있다.
친구가 조언하기를 '노력형'이 되지 말고 '실천형'이 되란다. 딸들에게 나도 그리 말하면서 정작 나는 대부분 실천형이 아닌 경우가 있다. 옷과 정리에 관해서다.
환절기가 되니 옷장을 뒤적이고, 알레르기가 심해서 코를 훌쩍거리게 된다. 무슨 옷이 이렇게 많은지, 입을 옷은 왜 없는지 모르겠다. 더 기가 막힐 노릇은 버릴 옷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장은 고쳐져야 할 문장이다. 정리하지 않으면 입을 옷은 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