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보자기
9월 초 어느 날 옛 공방 앞집 복순 언니로부터 문자가 왔다. 어쩌면 표현도 그리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그리고 며칠 뒤, 나의 작업을 도와준 친구에게 인형을 줬다. (그 인형은 바로 내가 복순 언니를 위해 챙겨두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바로 그 순간 또 한통의 문자가 왔다.
"생각나서 식혜랑 땅콩 쪄요.
시간 나면 들르셔요."
복순 언니
나의 직업을 어렵게 밝혔다. 어쩐지 너무 죄송한 생각이 자꾸 들었다.
미안해요. 직장 이야기랑 공방 이야기 이제야 해서요.
"아이고, 그런 게 뭐 어때서요. 말해도 되고 안 해도 되지 뭐."
새로운 공간에 언제 함께 가 보게요.
"일 쉬엄쉬엄 해요. 타샤도 죽은 후에 일 년 안되어 정원이 엉망이 되었다잖아요. 내 몸 어찌 된 후에는 정원도 돌보기 힘들어요. 조금씩 해요~."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그냥 편안한 사람. 뭐든 이해해 줄 것 같은 사람이다. 서울 말씨를 쓰는 그녀는 상냥하고 예쁘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강인함 대신에 여리여리하다. 그래서 그런 고된 일을 하신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지난해 명절에, 그녀가 이웃 할아버지에게 작은 선물이라면서 종합 선물세트 같이 보이는 것을 드렸다. ‘일용직' 근로자에 해당하는 분이 먼저 나와 이웃 할아버지를 챙기시는 모습에 뒤늦게 반성했다. 다음 날 유과를 준비해서 이웃 할아버지와 앞집에 드렸다.
"아니, 무슨 반찬가게가 그렇게 혹사를 시킨대요? 그럼 월급은 많이 줘요?"
"월급은요. 시급으로 주는 거지요. 처음에 일주일 일 하고 나니 발등에 멍이 들고 허리도 너무 아파서 죽겠더라고요."
"직장인 보험이나 그런 건 다 되는 거예요?"
"그런 말 미리 안 했어요. 내가 버틸 수 있을지 자신도 모르겠는데 뭐하러 미리 그런 걸 말해. 일주일 지난 어느 날 너무나 아파서 도저히 못 다니겠더라고요. 그래서 하루 일과 마치고 퇴근하는 때에 내일부터 못 나온다고 말했어. 그랬더니 주인아줌마가 다음날부터는 10시부터 오라고 하시 대요. 주민번호랑 물어보고요. 요즘 사업장에서는 당연히 등록을 해야 하니까요. 그 주인도 사람들이 하도 못 견디고 나가버리니까 두고 본 거였다고 하대요."
"어머나, 저는 반찬가게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네요."
"사람들이 언제나 줄을 길게 서 있어요. 종일 뛰어다녀요."
"판매는 6명이나 한다면서요. 돌아가면서 잠시 의자에 앉아 있지 그래요."
"거기 cctv도 다 있어요. 그리고~내 성격이~ 그렇게 못 해요."
"아이고, 정말. 다리 아파서 어떻게 해요. 밥은 거기서 줘요?"
"반찬을 만드는 분들은 점심시간이라도 있지. 우리들은 점심을 돌아가면서 먹어요. 얼른 먹고 교대해야 해요. 그런데 아이고 내가 별소리를 다 하게 되네요. 내가~천식.. 비슷한 게 있어요. 몇 년 전부터 물도 급하게 마시면 목이 막혀서 숨을 못 쉬어요. 순간적으로 기도가 막혀요. 그래서 천식 환자들이 지니는 이렇게 생긴 호흡기를 꼭 갖고 다녀요."
"왜 그럴까요? 저도 기도가 막힌 적이 있었는데 정말 패닉이 오더라고요. 혹시 그런 경험이 몇 번 되어서 정신적인 것이 원인이 아닐까요?"
"병원에서 하는 말하고 같네요. 그래서 병원에서 신경과 처방전을 줬는데 그 약만 먹으면 일터에서 몽롱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그냥 약을 안 먹어요. 물 마시다 목 막힐까 싶어서 물도 잘 안 마셔요. 밥도 그래서 천천히 먹어야 하는데 얼른 교대를 해야 해서 그게 힘드네요."
"아니, 그렇게 힘든데 일요일 꼴랑 하나 쉬는데 뭐하러 이런 것들을 또 하고 그래요."
이 대목에서 나는 목이 콱 막혔다. 겨우 맛있게 먹겠다고 우물거리고 나왔다. 내 손에는 복순 언니가 보자기에 싸 준 것들이 들려있었다. 청국장, 식혜, 여러 가지를 갈아 만든 천연 조미료, 찐 땅콩, 김부각 등등.....
인형
복순 언니가 일전에 나에게 인형 만들기를 배우고 싶다고 하셨다. 인형 만들기는 가르치기도 힘들고 배우는 것도 간단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말해놓고 너무 매정하다 싶었다. 복순 언니는 그러느냐고만 했다. 그래서 그때 마음에 들어 하셨던 인형을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공간 모닝’에 온 친구가 인형을 들고 예쁘다고 하니 마음이 흔들려서 준 것이다. 친구에게 준 인형을 되돌리긴 늦었다. 다른 선물을 준비하기엔 시간이 촉박했다.(지난 포스트에 올린 바로 이 인형이다.)
복순 언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에게 사연을 전했다.
“그 반찬가게는 아마 전주 사람들 대부분 알 거야. 나도 애용하는 곳인데. 그분 덜 힘들게 나라도 안 가야겠네.”하고 친구가 말했다.
“손님이 줄어들면 일손이 필요 없다고 또 잘릴 수 있지. 이용하던 사람이면 가야지. 다른 인형을 찾아서 선물하든지 아니면 인형 만드는 법을 언젠가 알려주려고.”하고 내가 대답했다.
이번에는 뭔가 좀 가지고 가려고 했는데 그만 또 이런 모습이 되어 버렸다. 한참 남았다고 생각한 추석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내일 한과라도 사들고 다시 들려야겠다. (2021.09.05.)
새벽같이 일어나 복순 언니네 들려서 한과와 다른 것을 드리고 출근했다. 요즘 반찬가게는 추석 명절 제수 반찬을 사러 오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복순 언니는 눈도 몸도 몹시 부어 보였다. 복순 언니는 아래 ‘앞집’ 글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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