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입 꼬리
'인상파'는 공간 모닝에 나타나는 길 고양이의 이름이다. 길냥이, '인상파'는 미간의 세로줄 무늬로 인하여 인상을 잔뜩 쓴 것 같은 표정이라서 붙여준 이름이다.
매일 아침 직장에 출근 전 공간 모닝에 들르면 빛의 속도로 나타나서 밥 내놓으란 듯이 바라본다. 밥을 주는 이가 나라는 것을 아는 것 같다. 다른 이들이 있으면 바로 도망간다. 정말 바람 소리 하나 일으키지 않아서 내가 다른 일을 하다가 마주치면 놀라는 것은 바로 나다. 대부분의 야생동물들처럼 자신의 짝을 찾는 기간이나 위험한 상태를 제외하면 길냥이들은 절대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한다. 길냥이들에게 있어 소리는 적에게 자신을 노출시키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잔디에 있으면 눈치챌까. 보호색처럼 보이는 화산석 부근에서 머물거나 구석진 곳에 자리해서 나를 노려본다. 그런데 사실 이 모습은 밥 달라는 평범한 몸짓이다. 생겨먹은 게 험악하다. 미간의 세로로 색 줄이 나 있는 인상 탓이다.
밥을 먹다가도 길가의 사람이 지나가면 촉각을 곤두세운다. 안쪽에 있던 내가 밖으로 나오면 일단 후퇴한다. 밥을 주고 외부의 의자에 앉아 있을 때는 반경 1미터 이내라 할지라도 편안하게 식사를 한다. 다만 자신 쪽으로 조금이라도 다가갈 것 같으면 바로 도망친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물은 먹지 않았다. 밥 튀였다. (밥만 먹고 튀기)
이제는 밥물 튀다. (밥과 물을 먹고 지나는 이 없으면 한치의 망설임이 없이 곧바로 튄다.)
폴딩 도어 안 쪽의 내가 움직이면 신뢰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사방팔방을 보느라고 밥도 마음 편히 못 먹는다. 밥그릇을 집 뒤쪽으로 옮겨 놓아야 할까 생각 중이다. 거긴 편할 거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얼른 먹고 가는 것이 인상파에게는 좋은 것 같다.
최근 잔디에 냥이들이 실례를 하지 않고 있다. 인상파를 살살 따라가 움직임을 보니 길 가의 모래에 실례를 하는 중이었다. 우리 공간에서도 화단에 하는 건 괜찮을 것 같다. 화단에 모래가 많이 쌓여 있는 곳이 있는데도 하지 못한다. 그간 잔디에 이 녀석만 실례를 해 온 것은 아닐진대 최근 일주일간 잔디가 깨끗하다.
일전에는 두둑하게 밥을 놓았다가 다른 고양이들까지 접근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 후로 '인상파'가 나타날 때만 먹을 만큼 밥을 준다. 만약 밥을 남기면 뚜껑을 덮어 놓는다. 누가 와서 나머지를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날 와서 보면 뚜껑이 열어젖혀있다.
인상파가 밥을 다 먹은 후였다. 택배 차량이 문 앞에 섰다. 택배차량은 상당히 익숙한 듯하다. 아무렇지 않게 잠시 앉아있는 뒷모습이다. 누가 보면 우리 집 고양이인 줄 알 것 같다.
그런데 택배를 주시려고 대문을 여시는 순간 단 0.1초 만에 대문 아래 틈으로 사라졌다.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라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던 모양이다.
오늘은 아침에 나타나지 않았다. 오후에 퇴근해서 대문을 밀고 들어갔더니 미리 썬룸 데크에 와 있는 것이다. 바로 밥을 안 주니까 건물 폴딩 도어까지 따라온다. 와서 밥 달라고 바라본다.
먹자마자, 탁자 아래 숨었다 싶었더니 금세 쪼르르 대문 아래로 나가서 사라졌다.
터프한 청소년
정말 미간의 세로로 난 털의 색으로 인해서 공간 모닝에 오는 길냥이, ‘인상파’가 험한 표정이 되었을까? 고양이들도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변할 수 있음을 우리 아이들이 키우는 고양이 '달퐁이'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사랑을 많이 받으면 털의 방향성도 달라질 수도 있고, 눈빛이 달라지기도 한다. 야생의 동물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강인한 외모로 발달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따름이다. 팩트체크를 할 수 없어서 정확히 과학적 근거를 나열하기는 어렵다. 다만 인간의 표정과 주름과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는 편이 나은 것 같다.
인상 좀 펴라
젊을 때 주름 관리를 해야 한다. 젊은 날엔 인상을 펴보라 하면 곧바로 환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 자신의 의지대로 인상을 만들 수 있다. 그 인상이 쌓인 결과가 나이 든 이의 주름이다.
삶이 평탄하지 않은 학생들은 대부분 행동이 거칠다. 일단 기승전 듣기에 곤혹스러운 욕을 거침없이 하며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으니, 건들지 말라는 듯 험한 표정을 한다. 그야말로 인상파다.
여기 한 아이가 있다. 만 나이 18세, 수업 중 한참 핸드폰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중이다. 교사가 다가왔다. 이동수업이라서 고정좌석이 아니다. "수업 중 핸드폰을 하면 안 되지. 5분 전에 강조했잖아. 핸드폰 사용하지 말자고. 어쩔 수 없다. 벌점 줘야겠다. 학번 말해." 학생은 얼굴을 돌리면서 그러나 분명히 들리게 “에잇 ㅆㅂ. 00반 00번요.”라고 말한 뒤 이제 공공연하게 핸드폰을 마음 놓고 보고 있다. 교사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마음을 가다듬고 숨을 한번 쉬어 본다. 가까이 가서 이야기 좀 하게 복도로 나오라고 조용히 귓속말로 말한다. 학생은 문을 쾅 닫고 나온다.
이러한 벌점제는 학생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하여 내년부터 사라진다고 한다. 학생들 중에는 벌점이 쌓여 결국 전학을 갔거나 자퇴를 한 경우도 있다.
교사는 상담실에서 학생의 얼굴을 마주한다. 교사는 두 손 두 발을 모으고 앞으로 고개를 내민다. 학생은 더욱 몸을 뒤로 젖힌 채 얼굴은 불만에 가득 차서 교사를 노려본다. "다른 애들이 몰래 한 것은 안 잡고 왜 나만 잡아요." 하면서 왜 불렀냐고 되레 화를 낸다. ('왜 나만 갖고 그래요.'는 학생들의 단골 메뉴다.)
"선생님이 못 본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거지. 너는 버젓이 책상 위에서 하고 있었잖아. 선생님이 벌점을 안 주려고 부른 거야. 룰이라는 것이 있으니 그 규칙을 따르면 좋겠지. 그런데 벌점이란 규칙 자체가 너희가 함께 잘 되자고 하는 거잖아. 선생님은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이 된다." 하고 교사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00야, 선생님은 너와 이야기를 하려고 불렀는데 너는 왜 화만 내니? 이 대목에서 어쩌면 화를 내야 하는 사람은 선생님이 아닐까? 아까 네가 욕하는 소리 들었다. 그래도 선생님은 참기로 했어. 네가 오늘 아침에 집에서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다 생각하기로 했어."
두 문장 덕분에 학생의 태도가 바뀌었다. '벌점을 안 주려고 한다'와 '욕을 듣고도 참는다'는 부분 때문인 것 같다. 학생은 눈물을 조금 보였다. 그러나 잘못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네가 잘했기 때문에 용서해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잘하라고 용서하는 거야. 고 3이니 힘들기도 하겠지. 하지만 앞으로는 주의했으면 좋겠다."교사는 손을 한번 잡아 주고 나서 교실로 데리고 갔다. 이런 경우 학생들은 교사에 대한 태도가 두 가지로 나뉜다. 교사를 우습게 보는 아이와 인간미를 느끼는 경우다.
이 일화의 경우 학생은 후자에 속했다. 이후로 학생의 표정은 완전히 바뀌었으며 욕은 적어도 교사 앞에서는 입에 담지 않았다. 험악하게 인상을 쓰는 얼굴이 아니라 편안하게 웃는 얼굴이 되었다. 그러자 학생의 얼굴은 훨씬 예뻐졌다.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경우에는 문을 조용히 여닫는 행동을 보였다.
물론 이 한 번의 교사와 관계로 인해 학생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뭔가 다른 문제들도 조금 해결이 되었으리라 여긴다.
교사는 자신의 교직 생활 중에 조금 더 일찍 이렇게 너그러운 마음을 가졌더라면 더 많은 아이들의 표정을 바꿀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한국의 다양한 민속 탈에 나타난 선들은 인간의 풍부한 표정을 보여준다. 그 탈을 쓴 이의 속내는 모르겠지만 탈 자체는 고정된 이미지다. 탈을 쓰지 않은 우리의 맨 얼굴은 나이가 들면서 하나 둘 주름이 늘어난다.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주름은 바로 이 탈의 모습들처럼 견고해져서 바꾸기가 어렵다.
주름이 늘어가면 코스매틱이나 의학에 의지하지 않는 이상 감추기 어렵게 된다. 주름을 수술로 편 얼굴의 인상은 부자연스럽다.
주름의 방향성으로 인해 인상이 달라 보인다. 나의 주름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나 자신에게 달렸다. 남을 용서하는 일도 내가 웃게 되는 일이다. 또 재미난 일이 뭔지 찾아본다. 재미있는 일을 하는 바로 그 순간, 나는 숨길 수 없이 좋은 표정, 웃는 얼굴이 된다. 어떤 때는 일부러 손가락으로 입꼬리를 위로 쭉 올려보기도 한다. 외모는 만들어지는 것이 분명하다. 마음의 반영이다. 주름 골이 깊어지기 전에 내 마음의 입 꼬리를 위로 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하회탈 이미지 출처: eunyoung LEE님의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