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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에게 집을 만들어 주다

인상파와 나

by 루씨

인상파는 공간. 모닝에 상주하지 않는 길냥이다. 배 깔고 낮 동안 정남향 집에 내리쬐는 햇볕을 실컷 받다가 내가 밥을 주면 날름 먹고 사라진다.


그런데 지난주 온종일 비가 내린 날 종일 기다렸는데 오지 않아서 걱정했다. 다음날 깜짝 놀랐다. 내가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언제 와서 유리창 밖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운 겨울을 나야 하니 집을 마련해 주기로 마음먹고 인터넷에서 길냥이 집을 검색했다.'0 시래기'라는 곳에서 산 것이 배달되었다. '0 시래기'라는 곳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가 상품을 구입하면 일부가 길냥이들의 구조에 사용된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적혀 있는 것으로는 플라스틱 나사에 대해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사이트에 들어가 다른 분이 남긴 친절한 댓글과 사진을 보고서야 이해가 갔다. 대부분 조립이 조금 힘들다고 리뷰되어 있다.

플라스틱 나사를 구멍에 찌른 후에 안쪽에서 이런 식으로 딱 소리가 나게 꾹 눌러서 가운데 뾰족한 곳이 안에 들어가게 한다.

그런데 접이가 자꾸 펴지려고 하는 성질이 있어서 힘들었다. 무려 40분 만에 완성했다.


나는 팔꿈치 엘보가 있는데 조립을 마친 후 그 자리가 욱신거렸다.


그런데 인상파가 집 속에 절대 들어가지 않고 빨리 밥 안 주냐는 듯이 빼꼼히 나를 본다.

비닐을 걷어내고 안쪽에 집과 친숙하게 만들기 위해 밥을 넣었더니 밥이 보이니까 먹는다. 경계태세로......


고개만 넣고 먹은 후 가버렸다.


밤에라도 와서 잤으면 하는 마음에 집을 꾸며놓았다. 이렇게 모닝에서의 나의 하루가 또 흘렀다.



병원 신세를 질 때 밤중에 영화 하나를 봤는데 고양이가 조연이다. 제목은 <내 어깨 위의 고양이, 밥>이다, 리뷰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그 영화를 본 후, 인상파를 조금 따뜻한 이름 '밥'으로 바꿔 부르고 싶었다.



다시 인상파로


다음 날 길냥이는 또 와서 밖에 깔아 놓은 매트 위에 웅크리고 있다.


여전히 들어가서 쉬라는 집에는 안 들어가고 햇볕 좋은 곳에 앉아만 있다. 그래서 편히 쉬게 커튼을 쳐 주었다. 길냥이가 항시 경계하는 본성을 잃는다면 죽은 목숨이니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햇볕이 조금 더 물러가니 잔디 쪽이 좋은지 자리를 옮기고 웅크리다가 안쪽에서 소리가 나면 나를 본다.


사진을 딸들에게 보냈다.


작은 딸은 "엄마, 이름 흰자라고 하지. 노란색 오면 노른자. 그런데 애 흰 바위 같아. 귀엽다."하고 말한다.


큰딸은 "엄마, 인상파가 귀여운데? 왜냐면 예술적인 의미도 있잖아. 공방에서 인상파(고흐), 공방이랑 어울리는 이름인 거 같은데, 밥이나 흰자보다!"하고 이름을 바꾼 것에 대해 말한다.


작은 딸도 "오! 그러네."하고 맞장구를 치고, 나도 공감했다.

밥 달라고 인상을 쓸 때 보면 인상파가 제격이다. 그래서 이름을 다시 원래대로 바꿨다.(길냥이는 그대로지만 내가 길냥이에게 길들여진 것 같다. 뭐라 부르든 고양이는 내가 그냥 밥 주는 인간일 따름인데 말이다.)

그런데 동네 수의사 분이 놀러 오셨다 조언을 주셨다. 고양이들은 삼각지붕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네모 형태를 좋아한단다. 제품을 판 곳은 길냥이를 위한 회사라던데 어떤 길냥이들이 이 형태의 집에 들어간 것일까. 아마 어느 구석에 놓으면 추위에 떨던 애들이 들어가나 보다.


여전히 뒤쪽을 경계하고 있어서 밥 주고 보지 않게 안으로 들어왔다.


집도 탁자 아래에 잘 안 보이게 넣어 두었다. 수의사 분의 의견은 고양이의 배가 축 쳐진 것은 새끼를 가진 것이 아닌 듯해 보인단다. 탈장 또는 혹일 수 있단다. 이도 저도 아니면 엄마가 어릴 때 물어서 그럴 수도 있단다. 상처가 아물면서 생긴 혹 같은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동물보호단체에 연락해야 하나 고민했다. 곁을 줘야 붙잡아서 수술을 시키든 진료를 볼 텐데 조금만 옆에 가도 도망을 치니 말이다.


수의사님 말씀은 과연 길냥이를 병원에 오게 하는 것이 행복할까 의문이란다. 한번 수술하려면 병원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데 거의 패닉 상태가 되어 다시 길에 나갈 때 살아가기 힘들다고 한다.


에이, 인상파는 그냥 내 공간에 올 때 밥이나 잘 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살게 해야겠다. 퇴직하면 강아지를 키우려고 했는데 길냥이에 적응해서 손을 뻗어 만지고 싶어졌다. 내 고양이를 입양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어느 밤 폭풍 검색을 했다.


모두 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표정이다. 내가 이 아이들을 보여드리니 수의사님 말씀이 우리 공간에 고양이는 안 될 것 같단다. 우선 호기심이 많아서 온갖 물건들을 헤집고 다녀서 위험하다고 한다. 모닝에는 도자기, 유리, 높은 나무 보 등등으로 인해 무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먼치킨은 다리 짧으니 말 짓을 못하지 않을까요?" 하고 물었다. 그런데 먼치킨도 아주 높은 곳이 아닌 곳은 충분히 올라가고 수명도 다른 고양이들보다 짧다고 한다. 결론은 고양이 입양은 포기하기로 했다.



반려 oo


그렇다면 강아지를 입양해 볼까 고민했다. 나에게 강아지는 분변 알레르기가 있어서 문제다. 식물이나 잘 키우라는 운명 인가 싶다.


요즘 식물과 텃밭을 돌보는 나 같은 사람에게 겨울은 농사짓는 이를 빗대어 말하면 농한기에 속한다.


그러다 보니 반려동물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들로 잠을 못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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