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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Mar 18. 2023

내 안의 삐딱선

삐툴빼툴

울퉁불퉁, 삐툴빼툴 구불구불한 선이 좋다. 덧붙여 강약이 조절되면 멋지다.


자수를 놓을 때도 뭔가 손으로 했다는 표식이 남는 것이 좋다. 나비가 날아들 정도로 정교하면 숨이 막힐 것 같다.

작품의 가장자리 처리도 완벽한 것보다는 실이 조금 풀어진 듯한 것이 좋다. 때로는 잘 마무리된 상태가 좋은데 그 이유는 실용성 때문이다. 자주 빨아야 하는 면포의 경우 올이 풀릴 수도 있다.


1퍼센트 부족한 듯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게  손 바느질 하는 이의 고의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그런 종류의 작품이 마음에 쏙 든다.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하다 만

인상을 남기면 그건 망하는 거다.


기계 자수나 기계로 찍어낸 제품들이 아닌 손으로 만든 공예품을 사랑한다. 어딘가 조금 완벽하지 않아도 우러나는 손맛이 있기 때문이다.


세련된 작품들을 보면 은연중에 어딘가 손으로 했다는 것이 잘 드러나는 것들이다. 우리나라 규방공예 작품 중 손바느질로 한 경우 반듯하고 정갈하면서 전통의 멋이 살아있어서 아름답다.


최근에는 재봉틀로 만든 작품들이 시중에 많이 판매된다. 이들은 내 취향에 맞지 않아서 처음엔 아름다워서 샀다가 다른 이에게 주거나 서랍 속으로 들어간다.


 정교함이 돋보이는 한국의 규방공예는 솜씨가 아주 좋아야 한다.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며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니 나에게 들어맞는 취미는 아니다. 그렇게 작업하는 그들을 존경한다.


규방공예의 모시에 주로 이용하는 곱솔이란 솔기 처리 바느질법이 있다. 지극 정성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바느질법이다. 잘 만들어진 작품은 반듯하고 모서리의 각이 딱 들어맞는다. 다른 바느질법으로 감침질이 있다. 감침질은 조금 정감이 느껴지는 바느질법이다. 그마저 삐툴빼툴 한 것이 나는 좋다.

 

모시에 천연염색 후 감침질기법으로 조각을 연결한 인형옷

이런 체질이다 보니 앞서 언급한 대로 재봉틀을 사용한 바느질을 싫어했다. 그런데 요즘은 시간이 없고 커튼 같은 대작이나 옷 만드는 일은 편리한 재봉틀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가방을 만든다면 기초과정은 재봉틀을 이용하고 겉면은 손바느질을 한다. 한마디로 손맛이 느껴지는 것이 더욱 정감이 든다.


가끔 공방 샘플을 만들 때면 새삼스럽게 조금은 단정해지기도 한다.

그림을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다. 배우고 싶은 이유와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싶은가를 먼저 묻는다. 그런데 당부 사항은 꼭 있다.


1. 지나치게 완벽한 일직선 사용하지 않기

3. 여백을 남기려고 노력하기

4. 선에 강약을 주어 그리기

5. 빛과 그림자 생각하기

6. 한 번씩 일어나서 자기 그림 보기(전체를 생각하기)


이 중에 1번과 6번을 가장 중요하게 강조한다. 세상에 완벽한 직선은 없다. 예전에 나에게 그림을 배우신 분이 해바라기를 그리는데 줄기는 자로 일직선을 그리고, 씨앗 부분은 동그라미를 정확하게 그리셨다. 도형을 그리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정말 놀라웠다. 이런 분들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그분은 의상제작을 하시는 분이라 자와 도형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습관화되신 분이셨다. 그래서 그림은 습관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아는 익숙한 선을 피하고 우뇌를 이용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림을 대하는 첫 번째 태도라고 생각한다.


자연에 직선은 없다. 이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건축가 가우디가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그의 작품세계에 반영했던 점이다. 부드러운 곡선을 건축요소로 사용해서 그가 만든 집을 걷다 보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그림에서 ‘떨어져 자기 그림관찰’은 아주 중요하다. 몰입하다 보면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며 불필요하게 세밀해지기도 한다. 멀리서 실눈을 뜨고 보면 뭔가 추가할 부분과 지워야 할 부분이 조금 보인다. 이 부분은 시험 문제를 냈을 때 오류 찾기와 같다. 그래서 때로 다른 이가 봐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매우 관대하여 자신의 실수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우리 인생도 반듯한 일직선보다 굴곡이 있으면 어떠냐 싶다. 이런 생각을 지닌 나도 가끔 모든 일들이 순조롭고 반듯하게 흘러가기를 희망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인생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순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굴곡진 삶은 일직선의 삶을 사는 이보다 오히려 인생을 더 길게 사는 것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 힘들다 해도 웃으면서 헤쳐나가는 현자가 되면 좋겠다.

자유로운 나

내 안에는 삐딱선이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늘 옆길로 샌다. 그 덕분에 취미부자가 되어 지금 공방을 운영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는 때가 많다. 나는 내 안의 삐딱선을 사랑한다.


하지만 인생의 오류를 잘 살펴보기 위해서는 가끔 자기 인생을 타자의 인생처럼 객관화해서 멀찍이 떨어져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관적 삶에서 잠시 객관화될 때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는 것 같다.













후기.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자기 객관화인지 모르겠어요. 쓰고, 다시 읽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또다시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글은 늘 서랍에 저장글로 남게 되지요. 오늘은 제 안의 삐딱선이 발동했어요. ‘완벽할 순 없는 거야 ‘를 외치며 꺼내봅니다.


저의 공방운영은 마음과 태도를 바꿔서 열심히 한 결과 제가 원하는 수강생 인원인 다섯 분은 넘었어요. 모두 열정적이고 좋으신 분들과 즐거운 한 해를 시작한 지 벌써 두 달째로군요. 이제 공방에 봄 꽃이 가득할 거예요. 다음엔 꽃으로 인사드릴게요.


저의 인스타그램이에요.

https://instagram.com/gonggan_morning?igshid=YmMyMTA2M2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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