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살고 싶은 삶
남들 출근시간에 나도 맞추려는 생각은 없다. 평생 몸에 젖은 습관이 무서운 건지 자동 맞춤으로 공방으로 향하게 된다.
도착하자마자 첫 번째로 한 일은 꽃들에게 물 주기다. 물을 주다 보면 새삼스럽게 새싹을 발견하거나 꽃이 피어난 것을 보고 놀란다. 물 주고 잡초도 뽑은 다음에 우리 강아지 ‘깜뽀’하고 공놀이도 한다. 대체 몇 번을 던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매일 공 던지기로 시작해서 공 던지기로 끝나는 것 같다. 그렇게나 공놀이가 좋은지 아주 신이 났다. 쉬는 건 아주 잠시다.
잠시 딴 눈을 판 사이 깜뽀가 화단에 들락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토양에 진딧물 약을 뿌렸는데 맨날 들어가서 흙을 파헤치고 주둥이에 흙, 나뭇가지, 아직 자라지 못해 지푸라기인 잔디의 잔해를 묻히고 나를 본다. 잔디에 지렁이 냄새를 감지했는지 뒹굴어서 난리다.
봄이라 화원에서 한해살이 꽃들을 사다 심었다. 흙에 심으면 두 달은 싱싱하게 볼 수 있으니 월동하는 꽃들이 피기 전에 눈호강을 위함이다.
요즘 날씨가 따뜻해서 놀랄만한 속도로 정원의 모습이 다르다.
나는 집안에 철쭉은 들이지 않는다. 비슷한 색조로 진달래가 좋다. 산에 핀 진달래가 더 예쁘지만 정원에서 볼 요량으로 작은 나무 하나 사서 심은 것이 올해 꽃을 활짝 피웠다.
오전에 그림 수강이 있다. 일단 먹고 보자는 심산으로 우리는 커피와 차, 오븐에 구운 빵, 그리고 제주에서 가져온 빵을 먹는다.
그림 생초보에서 갑자기 일취월장한 수강생의 진보가 놀라울 따름이다. 처음엔 직선 그림이었는데 이젠 하산해도 되겠다고 말했다. 이 수강생의 한마디에 힘을 얻는다.
선생님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이에요.
저는 계속 다닐 거예요.
남들이 하는 말에 그리 일희일비하지는 않지만 이런 칭찬이 나쁘지 않다.
오늘 바다 그림을 그렸다. 아래 그림은 바로 그 수강생의 것이다. 나는 아주 조금 조언했다. 예전에 내가 제주도 가서 찍은 어느 바다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분은 삼시세끼 밥을 차려야 하신단다. 그래서 저녁에 오롯이 자기 시간이 될 때 그림을 4시간씩 그린다고 한다. 나에게 그림 배우러 오신 이후 그림 그리는 자신의 시간이 정말 소중하고 행복하다고 하신다.
그림을 가르치다 보면 나도 그리고 싶은 의욕이 넘친다. 오후에는 지난해 그리다 만 것을 꺼내 완성했다. 바로 우리 농막 모습이다.
낮술 한잔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이게 바로 정규 직장을 다니지 않는 자의 여유가 아닐까 싶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정원의 태양광 줄 조명이 반짝인다. 우리 깜뽀는 완전히 삐졌다. 종일 산책을 못 나갔기 때문이다.
내일은 우리 강아지와 꼭 산책을 나가야겠다. 귀찮고 바쁠 때면 강아지 훈련사 강형욱 님의 말씀을 떠 올린다.
내가 강아지라면 죽는 마지막 날까지
산책을 나가고 싶을 것 같아요.
깜뽀는 나를 닮아서 잔디에서 실컷 놀아도 문 밖에 나가고 싶어 서성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