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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Dec 09. 2020

크리스마스엔 어떤 선물을?

묵은지 두부 돼지고기 김치찜

기쁨을 나누는 달, 12월에는 하얀 눈이 내릴 것만 같다. 바쁜 걸음, 반짝이는 트리의 불빛과 함께 '카드와 선물'이 오간다.

크리스마스엔 어떤 선물을?


제목을 보면 크리스마스에 '묵은지 두부 돼지고기 김치찜'을 선물로 받고 싶다는 말인가 싶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사연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묵은지 두부 돼지고기 김치찜을 그 어떤 맛집보다 맛있게 요리하는 여인이 있다. 지난여름, 새 아파트에 입주했다.

뭐해? 안 바쁘면 놀러 와~


단팥빵을 좋아하기에 단팥빵과 화분을 준비했다. 우리 집에서 차로 2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전주는 대부분 거리가 멀지 않다. 그러다 보니 대중교통이 그리 잘 되어 있는 편이 아니다. 전철이나 트렘이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한다.


요즈음에는 전동 바이크 대여제가 있어 이용객이 늘었다. 내 차가 사고가 났기 때문에 새 차를 주문했는데, 한 달 걸린다고 했다. 우리 동네의 규모가 큰 꽃집에서 화분을 골랐기 때문에, 낑낑거리면서 택시에 싣고 어찌어찌 갔다. 이사한 곳 앞에는 꽃집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인테리어에도 소질이 있어서 집이 카페같이 바뀌었다. 정갈하고 멋스러우며 센스만점의 아름다운, 너무나 사랑스러운 공간이다. 이런 아파트라면 단독주택이 아니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많던 화분들은 다 어디로 갔어?
화원이라 할 정도로 많은 화분을 잘 정리하여 온실같이 꾸미고 살았던 그녀의 과거 베란다 모습. 화분이 그림보다 더 많았다.

그녀는 원래 살던 아파트 베란다에 한 가득 식물을 키웠던 '식물러'였다. 그런데 베란다를 확장해서 화분을 놓을 자리가 없다. 화분을 들고, 친구네 거실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치 식물원처럼 많던 화분들은 다 어디로 갔냐고 물으니 이 사람 저 사람 줬다고 한다. 이 사람 저 사람에 내가 안 들어가서 갑자기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역시 정리 잘하는 사람은 다르다.

 

역시 정리 못하는 나는 내 것이 많은데도 한 개 더 가지고 싶어 한다. 내가 전에 준 애니시다 화분 역시 사라졌다. 그녀는 원래 심성이 좋으니 나보다 화분이 더욱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을 것이다.

 

정리 잘하는 사람들은 잘 버린다. 정리 잘하는 나의 친구 중에 한 명은 오늘도 서성이면서 뭐 버릴 것이 없나 찾는다고 한다.


그녀는 일전에 나의 작업실에 와서 한숨지으며 정리 정돈을 해 줬다. 사실 그리 심각한 상태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의 손길이 닿은 후, 한결 깔끔해졌다. 그녀가 정리하는 동안 나는 전에 내가 만들어 준 비닐봉지 인형을 수선했다.  사람은 다 달란트가 다르니 서로 돕고 사는 것 같다.

비닐봉지를 아래에 솜 대신 넣은 이 인형은 아주 유용하다. 내 것으로 하나 만들었는데 이것마저 다른 친구 집들이 선물로 가 버리고 나니 봉지 정리 할 인형을 다시 만들어야겠다.
그녀의 아파트 베란다 선반 위 인형들은 나의 손길이 닿은 아이들이다.

평생토록 식물을 사랑하던 그녀가 그 많던 화분들을 감쪽같이 처분하다니 참으로 이런 것이 바로 정리구나 생각이 들었다. 낡은 집도 아니고 새집인 아파트를 자신의 취향에 맞게 진두지휘해서 놀랍도록 변신한 그곳에 앉아 우아하게 차를 마셨다.

주방의 윗 장식장을 떼어내고 오픈 코너장으로 변신시켰다.

차도 좋지만 사실 나는 그녀의 묵은지 두부 김치찜을 맛보고 싶었다. 그녀의 집에 가면 주로 따뜻한 밥과 맛있는 반찬을 차려줬다.  나는 늘 '오늘은 어떤 반찬이 있을까'하고 군침을 삼키며 갔다. 윗 사진의 외부 베란다에 조리공간을 따로 두어, 김치찌개를 해도 집안에 김치찌개 등의 음식 냄새가 배지 않는 훌륭한 인테리어다.

다음에는 묵은지 두부 돼지고기 김치찜
먹고 싶어

이렇게 말하니 다음번에 꼭 해 준다고 한다. 차를 마시다 보니, 재스민 화분의 꽃 향이 너무 진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발코니가 없는 실내에서 키우기는 무리였다. 화분은 현관문 바깥에 내쳐지는 신세가 되었다.


알고 보니, 정작 그녀가 원한 집들이 선물은 그런 화분 종류가 아니었다. 빨간 머리 앤을 나의 스타일로 그려달라고 했다. 그녀는 빨간 머리 앤을 사랑한다. 집안에 여러 개 있던데, 또 빨간 머리 앤을 그려달라고 했다. 나의 스타일로.


 라캉에 관련된 책을 읽었을 때의 한 문장이 떠 오른다. 선물의 강제성을 언급한 것으로 기억된다.


선물이란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을 주는 것이다.


선물을 받을 경우, 흡족할 때가 드물다. 물어보고 필요한 것을 선물하고 싶은데, 드러내 놓고 말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또는 언어의 모호성 때문에 해석이 어렵다.

그냥 돈으로 줘야겠다

가족끼리는 결국 용돈이 최고인 듯 암묵적 합의를 하게 된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경우는 어떠할까?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선물에 관해 좀 더 이야기한다.


남녀 사이에 선물에 관계된 일화는 자못 심각하다. 기껏 선물했다가 선물 때문에 외려 토라지거나 상처 받고 다투기도 한다. 선물을 주지 않아서,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가 준 선물보다 못한 선물을 받아서 등 다툼의 이유는 부지기수다.


남자가 여자에게 묻는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뭐 받고 싶어?

                                                                         

여자가 대답한다.

아무것도 필요 없어.  아니면......
예쁜 목걸이.


그런데 상대의 취향을 잘 모르는 남자는 목걸이를 사긴 샀으나, 여자의 취향과 너무 먼 상태의 것을 선물한다. 그래서 결론은 어찌 되었을까? 여자가 "에이, 이것을 하라고?" 하고 중얼거리거나, 아예 하고 다니지 않게 된다. 그러면 다음 해 크리스마스에는 목걸이 선물은 목록에서 지워진다. 상대도 마찬가지다. 서로 간에 모두 마음에 드는 선물을 완벽하게 찾기란 힘들다. 인간관계에서 선물이 마음에 들었을 때,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된다. 상대의 마음에 흡족한 선물을 하기 위해서는 캐릭터를 읽어내야 한다. 캐릭터는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상대의 마음을 아는 정보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얼른 그려서 만나려고 했다. 그런데 빨간 머리 앤을 그려달라고 한지 벌써 네 달째다. 겨우 캔버스 작은 것에 그리기 시작했는데 눈, 코, 입을 그리려다 세필을 못 찾았다. 그리 방치한 채 여러 달이 지났다.


나 이사 가면 자기 느낌으로 아무거나 예쁜 거 해줘.

내 느낌이란 것은 나의 재능을 이용해서 어떤 멋진 것을 주라는 의미였다. 이미 그런 암시를 했건만 나는 잊어버렸던 것이다. 말이란 참으로 추상적인 것이다. 선물에 관해 나의 20대 딸이 말한다.


선물이란 내 돈 주고 사긴 좀 아까운데, 남이 주면 좋은 것


나는 '식물 사랑가'라서 누가 화분을 주면 좋아한다. 내가 돈 주고 비싼 것을 사려면 돈이 좀 아깝다.

알고 보면 선물은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상대에게 주는 것이 아닐까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닌 나의 재능을 이용한 창작물을 선물로 받고 싶어 했던 그녀에게 나는 그냥 돈 주고 사서 낑낑대고 들고 갔던 것이다. 나의 하찮은 재능을 아낌없이 나눌 사이인 그녀에게 이제 정말 그녀가 언급한 선물을 해야 한다.


올 해가 가면 아마도 그녀는 나에 대해  서운한 마음이 눈처럼 쌓일지도 모른다.


알라븅~~~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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