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는 중입니다

by 김상래

나누는 강의, 이어지는 인연

금요일 오전 강의를 끝내고 2023년 나의 첫 강의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함께 김밥과 라면, 떡볶이를 먹었다. 선생님들은 여전히 미술 에세이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공저를 내기 전에도 이 방식은 꾸준히 진행하고 있었고 도서관에서 만들어진 미술 에세이 동아리 분들이 지속적으로 글쓰기를 이어 가고 있다. 초심! 여전히 나는 내가 열심히 공부한 걸 나누는 마음으로 강의에 임한다. 그래서 강의가 떨리거나 긴장되지 않는다. 다만, 나눌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시간을 넘기거나 미쳐 준비한 양을 다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다음 차시에 조절을 해서 나누면 되니 그 또한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첫 강의를 듣고 여전히 글을 쓰고 또 매번 강의를 찾아 주는 분들이 계시니 감사한 마음이 크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어떤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다 많은 걸 나눠야 할지 판단이 선다. 나눔에 있어선 항상 내가 가진 것 안에서이기 때문에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주일에 스케줄이 여럿 있는 입장에서는 시간은 꽤나 중요하다. 특히나 스케줄 외에는 올해 출간될 책에 집중을 해야 하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퇴고를 초고처럼 만지고 있다. 바쁜 척도 아니고 잘난 척도 아니다. 그저 내가 벌여 놓은 일과 내가 가진 에너지 안에서 살아야 하다 보니 약속 잡기가 참 쉽지 않다.


아이와 함께 만든 시간의 힘

강의를 끝마친 날 저녁, 아이와 함께 중급반 강습을 받으러 수영장엘 갔다. 중2가 되면서 키가 훌쩍 크고 덩치도 아빠만큼 커진 아이와 함께 수영을 배운다. 우린 함께 배운 것들이 많은데 그 중 아이 초등 1학년 때 한자 공부를 같이 했었다. 아이는 그림을 그리듯 한자를 재미있는 놀이로 생각했다. 나는 4급, 아이는 준4급까지 자격증을 땄다. 우리집 거실 벽에 그 흔적이 여전히 걸려 있다. 아이 초등 2학년 때는 피아노 학원 간 아이를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곤 했다. 그럴 때 나는 주로 내 책을 읽거나 아이가 와서 읽을 만한 책을 준비해 가곤 했다. 학원에서 끝난 아이는 카페로 쪼르르 달려와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마시면서 나와 함께 책을 읽었다.


우리가 카페에 앉아 있는 시간이 한 시간이라면 그중 10분 정도는 영어책을 읽었다. 그때 읽었던 책이 노부영, 마더구스 같은 책이었다. 또 동물을 좋아하던 아이라 내셔널지오그래픽 키즈를 읽기도 했다. 책을 읽을 땐 항상 입으로 소리 내어 읽게 했다. 발음이 틀려도 중간에 교정해 주지 않았다. 느리고 더디더라도 자기식대로 읽게 했다. 아이가 그림을 그릴 땐 여러 나라 언어로 단어를 적게 했다. 물론 그 단어들은 내가 찾아주었는데 아이의 삐뚤빼뚤한 글자들이 그림처럼 보여 더 예뻤다. 아이가 여전히 영어와 국어, 역사를 가장 좋아하는 건 아마도 그 시간이 쌓여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 아니, 영어를 모른다. 그저 책 읽기를 좋아할 뿐이다. 내가 아이에게 만들어준 건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 그것이 성인이 되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 정도를 알려주려고 애썼을 뿐이다. 아마도 남편과 내가 책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아이와 함께 만들어간 시간에 독서보다는 다른 것들이 더 많았을 것 같다. 책을 좋아하면서도 우린 여행도 정말 많이 다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유치원을 빼고 미술관엘 가거나 공연을 보러 다녔고 아이가 초등 저학년때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한국, 해외, 할 것 없이 많은 곳을 다녔다. 실컷 읽고 여행하면서 삶을 즐기며 살았다.


내가 일을 완전히 쉬었던 건 사실 몇 년 되지 않는다. 출산하며 그만둔 회사에 다시 복직도 했었고 거리가 너무 멀어 여의치 않을 땐 집 가까운 곳으로 출퇴근도 했었다. 프리랜서로 다양한 곳엘 다니며 열심히 경제 활동을 이어갔다. 어떤 날엔 아이와 함께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는데 그럴 땐 회의를 주선한 쪽에서 일부러 야외로 약속 장소를 잡아 주셨다. 우리가 회의를 하는 동안 아이가 안전한 곳에서 충분히 놀 수 있게 해주셨다. 생각해 보면 아이를 키우며 일한다는 건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거였다. 때마다 부모님의 도움이 있었고 동생들과 친구의 도움이 있었고 아이가 있는 걸 알고 배려해준 회사 사람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곰 같은 몰입과 지금의 행복

어버이날, 어머님과 한 시간가량을 통화하며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하고 싶다고 다 되는 일이 아닐 텐데 내가 가진 "마음과 태도가 좋아서 잘 되는 것"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그 짧은 시간에 이만큼 성장한 내가 대단하다고 하셨다. 어버이날 한 시간을 어머님과 통화를 했다. 일을 할 때는 일에 집중하는 편이었고 아이를 키울 땐 아이에게 온 힘을 다했다. 물론 둘 다 해야 했기에 양쪽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어떤 날엔 집안에 구멍이 숭숭이고 또 다른 날엔 일에 빈틈이 생기기도 하다 보니 아이는 어느덧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남편도 회사일을 병행하며 대학원 공부도 마쳤다.


나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디자인을 하지 않고도 먹고사는 길이 열렸다. 수입만 따지고 보면 나는 여전히 디자인을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은 인생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능력치의 수입을 만들어 가고 싶었다. 2023년부터 나는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로 인생 2막이 열렸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한 일을 겪어내며 꿋꿋하게 잡은 길이라 늘 최선을 다한다. 일단 시작하면 무어든 열심히 하는 편이다. 하다가 내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언제든 멈출 수 있다. 큰돈이 들어와도 내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면 디자인처럼 바로 그만 둘 수 있다. 내가 사는 의미가 있어 지금 이 일을 즐겁게 하고 있다. 언젠가 일이 디자인만큼의 수익도 가져다준다면 더 좋겠다. 우리에겐 여전히 대출 이자가 남아있으니 말이다.


신랑이 나를 곰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어버이날만 기억하고 내 일에 집중하느라 결혼기념일이 같은 날인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퇴근한 신랑이 뒤편에 무언가를 감추고 들어왔다. 감춰진 왼쪽 손에서 꽃다발이 등장했다. 웬일로 꽃을 사 왔을까 생각했는데 결혼기념일이라고. 평생 효도한다는 마음으로 5월 8일 결혼 했다는 걸 잊을 만큼 요즘 나는 내 일에 몰입 중이다. 신랑이 오기 전, 강의 준비를 하다 보니 저녁 차릴 시간이 없어 족발을 시켰다. 친구와 헬스장에서 운동을 끝내고 들어온 아이가 내가 싱크대에 잠시 다녀온 사이 족발과 막국수를 모두 삼켜버렸다. 음식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신랑은 내가 결혼기념일인 걸 알고 족발을 시켰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저녁 차릴 시간이 없어 시카 것인데 그것마저도 아이가 폭풍 흡입하는 바람에 우리의 저녁을 다시 준비해야했다.


오랜만에 김치를 잘게 썰어 비빔국수를 해주었다. 신랑은 아이가 잘 먹으니 좋다고 했고 내가 열심히 내 일을 하느라 그런 거라 괜찮다고 했다. 우리 집은 각자가 맡은 자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라 우리 모두는 다 괜찮다고 했다. 누구 하나 서운해하지 않고 응원으로 일으켜 주니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는 중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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