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현을 읽는 시골 책방 이야기
박래현(1920, 평안남도 진남포 출생)은 전주와 경성에서 배우고 자라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일본화를 공부했다. 재학 중 그린 〈단장〉으로 조선미전 총독상을 받으며 일찍 두각을 드러냈고, 귀국 뒤 운보 김기창과 결혼했지만 “본업인 그림은 언제 그리나”라고 적을 만큼 육아와 살림 사이에서도 작업을 놓지 않았다. 초기에는 생활과 인물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일본화의 어법을 한국적 현대성으로 옮기는 길을 모색했고, 1950년대 중반 〈이른 아침〉과 〈노점〉 같은 작품에서 입체주의적 구성과 대담한 색 대비를 시험해 대통령상을 거듭 받았다.
1956년의 〈봄 C〉는 박래현이 등나무를 그리고 김기창이 참새와 글을 더한 협업으로, 부부 예술의 독특한 호흡을 보여 준다. 1964~65년 해외 순회전을 계기로 그는 추상으로 급격히 방향을 틀어 ‘맷방석’·‘엽전’으로 불리는 역동적 색면과 먹의 번짐을 전개했다. 이 흐름 속에서 1966~67년에 그린 〈영광〉은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되어 강렬한 원색과 동양적 수묵성이 만나는 대표작으로 기억된다. 이어 1967~74년 뉴욕 체류 동안 판화와 태피스트리로 표현 영역을 넓히며 〈리콜렉션〉, 〈가면〉, 〈고완〉 등 완성도 높은 연작을 남겼다. 1976년 간암으로 타계했으나, 그의 화업은 동양화 재료와 기법을 넘어 세계성과 현대성을 품은 독립적 성취로 오늘 다시 읽히고 있다. 한동안 ‘운보의 아내’라는 호명에 가려져 있었지만, 지금 우리는 박래현을 자기 언어로 시대를 돌파한 한 명의 작가로 마주한다.
-이 미술 단편에 실린 〈부엉이(부엉새)〉는 그런 그의 시선—밤을 견디는 주인의식과 조용한 생명력—을 상징처럼 응축한 소설이다.
_박래현을 읽는 시골 책방 이야기
눈이 아주 얇게 내린다. 유리문 방울이 ‘딸랑’하고 흔들리고, 난로가 작은 숨을 내쉰다. 오늘도 우리 책방은 ‘낭독의 밤’을 연다. 오늘 읽을 사람은 박래현. 살림과 그림을 함께 붙들고, 하루를 끝까지 데워 살던 사람. 1965년, 남편 김기창과 먼 길을 다녀와 여행을 글과 그림으로 묶어 냈다. 나는 그 문장과 색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조금 더 따뜻해진다.
나는 시골 작은 책방의 주인, 혜미다. 겨울밤이면 난로 위에 귤을 굽고, 낮에는 노란 티셔츠에 회색 앞치마를 두른다. 벽은 옅은 하늘색이다. 들어오는 이가 숨을 고르고, 나갈 때는 마음이 한 톤 밝아지길 바라서. 남편은 숫자 속에서 일하지만 내 글을 믿어 준다. 아이는 역사와 언어를 좋아해서, 집에서는 질문이 곧 이야기로 자란다. 우리는 서로에게 음악과 영화, 책을 건넨다. 그게 우리 집의 불씨다.
문을 열면 김이 안쪽으로 밀려들고 젖은 나무 냄새가 난다. 나는 그 냄새를 ‘회색’이라 부른다. 겨울의 가운데를 지나갈 때 필요한 색. 어중간해서가 아니라, 하루를 다 품어 주는 색.
“오늘은 어떤 글을 읽나요?” 칠순을 갓 넘긴 동네 어르신이 묻는다. “부엉이요. 박래현 선생님의 그림에서 빌린 부엉이요.” 사람들이 들어온다. 체크무늬 모포를 무릎에 덮고, 장갑을 벗고, 손을 난로 위에 살짝 올린다. 친구 연희가 먼저 와서 귤을 뒤집는다. 껍질이 얇게 갈라지며 단내가 돈다. 저 냄새는 꼭 어린 시절 엄마가 끓여 주던 귤차와 닮았다.
박래현을 읽기 전에, 나는 잠깐 다른 책을 펼친다. 겨울을 문턱에 앉혀 두는 데 이만한 문장이 없어서다. “아놀드 로벨, 『집에 있는 부엉이』에서 떠오른 문장인데요.” 나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읽는다.
“겨울이 문을 두드린다. 난로 곁에 자리를 내어 준다. 잠시 안으로 들어와, 몸도 마음도 데우자.”
귤 냄새가 한 바퀴 돌고 모포 위 손끝들이 조금 느슨해진다. “그래요, 오늘은 겨울을 문밖에 세워 두지 맙시다. 난로 곁 한자리를 내주고, 그 사이에 우리 마음도 같이 데웁시다.” 나는 책을 덮고 첫 낭독을 시작한다. “어떤 밤은, 나는 부엉이처럼 깨어 있었다.” 목소리가 방 안을 한 바퀴 돌고, 난로빛이 얼굴마다 고르게 앉는다. 아이의 친구 정원이는 노트에 단어를 한 줄씩 모은다. 낮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살다가, 밤이 되면 마음의 자리를 찾으러 오는 사람들. 박래현이 살림을 하고 밤에 그림을 그렸다면, 우리는 일을 마치고 밤에 문장을 읊는다.
한 바퀴가 끝나면 방이 조금 더 밝아진다. 연희가 쪽지를 건넨다. “오늘은 하늘색으로 쓰자.” “또 회색이 많았어?” “응. 상처도 빛이니까. 한 톤만 올리자.” 연희는 나를 쉬게 하는 사람이다. 아픈 데를 굳이 더듬지 않지만, 아픔이 있다는 사실만은 놓치지 않는다.
그녀가 말하는 하늘색은 이런 것이다. 귤 한 조각이 혀에서 사라질 때의 온도, 주전자 김이 유리창에 그리는 둥근 숨, 낭독 뒤 한 박자 쉬고 터지는 웃음. 나는 그 순간을 잃지 않으려고 공책 끝에 점 하나를 찍는다. 다음 글은 늘 그 점에서 시작된다.
밤이 조금 더 깊어지면 난로의 노랑이 차분해지고 벽에 푸른 그늘이 앉는다. 떠난 사람들의 체온이 천천히 가라앉는 시간. 나는 박래현의 부엉이를 떠올린다. 회색의 몸, 노란 눈, 어깨에 스민 하늘색, 숲이 드리운 푸른 그늘. 그리고 한 줄을 적는다. “나는 화가가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림 앞에서 더 잘 산다.”
어느 겨울밤, 오래 알던 이가 말했다. “에세이가 가볍다.” 그 말을 문고리에 걸어 두고도, 나는 문을 연다. 그날도 낭독은 시작된다. “오늘은 마음이 좀 아프다.” 잠깐의 고요 뒤에 어르신이 말한다. “얕은 물은 멀리서도 햇빛을 크게 반사해요. 바다가 깊어지는 길도, 처음엔 얕은 물에서 시작되죠.” 정원이는 박수를 치고, 연희는 귤 접시를 앞으로 밀어준다. 그날 알았다. 글은 혼자 쓰지만 글이 살아갈 곳은 함께라는 것을. 우리는 서로의 말에 노란 불을 보탠다.
밤이 저물면 불씨를 덮고 재를 고르고 다음 날을 위해 장작을 쌓는다. 내 하루의 순서는 단순하다. 회색이 자리를 깔고, 노랑이 덥히고, 하늘색이 숨을 길게 해 주고, 푸른 그늘이 쉼의 자리를 만든다.
문을 닫기 전, 벽의 작은 포스터를 본다. 박래현의 부엉이. ‘살림하느라, 일하느라 고단하지?’ 난로의 잔열이 식어 갈 때 연희에게서 메시지가 온다. “혜미야, 오늘의 그림 한 장만.” 나는 하늘색 점 옆에 쓴다. “난로가 있는 책방에서, 회색의 하루를 노랗게 덥히고, 하늘색의 숨을 나누고, 푸른 자리에 문장을 앉힌다.”
내일도 유리문 풍경은 ‘딸랑’하고 흔들린다. 사람들은 난로 곁에 앉고, 우리는 서로의 글을 읽는다. 누구의 상처도 지나치게 들여다보지 않되, 있다는 사실만은 끝까지 지킨다. 부엉이는 잠깐 눈을 감고, 우리는 한 줄을 더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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