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상래 Sep 15. 2021

기울어져 흐르는 시간일지라도 욕망한다.

외젠 들라크루아/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La Liberté guidant le peuple/1830년/낭만주의

결국 엄마란 그런 거다. 아이 등교로 내 시간이 잠시 생겼다며 좋아하다가도 아이 하교시간 알람이 울리면 걱정이 앞선다. 아이의 하교는, 수업시간이 35분으로 짧아져 12시 30분이다. 피아노 학원은 1시에 시작이다. 고로, 피아노 등원 시간까지 30분이 남는다. 급식을 원하지 않아 굶고 나왔을 텐데 아침에 챙겨간 3천 원으로 혼자서 뭐라도 사 먹고 있을까? 혼자 슈퍼에 가는 건 생각도 하지 않던 아이가 어쩐 일인지 내가 사준 다람쥐 지갑에 3천 원을 챙기던 오전. 배고프면 뭐라도 사 먹겠다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난 이후의 시간을 돌아본다. 모처럼 시간이 생기니 잠시라도 쉬어볼 요량이었다. 그리고 아이방 정리를 하며 오전 시간을 쪼개어 쓸 예정이었다. 나는 쉬었나? 모닝 페이지를 올리면서 잠시 책을 펼쳐 든 일 말고 친구가 챙겨준 직접 만든 '오징어 먹물 빵'을 베어 물면서 말고 쉬질 못했다. 그렇다면 내 시간은 없었던 걸까? 차근차근 짚어본다.



아이를 학교 앞에 내려주고 친구네. 추석 때 올라오실 어머님 선물로 청귤청을 사려고 말이다. 내게 주어진 수다 시간은 한 시간. 친구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그간의 내 일과 고 3 수험생이 있는 친구의 근황을 주고받는다. 말이란 주고받는 대화여야 하는데 우리는 대화를 한 게 맞는 걸까? 우리의 언어만을 일방적으로 뱉어낸 것은 아닐까? 수다를 풀기에 한 시간은 너무나 짧다. 다음 스케줄이 있어 인사를 남기고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



청귤청을 담을 예쁜 포장박스까지 챙겨 집까지 걸어가는 시간을 계산한다. '수원문화재단' 비대면 미팅까지는 20분이 남았다. 있는 힘껏 걸음을 재촉한다. 어느새 찌뿌둥한 하늘이 걷히고 하얀 솜털 같은 구름이 두둥실 떠다닌다. 3백만 원짜리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과연 이 돈으로 우리는 기간 안에 퀄리티 있는 동화책을 3권이나 만들 수 있을까? 얼마나 가슴에 무거운 돌을 얹고 걱정을 했던가.



'수원문화재단'과의 비대면 미팅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동화책을 꼭 완성본으로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나는 어쩌다가 동화책까지 손대고 있다) 아이디어를 모아 작업을 한 뒤 가안을 프린트해서 내는 형식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에세이 원고 작업으로 머릿속이 무겁던 때에, 동화책 작업까지 생각하며 요 며칠? 한 주를 혼자 끙끙 앓았다. 아이를 보내고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이제야 긴 숨을 쉬게 되는구나.


시간은 금이다. 특히나 하고자 하는 일들이 분명하게 있을 땐 아침 시간도 세밀하게 쪼개어 써야만 한다. 아무도 내게 말을 시키지 않는 시간. 오롯이 혼자만 무슨 생각이든 할 수 있는 시간. 일부러 찾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시간. 금쪽같은 내 새끼에 버금가는 금쪽같은 내 시간.


벌써 아이가 하원 할 시간이 다가온다. 6백 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어대는 통에 교과서보다 애정 하는 책의 무게로 더 무거워진 아이의 가방. 체르니 40번과 모차르트 곡집이 들어있는 피아노 가방. 벽돌 같은 가방의 무게를 덜어주자 하던 차에 피아노 학원에 등원했다는 문자가 왔다. 유한이는 핸드폰이 없어서 선생님이 등. 하원 시 문자를 보내주신다. 물론, 유한이만 해당하는 건 아니고 학원을 다니는 모든 아이들이 그렇다. 한시름 덜었다. 가지고 간 3천 원은 얌전히 가방 속에 앉아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배가 많이 고플 텐데...


부지런히 쓴 내 아침 시간을 닫고 아이를 배웅하러 갈 시간. 아이가 없는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그저 흐르는 대로 살게 된다. 나답게 살기 위해 오늘도 거실에 앉아 테이블 위의 자판을 두들긴다. 나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요새 유한인 부쩍 큰 느낌이 든다. 초등학교 4학년. 엄마가 수업 가고 없는 시간, 혼자 영어책을 꺼내 공부하고 학교 갈 가방을 다 싸놓고 입을 옷가지들도 가지런히 책상 옆에 둔다. 그러고도 엄마가 집에 도착하지 않은 며칠 전, 서점에서 사 온 종이접기 책을 펼치고 근사한 4단 합체 미니카를 접고 있었다. 벌써 이만큼이나 컸나 싶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던 시간. 엄마 편하게 해 주려고 태어난 아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참 기특한 아이다. 자기 자식 예쁘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객관적인 사실만으로도 유한이는 참 손이 안 가는 아이였고 지금도 그렇다. 이렇게 오전에 시작한 조각 글을 정리하는 동안 옆에서 조용히 앉아 ‘테메레르’를 읽고 있다.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양의 판타지 소설을 진득하게 앉아 읽어낸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갖는 것처럼 유한이도 그저 좋아서 선택한 취미다. 학교 수업, 피아노 학원 다녀오느라 책 읽을 시간이 줄어드는 걸 아까워하는 아이다. “엄마! 드디어 로렌스와 테메레르가 만났어!” 7백 페이지에 가까운 두꺼운 책을 8권째 읽고 있다. 읽고 또 읽느라 도서관엘 자주 가게 된다. 건축가가 꿈이던 아이가 영화감독이 되고 싶단다. 피터 잭슨 감독이 맡겠다던 ‘테메레르’는 영화로의 진전이 없는 모양이다.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해서 톰 홀랜드도 만나 보고 싶고 주인공들 역엔 누굴 쓰고 주연 역엔 누굴 쓴다며, 중국용 목소리는 누구로, 영국용 목소리는 누구를 쓰겠다는 시나리오가 이미 머릿속에 그려져 있다고 한다.


멋지지 않나. 판타지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는 게!

내 아이가 아니었어도 그 꿈을 지지했을 거다.



꿈 없이 사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무언가 되고 싶은 게 있다는 것. 참말 기특해서 한번 더 쳐다보게 된다. 최대한의 자유를 허락하는 우리 집에선 짬짬이 늘어져 책 읽는 일은 당연한 일. 본인이 좋아한다면 더 좋고~


바닷가에는 하루에 두 번씩의 밀물과 썰물이 교차한다. 만조와 간조가 매일 정확히 49분씩 늦어진다. 그건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시간이 24시간 49분이라서 그렇다고 과학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내 시간, 나의 삶, 엄마의 삶을 들여다본다. 똑바로 걷고 있지만 어딘가 기울어져 흐르는 느낌. 촘촘하게 아껴 쓰고 에너지 낭비를 아무리 줄여도 어딘가 새어나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금세 달아나버리는 기울어진 시간들. 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내 삶의 규칙 속에서 작은 도전들을 이어가며 내 시간을 욕망하며 살아가고 있다. 언제 또 간조가 될지 모르니, 물 들어왔을 때 열심히 노 젓는 걸로.


외젠 들라크루아(프랑스어: Eugène Delacroix, 1798년 4월 26일 ~ 1863년 8월 13일)는 프랑스 낭만주의의 중요한 화가입니다. 19세기 낭만주의 예술의 최고 대표자로 손꼽히고 있고요.

작품의 소재는 종교·신화·문학·역사에서부터 현실의 풍속·인물·풍경·정물 등 다양하죠.
 벽화·장식을 포함한 유화 외에 데생·수채화·파스텔 화·판화 등 방대한 작품을 제작했고, 또한, 예술에 관한 깊은 생각과 관찰을 일기·평론·편지 등에 많이 기록하여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자연을 구사하여 현실을 초월한 진실 속에 상상 세계에서의 인간의 모습과, 영웅적인 모습이 되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이 담겨 있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내게도 기회가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