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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 노마드 Mar 07. 2024

이건 피자가 아니잖아요

캐나다 사람들이 피자를 대하는 태도

북미 본토 음식에 대한 갈망이 사라지자 제대로 된 밥이 먹고 싶어졌다. 한국식 중국집이 딱 한 군데 있는 도시에 살다 보니 늘 한식이 아쉬웠다. 요리라고는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도 없던 우리 부부가 결국은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셀프 요리세계에 입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카카오톡이라는 게 존재하지도 않던 시기에 떠났던 캐나다여서 엄마한테 쉽게 레시피를 묻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요알못 두 사람이 감자탕, 수육, 족발, 양념치킨까지 집에서 만들게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역시 목마른 자는 우물을 파게 마련이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몸소 느꼈다. 음식으로. 한국에선 발에 치일 만큼 많은 양념치킨, 한국식 피자, 김밥, 순대, 곱창, 활어회. 모두 내가 사는 도시에선 먹기 힘든 음식이었다. 못 먹는다고 하니 더 먹고 싶어 지는 건지, 외국에 나와 살다 보니 피자가 물리는 건지. 둘 다인지. 외국에 나와 살다 보니 한식에서 내 정체성을 찾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부지런히 부엌을 들락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모국어는 1.5세대 이민자도 잃어버릴 수 있는 무언가다. 2세대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입맛은 다르다. 한국어를 못해도 한국사람은 한국음식을 찾는다. 음식이 내 핏속에 녹아들어 DNA를 타고 넘나드는 게 분명하다. H마트에서 엄마를 찾던 그 작가님도 아마 비슷한 사정이었으리라. 


다양한 인종이 사는 캐나다인 만큼 음식도 다양하다. 원하기만 한다면 각국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다이내믹한 곳이다. 그러나 다 같은 음식이라도 나에게 한식은 밥이다. 한국에서는 찾아본 적도 없는 그놈, 밥심이다. 



케이팝이라는 개념이 아직 없던 시절. 나와 한식의 밥심을 나눌 대학원 동기가 생겼다. 백인이었다. 한국을 너무 좋아해서 한국에서 강사를 했을 만큼 한국과 한식을 사랑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를 초대해 한식을 대접하는 게 우리 부부의 기쁨 중 하나였을 정도였다. 여러모로 참 고마운 친구였다. 


그런 그 친구와 한국식 외국요리에 대해 크게 의견이 갈리는 게 있었다. 바로 피자였다. 


한국식 외국음식 중 대표 음식은 중국의 짜장면과 짬뽕이다. 이제는 원래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완전 다른 친구가 되어 버린 두 음식과 비교해서 한국식 피자는 본토의 느낌을 뿜뿜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 생각해 보니 피자 종주국은 이탈리아인가. 하하하. 


파인애플 피자를 두고 이게 피자네, 아니네 했으면 내가 백번 양보해서 인정할 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파인애플 피자를 먹는 사람이다. 민초단과 비교는 말아주시길). 하지만 그 친구가 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페퍼로니 피자와 치즈 피자를 제외한 모든 한국식 피자. 아니 그러니까, 새우 토핑, 고구마 무스, 심지어 치즈 크러스트까지. 그런 애들은 다 피자가 아니라는 거다.


가뜩이나 한국식 피자집은 존재하지도 않던 그 시절. 한국에서 한국식 피자를 먹어봤던 캐내디언 친구랑 피자의 기준에 대해 심각하게 의견차이가 있었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넌 한식은 좋아하지만. 그래. 결국 캐내디언인 거야!'라고 생각하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던 내게. 어떻게 타협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도 힘든... 그런 중차대한 위기가 찾아왔다. 그 위기는 그렇게 바라고 마지않던 한국식 피자가게가 내가 사는 곳에 생긴 얼마 전으로 돌아간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 그런가 우리 애들은 피자를 좋아한다. 우리 부부는 물론 한국식 피자를 애정한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피자가게가 생겼지만, 비행기로 14시간도 아니고. 뭐 환승도 필요 없는데 그까짓 거 못 갈 건 뭐겠는가. 부푼 마음을 안고 한국식 피자가게가 오픈하자마자 달려갔다.


"그래. 바로 이게 피자지!"

한국식 피자. 아... 또 먹고 싶네.

그런데 애들이 피자를 깨작거리더니 "엄마. 새우만 골라주세요"라고 말했다. "뭐시라?" 

...... 그리고 우리 아들이 한 마디 했다. 


"이건 피자가 아니에요. 그냥 딴 거 먹을래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넌 누구냐. 한식 좋아하던 내 아들 어디 갔어! 이 캐내디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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