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도 일이 없으면 칼퇴근하던 K-직장인이었지만 최소 주 40시간 근무, 저녁 회식, 지옥철은 여전히 나의 삶을 망가트리는 주범이었다. 아마 내가 직장에 최적화된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일 거다.
토요일에도 학교에 가야 했던 시절도 있었으니, 금요일까지 출근하는 게 다행인거지 싶다가도. 주말 근무와 야근을 떠올리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회사를 마치고 부랴부랴 달려갔던 학원에서 꾸벅꾸벅 졸던 내 모습이 지금도 손에 잡힐 듯 쉽게 떠오른다. 때로는 자기 계발을 위해. 때로는 투잡을 위해. 때로는 미래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희망과 열망을 가지고 살던 때도 있었지만. 회사를 위한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는 쉽게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 버렸다. 그땐 내가 그런 상태인지 인지조차 없었지만. 결국 저녁에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는 게 낙이던 번아웃 시절도 있었더랬다.
난 여전히 직장 사이클에 최적화된 인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캐나다 회사에 다녀서 좋은 점이 있다. 내가 일하는 곳이 워라밸을 찐으로 보장해 주는 곳이라는 점이다.
한국이었으면 드림잡?
한국이었으면 드림잡이라고 불렸으려나?
조금 아쉬운 주 4일 근무제도 이긴 하지만.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는 2주에 70시간 해야 하는 근무를 9일에 일할 수 있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컴프레스드 워크 위크 라고 부르는데 (Compressed Work Week, CWW), 굳이 번역하자면 압축근무라고 불러야 할것 같다. 캐나다 평균 근무시간이 37.5시간인 것을 감안하면 1주일 근무시간 자체가 35시간 인 것이 우리 회사가 압축근무를 좀 더 쉽게 만든 이유였을 것이다.
이 제도를 이용해 대부분의 직원들은 2주에 한번 금요일에 쉬거나, 월요일에 쉰다. 게다가 회사와 노조의 계약 조건 중 하나로, 근무 시간 중 30분 정도는 휴식시간이 보장되기 때문에 결국 매일 약 15분 정도만 더 근무하면 돼서 부담이 적다. 우리 팀은 핵심 근무시간을 제외하고는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점심에도 쭉 일하고 일찍 퇴근하기도 한다.
그렇게 첫째 주에 주 5일 근무를 했으면, 두 번째 주에는 주 4일 근무를 하게 된다. 덤으로 일주일에 며칠을 근무하든, 일하는 주에 쓸 본인 휴가나 공휴일의 여부와 상관없이 일주일에 2회 재택근무를 한다. 캐나다는 월요일에 공휴일이 많아서 일주일에 한 번만 출근하는 경우도 꽤 생기고, 개인 사정에 따라 재택근무만 하는 주도 생기게 된다.
이런 유연한 근무 방식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날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부처 내에 있는 거의 모든 팀이 같은 근무제도를 활용하다 보니월요일이나 금요일엔 회의가 매우 적거나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평일에 하루 쉬는 날을 활용해서 병원 업무도 볼 수 있고,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많이 된다.
금요일에 12시까지만 초등학교를 운영하는 도시에 살다 보니 워킹맘인 나에게 편한 점도 있다. 학업시간이 짧은 금요일을 제외하고도 선생님과 상담하는 날도 학교가 쉬는 날이고, 학생이나 교사의 자기 계발 데이 같은 것도 있어서 연중에 방학 말고도 아이들이 학교를 쉬는 날이 많은 편이라 유동적인 근무조건이 있는 게 정말 큰 장점이다.
캐나다의 주 4일 제도, 플러스알파 재택근무. 어디까지 왔을까?
캐나다에 있는 모든 회사가 그렇냐 물으신다면, 대답은 아직 '노'이다. 캐나다에서 처음 들어간 주정부에서도 위에서 설명한 CWW라는 압축근무제도가 존재하긴 했는데, 매니저 재량에 따라 소수의 팀만 활용하는 제도여서 유명무실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다니는 회사는 같은 공무원 조직이라도 좀 더 유연하다고 하겠다.
캐나다 직장의 근무 유연성으로 따지자면, 캐나다 금융회사나 보험 쪽은 완전 재택근무가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다. 내가 다니던 전 직장도 평생 재택근무를 보장해 주는 사기업이었다. 완전 재택근무까지는 아니더라도 캐나다 공무원 조직도, 일반 기업들도 하이브리드 근무 (재택 + 출근) 제도는 많이 자리를 잡은 편이다.
다만 캐나다에서도 100% 급여에 80% 근무를 하는 진정한 주 4일 제도는 아직 파일럿 수준이다. 그래도 긍정적인 신호가 하나 있다면, 캐나다 토론토가 속해있는 온타리오주에서 2022년, 주 4일 제도 시행령을 만들고 파일럿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온타리오주 지방 소도시에 있는 한 공공기관에서 처음 주 4일 32시간 근무 파일럿이 시작되었다. 시행 결과, 생산성면으로나 직원 만족도 면으로나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지금은 온타리오주에 있는 다른 소도시 공공기관들이 파일럿을 시행중이고, 일부는 회사 제도로 완전히 정착시키기도 했다.
아직 캐나다 전체로 퍼질 조짐이 보이진 않지만, 영연방 국가들이 주4일 근무 파일럿을 시행중이고, 영구제도로 편입시키는 흐름을 보면 여기도 언젠가 주 4일 근무제도가 완전히 정착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저녁이 있는 삶
나는 저녁도, 주말도, 평일도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캐나다에 와서 쌉싸름한 일들도 많았지만, 저녁이 있는 삶이 참 감사하다. 일은 바빠도, 퇴근 후엔 일을 잊을 수 있는 삶이 있다는 게 참 행복한 삶이라는 걸 이제와 더 가슴 깊이 느낀다.
몇몇 친구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이민을 가고 싶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저녁이 있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