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배꼽티를 입고 버스를 타는 이곳
여기선 내가 패셔니스타
처음 캐나다에 왔을 무렵이니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평생을 뚜벅이로 살았기 때문에 캐나다 버스에도 금방 적응할 줄 알았는데. 나의 첫 캐나다 문화충격은 익숙하다 못해 조금 지겨운 버스 안에서 시작되었다.
일초라도 빨리빨리
시작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뒷문 때문이었다.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선 버스 안에 줄을 당겨야 했다. 가끔 하차벨이 있는 버스도 있었지만 대게는 줄을 당겨야 했다. 어색한 '줄 당기기' 행위를 하고 나면 심장을 콩닥이게 만드는 뒷문에 서야 했다. 버스마다 뒷문을 여는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이다. 버스기사가 문을 직접 열어주지 않기 때문에 내릴 사람이 알아서 뒷문을 열어야 한다. 손을 흔들어서 내려야 하는 문도 있고, 뒷문을 직접 손으로 밀어야 하는 문도 있다. 특히 손을 흔들어서 내려야 하는 뒷문이 관건인데, 버스가 가끔 손동작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빠른 승하차가 관건이지 않는가. 뭐든지 1초라도 늦어지면 얼굴이 뜨거워지고 마니까. '늦게 내린다고 욕하겠다'. 셀프 눈총은 덤이다. 캐나다에서도 뒷문이 조금이라도 늦게 열릴까 가슴이 콩닥이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내가 1초라도 빨리 열기 위해 애썼던 문이 사실은 내 마음속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여기선 유모차를 가지고 타는 양육자를 위해 버스 기사가 앞문에서 발판을 내려준다.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기다린다. 아무도 심술 가득한 표정으로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한숨도 쉬지 않는다. 유모차가 오는 것이 보이면, 버스 앞칸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의자를 접는다 (그렇다. 휠체어나 유모차 등이 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평소엔 내려서 의자로 쓰고, 필요하면 접어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자신은 뒤로 이동하고 그곳에 유모차가 올라올 수 있게 비킨다. 뒤에서 누가 지휘하는 것 마냥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모든 과정에 시간이 소요되지만 다들 당연하다는 듯 무심히 자기 할 일만 할 뿐이다. 이들에겐 그저 당연한 일일 뿐인 거다.
내게 한국에서 대중교통을 타는 행위는 조급함과 약간의 불안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버스가 제시간에 오는가. 저 지하철에 내가 탈 자리가 있나. 버스가 제시간에 도착할 것인가. 앞사람은 왜 저렇게 늦게 걸어가지. 에스컬레이터에선 한쪽은 줄 서고, 한쪽은 걸어가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좀 빨리빨리 움직 일순 없나. 이런 생각, 감정, 행동이 그저 당연하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무척 조급하고, 꽤나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었다. 내가 사실은 여유를 좋아한다는 자각조차도. 먼 타국에서 나를 더 잘 알게 돼버린. 그런 날들이었다.
내가 뒷문에서 1초 늦게 내린다고 눈총 주는 사람이... 사실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내가 만들어 낸 감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삶. 내가 여유가 없었구나. 깨닫고 나니 내가 만든 감옥의 열쇠는 내가 손에 이미 쥐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남의 눈 - 배꼽티, 삐쪄 나온 살, 레깅스
캐나다 버스 뒷문에 서도 더 이상 가슴이 콩닥거릴 일이 없어진 어느 날. 나의 방심을 틈타 캐나다에서 첫 문화 충격을 받게 된다.
어디를 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차로 15분 거리도 1시간을 버스를 타고 다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볕이 따뜻한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있었다. 무심코 눈을 돌려 승차 승객을 바라보았다. 별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검은색 보단 하얀색이 더 많은 머리가 보이고. 머리 위에 얹힌 선글라스가 보이고. 그리고 배꼽티를 입은 할머니가 보였다. 아 여름이었나 보다.
너무 깜짝 놀라서 순간 숨을 1초 멈췄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날 그 버스에서 뱃살의 상당수가 티셔츠 밖으로 삐져나온 어떤 남자가 여자친구와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어떻게 여자친구인지 알았는지는...
팔꿈치에 구멍 난 옷을 입고 버스에 탄 사람도 만났다. 패션은 아니었다. 학교 캠퍼스에선 당시 유행하던 레깅스를 남학생이 입고 가는 걸 봤다. 아, 물론. 티셔츠가 엉덩이를 가리진 않았다. 짧은 티셔츠에 레깅스를 입는 게 캐나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나름 국룰이던 시절이라(고 생각했다. 하도 그런 애들이 많아서).
그리고 아. 무. 도. 이들의 패션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에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이 보다 더 한 패션도 많이 만났지만. 나도 이제 신경 쓰지 않는다. 옷은 입고 싶은 대로. 입고 싶은 옷을. 입을 뿐이니까.
캐나다에선 심심치 않게 구멍 나고 해진 옷을 입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다들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입은 사람도. 그 사람을 지나쳐 가는 사람들도. 내 알바 아니라는 분위기다. 물론 회사나 일부 대도시에선 옷차림을 제대로 갖춰 입어야 한다는 인식은 분명 존재한다. 다만 캐나다에서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문화가 분명히 있다. 외모지적이 적은 사회. 누군가의 희한한 옷차람에 대해 뒤에서 수군거릴지는 몰라도 앞담화는 하지 않는 문화. 이 점이 의외로 사람의 숨통을 틔이게 한다.
덕분에 나는 패셔니스타
내가 캐나다 온 뒤. 엘리베이터 안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혹은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종종 받았던 질문이 하나 있다. "이 옷 어디서 샀어요?" 한국에선 평범하다 못해 무슨 옷을 입었는지 기억하지도 못할 옷들을 이곳에선 패셔너블하게 느낀다. 의도치 않게 패셔니스타가 되었달까.
남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게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날들이 조금은 어색해진 순간이었달까. 완전히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날은 나에게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남의 기준, 남의 시선, 남의 생각. 그 모든 게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곳에 와서, 이곳에 살면서 느꼈던 한 가지 달콤함을 꼽자면. 바로 이 해방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