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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 노마드 Mar 25. 2024

연봉 1억을 박찼더니, 쪽박

이직이 망하는 이유

회사는 연봉이 전부지!

"또각또각또각"

깔끔한 정장을 입고, 하이힐을 신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하는 커리어 우먼. 자기 일에 매진하는 사람. 팀원들과 함께 열정적으로 일하고,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내놓는 사람.


직장인이 되면 그런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힘들지만, 재밌고 보람찬 하루를 보내는 그런 직장인. 침대에 누우면, 후회가 없는 하루를 보냈다는 뿌듯함으로 가득 차는 기분. 나는 그런 게 직장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누가 이상주의자 아니랄까 봐.


놀랍지도 않지만, 회사를 다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생각은 금방 바뀌었다. "회사는 무조건 연봉이지"라는 생각으로. 생각이 바뀌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선, 회사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모아 놓은 집합소로 느껴졌다. 그런 곳에서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남을 위해 일하니까, 그에 합당하는 대가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원은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부품 같은 거야"라는 선배의 말이 회사는 돈이 다라는 내 편견을 더욱 공고히 만들었다. 내가 부품이라면 부품값을 받아야 하는 게 당연하니까. 내 가치가 그들에게 그 정도라면, 나도 그 정도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대의 나는 회사에선 자아실현 따위는 이룰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그 돈을 벌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게 인생이라고 굳게 믿었다.


말뚝을 박아?

세월이 지나고, 캐나다로 이민을 오고, 전공을 바꿔서 대학원까지 진학하고, 애도 둘 쯤 낳고 30대가 지나자 내 사고방식은 많이 변하게 되었다. 둘째가 돌 때쯤 되었을 때 박사 과정을 잠시 멈추고 들어갔던 캐나다 첫 직장에서 드디어 내 평생직장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남을 돕고, 나도 같이 성장할 수 있었으며, 내 노고를 알아주는 곳이었다. 인생 처음 멘토도 만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이 회사의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점이 제일 좋았다.


입사 3년 차에는 연봉 10만 불이 (약 1억 원) 넘어서 공공기관 연봉 공개 방침에 따라 선샤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연봉 1억 직장인은 상위 5% 정도의 고소득이지만 캐나다에선 약 20프로의 직장인이 약 1억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 적은 소득은 아니지만 고소득이라고 볼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집도 사고 터를 닦을 만큼 안정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한 연봉이었다.


그랬던 이 회사를 떠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실 그 이유는 중요치 않다.


이전 글에서 밝힌 대로, 이직 시그널이 뜨면 이직을 하거나, 계약이 끝나면 회사를 그만두는 계약직을 다니다 보니 캐나다에선 이곳이 내 첫 직장이었으나, 내 커리어에선 벌써 5번째 직장이었다.


여러 회사를 다녀보니 내가 원하는 게 점점 더 분명해져서 사실 이번엔 진짜 평생 말뚝 박고 다닐 줄 알았지만.


이직이 망하는 이유

여러 가지 이유로 1억이 넘는 연봉을 박차고 주를 이동해 다른 회사를 갔다. 그 덕에 내 생활 자체는 행복해졌지만, 직장은 아니었다. 쪽박이었다.


이직이 왜 망하냐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아직도 자신에 대한 파악이 덜 끝나서. 둘째,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요소 때문이다.


나도 나를 아직 몰라

공기업에서 사기업으로 이직했기 때문에, 새로운 회사에선 팀원들과 성과 경쟁을 해야 했다. 사기업의 사업 구조가 나랑 맞지 않는다는 것도 새삼스레 깨닫게 됐다.


한국에서는 사기업만 다녔었기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내 가치관이 더욱 뚜렷해지다 보니, 세일즈 타깃을 외치는 회사에 거부감이 커진 것이 한몫했다.


컨트롤 밖의 요소들

나는 연봉을 낮춰가도 평생 재택근무만 가능하면 다 용서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급여가 낮아진 만큼 직책이 내려가니 일이 지루해지고, 마냥 꽃밭일 것 같았던 재택근무에서는 의외의 단점을 발견했다. 바로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일 때문이었다.


평생 재택근무의 최대 단점은 같이 일할 사람들과 업무 얘기만 하다 보니 친해질 일도, 동질감을 느낄 일도 매우 적다는 것이었다. 기존에 알던 팀원들과 하는 재택근무는 괜찮았지만, 처음 만나는 매니저와 팀원들과 하는 재택근무는 그야말로 "안녕하세요. 오늘 이 미팅은..." 하며 회의를 시작하고, "다음 주에 다음 안건으로 만나서 얘기해요. 그럼 들어가세요."로 끝났다. 더군다나 기존 멤버들은 오프라인에서 알고 지내던 사이라 그런지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나눌 동료, 회사 생활의 희로애락을 나눌 팀, 쉽게 드러나지 않는 회사의 숨은 문화를 알 수 있는 기회, 소소한 이야기들, 한 잔의 커피. 이 모든 것들을 빼앗기고 난 인간관계는 얄팍하기 그지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팀 사람들과 매니저는 좋은 사람인 것 같았는데,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이라도 다 같이 모였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지만, 팀원들이 모두 미국과 캐나다 이곳저곳에 살고 있는지라 비용 문제로 인해 성사되지 못했다. 사람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다는 게 이런 경우에도 해당된다는 걸 알게 됐다.



이직할 때는 연봉 같은 겉으로 보이는 요소보다 리더십이나 회사 문화 같은 보이지 않는 요소 때문에 이직의 승패가 결정된다. 그리고 그 승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많이 옮겨 봐도 내가 몰랐던 나에 대해 알게 되거나, 미리 알 수 없었던 남의 대해서 알게 된다. 결국 옮겨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직의 성공 여부를 점치기란 참 어렵다.


그렇기에 차라리 버티는 게 나을 때. 어떻게 더 잘 버틸 수 있을까? 이제 그 얘기를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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