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sco #1
작년 크리스마스 때 페루 항공권을 산 이후, 1월 내 생일에 아들에게 책을 선물 받았다. 영어판 페루 여행서의 베스트셀러인 Lonely planet에서 발간된 페루 여행안내서였다. 페루 여행 책자라면 표지가 당연히 마추픽추여야 하는데, 이 책의 표지에는 알록달록 말 그대로 무지개 같은 산이 대문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 표지 사진을 통해 나는 처음 무지개 산을 알게 되었고, 마추픽추에 이어 이곳이 나의 페루 여행 새로운 버킷 리스트가 되었다. 무지개산 (Rainbow Mountain)은 Vinicunca로 더 많이 불리며, 쿠스코에서 남동쪽으로 4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5,200m에 위치한 이 산은 지구 온난화로 15년 전에 빙하가 녹으며 발견되었다. 산의 일곱 가지 색깔은 사암, 셰일, 자갈, 석회암 등의 물질이 퇴적되고 또 화학적 산화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었다. 이런 지질 형성은 안데스 산맥을 만든 조산 운동의 결과이기도 하다.
마추픽추 마을 Aguas Calientes를 떠나 쿠스코에 도착 후,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르마스 광장 주변 현지 여행사를 다니며 무지개산 투어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여러 군데 여행사를 다닐 필요도 없었다. 세 군데 정도 들어가 보니 패키지 구성과 가격을 대충 파약할 수 있었다. 쿠스코에서 5일이나 머무른 것은, 쿠스코를 여유 있게 즐기기 위함도 컸지만, 좋은 날을 골라 무지개산을 보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앞으로의 5일 동안의 날씨를 확인하고 그중 가장 좋은 날을 골라, 또 저렴한 가격에 흥정을 성공한 여행사와 1인당 60 솔 (25,000원)에 1일 패키지여행을 예약했다. 패키지여행에는 왕복 미니 버스, 영어 가능 가이드, 아침과 점심식사가 포함되었으니 매우 저렴한 딜이었다.
해발 3,500m에 위치한 쿠스코에서 고산병은 페루를 방문한 많은 관광객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그래서 여행 전 약을 처방받아 오거나 페루 현지에서 약을 사 먹기도 한다. 고산병은 건강, 나이차이에 따라 겪는 게 아니고 어느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다. 나와 인숙이는 지난 며칠 동안 고산병 증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무지개산 등반을 하루 앞둔 날과 등산 당일, 인숙이가 캐나다에서 처방받아온 고산병 방지 알약을 한 알씩 먹었다. 그리고 다음날새벽 일찍 출발을 염두에 두고, 등반 전날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4시 반, whatsapp을 통해 버스 운전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숙소 아래에 있으니 어서 내려오란다. 총알처럼 튀어나가 꽤 괜찮은 미니 버스에 몸을 싫었다. 우리 그룹은 페루내국인과 남미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섞인 15명 정도의 그룹이었다. 결론은 스페인어를 못하는 사람은 인숙이와 나 우리 둘 뿐이었다. 하지만 가이드 아브라함은 여행 내내 우리를 위해 스페인어뒤에 꼭 영어로 통역을 해 주었다. 버스는 두 시간 포장도로를 달려 중간 쉼터에서 우리를 내려 주었다. 그곳에서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맛있는 아침 식사를 먹은 후, 두 시간 비포장 도로를 달려 무지개산 입구에 도착했다. 두 시간 비포장 도로를 가는 동안 구름이 끼고 비와 눈이 내리는 좋지 않은 날씨 가운데, 운전수는 능숙하게 가파른 산길을 구불구불 올라갔다. 마추픽추 입구 올라가는 버스길도 아찔했지만, 이곳도 눈을 감고 있는 게 멀미방지에도 또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었다.
주차장에 내려 가이드로부터 주의 사항을 듣고 하이킹 스틱을 하나씩 지급받았다. 무지개 산 쪽을 올려다보니 경사가 심하지 않아 스틱은 우리에겐 짐이 될게 뻔했다. 그래서 필요 없다고 돌려주었더니 가이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지개산을 만나려면 주차장에서 출발해 1.5km, 한 시간 반정도의 산행을 해야 했다. 산행이 어려운 관광객들을 위해 말 (70 솔), ATV (90 솔)로 무지개산까지 태워주는 서비스도 있었다. 1.5km의 한 시간 반짜리 산행은 록키하이커인 우리들에게 식은 죽 먹기였지만, 해발 5,000미터에서의 산행은 완전 다른 스토리였다. 숨을 아무리 깊게 쉬어도 숨이 목까지밖에 안 쉬어지는 얕은 숨을 자주 쉬어야 했다. 우리 일행 중 20대 젊은 남자 청년은 고산병이 심하게 와서 버스에서 아예 내리지 못하고 버스에서 일행을 기다리며 여행 내내 매우 힘들어했다.
하지만 문제는 숨쉬기나 오르막길이 아니었다. 우리 마음을 정말 힘들게 한 것은 진한 구름에 덮여 전~혀~ 보이지 않는 무지개산을 향해 걷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무지개 산에 올라 구름만 보고 내려오는 등산객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하지만 무지개산에 가까워오자 구름이 살~짝~ 걷히며 우리의 아쉬움을 달래주듯 무지개산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이거라도 어디냐며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상은 밟아야 한다는 의지로 오르고 올라 꼭대기에 도착했다. 추위에 부들부들 떨며 "이 정도면 됐고 이젠 내려갈 때가 됐다" 생각하던 그때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그곳에 있던 관광객들은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우리는 억세게 운이 좋은 록키 하이커가 맞았다. 그리고 우리는 인생샷을 남겼다.
주차장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그룹과의 약속시간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산길에 올랐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갑자기 우박에 눈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뒤돌아보니 무지개 산은 다시 구름 속에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산행이 있을까?
한 편의 영화 같았던 정말 기적과도 같았던 무지개 산과의 만남이었다.
억세게 운 좋은 록키 하이커들은 이렇게 무지개산을 선물 받았다.
돌아오는 길, 또 중간 지점에 멈춰 여행사에서 제공해 주는 따뜻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춥고 배고팠던 나는 세 접시를 먹었다. 그리고 쿠스코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며 고생한 가이드와 운전수에게 미화로 팁을 쥐어줬다. 스페인어를 못 알아먹는 우리 둘을 위해 스페인어후 꼭 영어로 통역을 해준 가이드 아브라함이 참 고마웠다.
내가 다시 페루를 간다면 그것은 무지개산 때문이다.
패키지가 아닌 자유 여행으로, 시간 제약을 받지 않고 마음껏 무지개산을 날아다니고 싶다.
페루에 다시 갈 수 있기를...
무지개 산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적이 또 일어나기를...
그때까지 내가 건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