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을 먹고 7시쯤 호텔을 나서 2-3분 거리의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7시, 8시, 9시 푯말 뒤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나는 마추픽추 Circuit 3을 도는 9시 입장권이라 우리보다 앞서 입장할 사람들의 줄을 지나 9시 푯말 끄트머리에 줄을 섰다. 두 시간 전이긴 하지만 우리보다 이삼십 명 정도의 사람들이 9시 푯말 뒤에 서 있었다. 엄청난 인파가 셔틀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었지만, 줄 서기와 셔틀 타기는 매우 합리적으로 질서 있게 진행되었다. 두 시간 줄 서는 동안 엉덩이를 붙일 곳이 있으면 나는 주저앉아 세계 각처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했고 두 시간 기다림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앞에 줄을 선 아저씨 (살짝 훔쳐보니 아르헨티나 여권 소지)가 교양 없이 담배를 꺼내 피우자 WTF를 외치며 모자를 휘둘러댔다. 그러자 아저씨가 내 눈치를 보며 얼른 사라졌다. 그리고 담배를 다 피우고 돌아왔다. 뭐라고 하면 한판 붙을 생각도 있었다.
매우 정신 없어 보이지만 정말 합리적인 줄서기였다. 이렇게 사람들이 다닥다닥 몰려 줄을 서 있는데 요 흰머리에 까만티 입으신 분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교양 없이 배려 없이~
두 시간을 기다리자 드디어 우리가 버스를 탈 차례가 왔다. 페루에 사는 원주민들도 마추픽추를 방문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버스는 Aguas Calientes 마을을 떠나 흙길을 달려 몇 개의 산을 돌고 돌아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너무 아찔해서 차라리 눈을 감고 있는 게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됐고, 멀미를 방지해 주었다. 마추픽추 입구까지 심장 쫄깃 라이드가 30분 정도 걸렸다.
셔틀은 저 산 아래 흙길을 따라 산들을 돌고 돈후 지그재그 길을 올라 우리를 마추픽추 입구에 내려줬다. 오른쪽 사진은 Huayna Picchu에서 마추픽추를 내려다보며 찍었다.
매표소에서 여권과 입장권 검사를 마치고 조금 걷자 갑자기 시야가 열리며 나의 버킷 리스트, 마추픽추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 와~ 감탄사만 나왔다.
마추픽추는 마추픽추였다. 어떤 수식어도 필요치 않았다.
해발 2400미터에 위치한 마추픽추는, 15세기에 지어져 16세기에 스페인이 잉카 제국을 정복하면서 버려졌다. 안데스 산맥과 아마존 분지가 만나는 지역의 가파른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마추픽추는 종교, 의식, 천문학 및 농업 센터를 구성하는 약 200개의 구조물로 이루어진 엄청난 계획도시였다. 오늘날까지도 마추픽추의 많은 미스터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이런 날씨 속에 마추픽추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마추픽추 사진 속에 항상 등장하는 저 뒷 봉우리가 Huayna Picchu다.
가끔 만나게 되는 영어 투어 그룹들에 붙어 가이드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추픽추 곳곳을 구경했다.
가끔 만나는 영어 그룹 투어에 끼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마추픽추를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Huayna Picchu (=Waynapicchu) 입구에 도착했다. 내 티켓은 마추픽추 Circuit 3와 Huayana Picchu를 함께 보는 티켓으로 하루에 두 번만 (9시, 12시) 관광객의 입장을 받는 곳이었다. 사실 나는 Huayna Picchu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페루 비행기표 발권 후, 사무실 동료로부터 마추픽추보다 Huayna Picchu가 should-go attraction이란 정보를 얻게 되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기만 해도 아찔하게 가파른 그곳, 내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숨을 고르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40분 후에 정상에 도달했다.
가파른 계단길, 모두들 네발로 기었지만 나는 로키 하이커. 이정도는 두발로 얼마든지 오를수 있었다.
Huayna Picchu 정상이다. 오른손 아래는 마추픽추, 왼손아래는 셔틀버스 길이다.
함께였기에 떠날 수 있었고 함께였기에 더 행복했다. 하루전에 시장에서 산 저 모자가 없었다면 우리 얼굴은 까맣게 탔을 것이다.
Huayna Picchu 정상, 마추픽추가 내려다 보이는 사진 포인트에서 우리도 기념사진을 찍었다.
내려오는 길은 우리에겐 너무 수월했지만, 가파른 경사에 익숙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하산길에 힘들어했고 줄을 붙잡고 쩔쩔맸다. 우리는 15분 만에 뛰어 내려와 마추픽추 Circuit 3의 나머지 반을 돌며 사진도 찍고 수다를 떨었다. 우리의 대화를 들은 수학여행온 고등학생들이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고 우리 뒤에 따라붙으며 자꾸 말을 걸었다.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와 Kpop의 인기로 요즘 페루에서 핫한 한류를 체험하며, 우리가 유명인사가 된 듯했다. 학생들은 꼬레아를 외치며 계속 우리를 따라왔다.
Huayna Picchu까지 정복하고 내려오는 길, 나의 몰골이 너무 처참해 내 얼굴은 자른다. 꼬레아가 너무 좋다며 아는 한국말로 말을 붙이며 따라오는 고등학생들, 귀여웠다.
셔틀을 타고 다시 Aguas Calientes로 돌아왔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마추픽추에서 걸어서 마을로 내려오려 했으나, 구불구불 버스길을 관통하는 등산로에서 뒤집어쓸 흙먼지가 싫었다. 호텔로 돌아와 씻고 휴식 후,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중심가 레스토랑 2층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3시 반 정도였다. 오더를 하고 음식을 기다리는 중, 엄청난 비와 우박이 2시간 동안 쉼 없이 쏟아져 내렸다. 우리는 참 행운아였다는 안도감과 함께, 지금 마추픽추를 돌아보고 있을 관광객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겹쳤다. 맛있는 늦은 점심을 먹고, 후식에 핫쵸코까지 두 시간을 버틴 후 비가 멈추자 레스토랑에서 나왔다. 도저히 그냥 맞고 돌아다닐 비의 수준이 아니었다. 아주 무섭게 쏟아지는 storm과도 같았다.
호텔로 복귀해 내일 들어갈 쿠스코 5박 숙소를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했다. 이번에도 인숙이가 10개 정도 위시리스트로 추리고, 함께 review를 살펴보고 결정했다. Plaza Armas에서 가까운 주방이 딸린 숙소는 하룻밤에 CAD 40불, 1인당 CAD 20불 (이거 실화? 실화 맞아요) 짜리 저렴이 옥탑방이었다.
마추픽추 숙제를 끝마치고 후련한 마음에 모든 걸 다 이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 여행을 다 마치고 집에 돌아가도 여한이 남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라마 한 마리가 갑자기 좁은 길을 뛰어들어와서 우리에게 또 다른 추억거리를 선물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