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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아침, 황제 골프를 누리다.

by 실비아

초가을의 아침저녁은 제법 쌀쌀하지만, 모기도 없고 덥지도 않아 요즘만큼 골프 하기 좋은 날씨도 드물다. 나무들은 물이 들기 시작했고, 아직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기 전이라 풍경 또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토요일 아침 8시, 남동생이 18홀 4명 예약을 해 두었다.
7시에 남동생을 픽업하기로 했는데, 6시 45분에야 우리 부부는 눈을 떴다. 부리나케 씻고, 화장하고, 간식 챙기고, 골프채를 얼른 차에 실었다. 그리고 걸어서 30초 거리에 있는 남동생 집에 들러 그를 태우고, 장모님 댁에 들러 장모님까지 모시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했고, 남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프로샵에 들어가 보니 8시 예약이 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8시 반부터 샷건 토너먼트가 예정되어 있어 개인 예약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운 순간, 골프장의 오너인 남동생의 장인어른(지금은 매니지먼트를 맡기신 상태)께 전화를 드리니, 크게 화를 내시며 담당자를 바꾸라고 하셨다. 덕분에 우리는 8시 첫 팀으로 나가, 아무도 밟지 않은 이슬 맺힌 그린 위를 걸으며 라운드를 시작할 수 있었다.


4~5홀을 돌아도 뒤에 따라오는 팀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토너먼트는 30분 늦게 시작되었고, 모든 홀이 아닌 일부 홀에서만 그룹별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앞팀의 방해도, 뒷팀의 압박도 없이, 가을 햇살과 바람 속에서 18홀을 여유롭게 즐겼다. 그린에서는 퍼팅 연습과 피칭 연습까지 곁들여, 말 그대로 황제 골프였다.


라운드를 마친 후에는 남동생과 장모님을 모시고 국밥집에 들러 돼지국밥과 육개장으로 다시 한번 든든하게 마음을 채웠다.


운전 전담 남편도 감사하고,

든든한 동생도 고맙지만…

역시 오늘의 MVP는 부잣집 사위인 남동생!


그런데 사실, 제일 기분 좋았던 건 따로 있었다.

드라이버샷이 단 한 번 빼고는 모두 시원하게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게다가 남편과 동생보다 더 멀리 뻗어나갔다는 사실!

(오늘의 진짜 MVP는 나였을지도~)


그린에서 피칭 연습 중. 뒷팀 따라올까 봐 항상 빠릿빠릿 움직여야만 했던 라운딩이었는데 오늘은 황제 골프다.
마지막 18번홀 남편의 드라이버 샷, 그리고 팔순이 다되신 남동생 장모님의 18번홀 드라이버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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