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내 록키 하이킹 스토리는 언제나 산을 다녀온 후에 올려왔다.
하지만 삼일 뒤 예정인 Moraine Lake - Larch Valley - Sentinel Pass이야기는 특별히 사전 스토리를 남겨두려 한다. 그만큼 이곳을 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고, 많은 추억이 깊이 새겨진 곳이기도 하다.
9월 30일은 우리의 결혼 25주년 기념일이다.
결혼해서 여태껏 25년 동안 함께 살아온 것이 fortunate인지 unfortunate인지 그건 모르겠지만, 이번만큼은 남편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일정을 짜봐"라고 했다.
앗싸!!!
나에겐 세 가지 옵션이 있었다.
1. 문세 오라버니 밴쿠버 콘서트
2. 밴프 골프여행
3. 밴프 캠핑 & 가을 라치 산행
이렇게 계속 고민만 하던 중, 누군가 캔슬한 캠핑장 사이트 하나가 갑자기 떴다. 딱 우리가 여행을 계획한 2박 3일 날짜도 동일했다. 바로 예약 버튼을 눌렀다. 그리하여 나의 고민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곳은 자스퍼과 밴프를 통틀어 내가 원탑으로 꼽는 Two Jack Lakeside 캠핑장이다. 매년 4월 캐나다 국립공원 온라인 예약 시스템이 아침 8시에 열리면 바로 1초 안에 시즌 내 모든 사이트가 주중주말 할 것 없이 매진되는 전설의 캠핑장이다.
이제 2박 3일 세부 일정을 짤 차례다.
투잭 레이크 캠핑장으로 2박이 결정되니 세부 일정은 바로 머릿속에서 짜졌다.
하지만 또 하나의 난관이 남아 있었다.
Larch Valley라는 곳은 Moraine Lake에서 시작하는 아주 아름답고 유명한 하이킹 코스로 9월 말, 노란 라치가 절경인 곳이다. 예전엔 개인 차량으로 모레인 레이크에 갈 수 있었지만 2023년부터는 Park Canada에서 운영하는 Lake Louise-Moraine Lake를 경유하는 셔틀을 타야만 Moraine Lake에 갈 수 있다. 이곳으로 가는 셔틀은 전체 좌석의 일부(약 40 %)는 미리 풀리고, 나머지 좌석은 출발 48시간 전 오전 8시에 추가로 풀린다. 그리하여 오늘 아침 7시 반에 일어나서 나와 남편은 각자 노트북을 펼쳐 놓고 그 앞에 비장한 각오로 앉았다.
두구두구, 8시 정각에 우린 분명히 마우스를 클릭했으나 다음 주 월요일에 모레인레이크에 가는 셔틀은 온라인 예약 시작과 동시에 끝나 버렸다. 역시 라치 피크시즌, 컴퓨터 앞에 앉아 셔틀 예약을 하고 있는 하이커는 셀 수 없이 많았나 보다. 계속 refresh 버튼을 누르길 20분, 남편이 11시 출발 셔틀을 잡았다. 우와, 남편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다.
이젠, 우리가 하이킹하게 될 라치 밸리 이야기를 풀어 보겠다.
라치 밸리 트레일은 Moraine Lake에서 시작되며, 개인적으로 나는 Lake Louise보다 Moraine Lake가 더 아름답다. Moraine Lake는 예전 캐나다 20달러 지폐에 나올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Moraine Lake에서 시작해 Larch Valley를 지나 Sentinel Pass까지 이르는 코스는 우리 가족이 하이킹을 시작하고 처음 오 년 정도는 우리가 꼽는 가장 아름다운 코스였다. Yoho national park의 Iceline 하이킹 후 이곳은 2위로 밀려났고, Onion Peak를 하이킹 후 이곳은 3위로 밀려났다.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멀리 한국에서 캐나다 록키 등산 패키지여행으로 오는 분들이 꼽는 꿈의 코스이다. 날아다니는 공룡 브랜드(아크테릭스)로 모자부터 가방 옷 신발까지 갖춰 입고, 멀리 한국에서부터 오셔서 비장하게 이곳을 오르는 등산객분들을 여름이면 꼭 만난다.
아참, 이곳은 항상 적어도 4명의 등산객이 그룹으로 하이킹을 해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인원이 부족하면 등산로 입구에 서 있다가 다른 작은 그룹과 조인해서 하이킹을 시작한다. 이유는 곰이 자주 나타나는 지역 이어서이다. 하지만 여름 그리고 초가을 시즌에는 하이커들이 많아 곰이 4마리씩 그룹으로 다녀야 할 만큼 하이커로 붐비는 곳이다.
Moraine Lake에서 출발해 헐떡헐떡 오르막 지그재그를 20번 정도 꺾으면 이런 뷰가 기다린다. 갑자기 숲이 열리며 ten peaks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가을에는 저 초록 라치들이 노랗게 변해 장관을 이룬다. (9월 중순-9월 하순)
그리고 숲 속을 지나 좀 더 오르면 정면에 Sentinal pass가 보이며 두 번째 오픈 뷰가 펼쳐진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Sentinal pass에 오르는 지그재그 길이 보인다. 이곳은 7월 초까지 눈이 쌓여 있어서 중간중간 snow patch가 있으므로 등산화에 ice cleats를 끼우는 게 안전하다.
처음 이곳에 오를 땐 헐떡헐떡 힘겹게 올라왔고 옆에 경사를 보면 아찔했지만, 이제는 우리에게 이곳은 쉬운 코스로 간주된다.
좋은 곳을 오를 때면 항상 생각나는 한국 부모님, Sentinel pass까지는 아니더라도 Larch Valley까지는 꼭 모시고 오고 싶었다. 2013년, 발목 인공관절 수술을 하셔서 발이 편하지 않은 엄마, 이것만 돌아가면 이제 거의 다 왔어 얼르고 달래며 결국은 두 분을 모시고 올랐었다. 그리고 두 분이 손을 잡고 오르시는 이 뒷모습이 여전히 나에겐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다.
그리고 그분들은 Larch Valley까지 결국 오르셨다.
요즘도 나와 부모님은 가끔 그때 얘기를 한다.
"어떻게 우리가 거기에 올랐을까? 우리 작은딸, 고마워. 사랑해."
이런 나의 추억이 가득한 곳...
이제는 25주년 결혼 기념일을 맞아
남편과 함께 2박 3일 여행을 하며
그때의 추억을 더듬고, 또 새로운 추억을 더하려 한다.
내일, 우리는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