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영진이가 비록 캐나다에 살지만 모국어인 한국어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통 초등학교 고학년에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한국말과 영어가 둘 다 능숙하지만, 영진이처럼 어렸을 때 온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한국말을 잊어버린다. 특히나 형제들이 있는 경우에는 집에서도 영어를 사용하며 한국말은 쉽게 잊어 버린다. 하지만 영진이는 집에서 얘기할 사람이 엄마 아빠뿐이라 무조건 한국말을 써야만 했다. 외동아이여서 외롭기도 했지만, 한국어를 아직까지 계속 말할 수 있는 것은 형제가 없는 외동아이였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영진이 열 살 때 방과 후 해야 되는 숙제는 단 한가지가 있었다. 한글 떼기 하루에 한 장.
8단계에서 9단계로 넘어가며 따라 쓰기에서 문제 풀이로 어려워졌다. 한글 어휘가 부족해 네 개의 칸을 모두 채우진 못했지만 나름 생각하고 고민하여 최선을 다했단다.
우리의 노력은 이곳 한국어학교에 영진이를 등록시키는 것으로 계속됐다. 매주 금요일 저녁 3시간씩, 집에서 놀고 싶었을 텐데 다행히 영진이는 싫다는 소리 없이 재미있게 다녀주었다. 첫해 말하기 대회에서 영진이는 야구에 대해 얘기했다. 공 받고 던지고 방망이로 공을 때리는 것보다, 벤치에서 친구들이랑 장난치며 spitz (양념된 해바라기 씨)를 까먹는 게 더 좋다는 얘기였다. 제대로 연습해서 출전했으면 좋은 상을 받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년에는 욕심을 좀 내보자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
욕심은 있었지만 일 년 후 막상 대회가 다가오자 이런저런 일로 내가 너무 바빴다. 더군다나 좋은 상을 받으려면 한국어를 주제로 삼아야 하는데, 영진이는 얼마 전 다녀온 마우이에 대해 발표하고 싶다고 했다. 써보라고 했더니 꽤 길게 글을 써 왔다. 좀 더 부드럽게 고급진 단어를 써서 고쳐주려고 했지만 영진이가 너무 싫어했다. 사용되는 단어들도 단순하고 문맥도 매끄럽지 않았지만 자기의 표현으로 말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결국나는 영진이가 참석하는데 의미를 두고 욕심을 내려놓게 되었다. 대회당일 회사에서 집에 전화해 보니, 돌돌이를 앞에 두고 연습 중이란다. 많이 떨렸을 텐데 영진이는 사람들 앞에서 용감하게 발표했다. 고래보러 가서 뱃멀미 나면 배 1층에 가서 시원한 물을 먹어야 하고, 마우이에서 가지 말아야 할 곳과 거북이를 볼 수 있는 해변을 포함해 꼭 가야 할 곳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대상을 받았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지만 혼자서 이루어낸 큰 상에 영진이가 너무나 대견했다.
마우이 티셔츠를 입고 가서 막상 무대에 올랐을 때는 후디 벗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12학년이 되어서는 한국어학교 성인반 보조교사로 봉사하며 한국어와의 끈을 계속 이어갔다. 백인 마이크 선생님의 주도로 성인반 수업은 교실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 식당 / 한국 슈퍼로 이어졌고, 이런 수업은 학생들도 또 보조교사인 영진이에게도 너무 재미있는 경험들이었다. 한국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와 통화할 때면 영진인 존댓말도 잘 쓰고 아직까지 한국말을 잘 유지하고 있다. 집에서 공용어는 아직도 한국어이다. 그 덕에 우리 집 돌돌이는 한국말과 영어를 둘 다 알아듣는다.
영진이가 또 영진이의 아이들도 한국말을 계속하길 바라는 것은 우리의 욕심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욕심을 버리고 싶지 않다. 나는 이곳의 한국 아이들이 한국어를 잃어버리지 않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잘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미약하지만 한국어학교 이사로 팔 년째 봉사하고 있다. 아이들의 모국어를 지켜주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