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하루 종일 휴식을 누릴 수 있던 일요일.
해가 슬금슬금 낮아지는 오후 3시, 소중한 아들은 할머니와 놀러 나가고, 오랜만에 둘만의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된 만삭의 와이프와 나는 옆동네 호수공원으로 커피를 마시러 갔다. 커피숍의 선택지는 매우 많았지만 병원에서 만삭의 와이프에게 많이 걸으라고 당부하였기에, 커피 한 잔 하고 걸을 수 있는 호수공원으로 정했다.
공원 옆 커피숍이 있는 쇼핑몰에 가면 나는 항상 당연히 버릇처럼 들르는 곳이 있는데, 바로 서점이다. 아쉽게도 내가 사는 동네에는 서점이 없다.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소장을 좋아하는 나는, 어디를 가게 되면 그곳에 서점이 있는지 먼저 확인을 한다. 운 좋게도 서점이 있으면 그곳에서 책을 한 권씩 꼭 구입한다.
와이프는 먼저 커피숍에 가서 자리를 잡고, 평소의 루틴대로 서점으로 갔다. 서점은 어딜 가나 분위기가 차분하고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다. 고전부터 신간까지 그리고 숨어있는 책들을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와이프가 기다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리나케 내가 선택한 오늘의 책은 ‘상관없는 거 아닌가?’ 가수 장기하 님의 산문집이었다. 장기하 님의 노래를 참 좋아한다. 많은 노래 중에서도 ‘그렇고 그런 사이’를 가장 좋아하는데, 한때 차에서 목이 쉬도록 다 외워가면서 따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새로운 책을 들고 있을 때의 뿌듯함과 기대감, 만족감을 느끼며 커피숍으로 가서 와이프와 커피를 마셨다.
이런저런 둘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집에 와서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 구입한 따끈따끈한 새책 ‘상관없는 거 아닌가?’ 책의 첫 장을 열었다.
담담한 문체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구조였는데 잘 읽히고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아서 보기에 어렵지 않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얼마쯤 읽었을까, 내용 중에
“군 생활이 끝나기만 하면 새처럼 자유롭게 살리라고 매일 다짐했다. 그리고 틈틈이 노래를 만들었다. 제대와 동시에 음반 및 공연 준비에 착수했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머리를 탕하고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얼핏 보면 머리를 탕 맞을 정도의 내용인가 싶기도 하겠으나,
“나는 틈틈이 노래를 만들었다.” 이 부분에서 무언가 끓어오름을 느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노래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의 가수 장기하 님도 아무것도 없고 기댈 곳도 없던 20대 국방의 의무를 다하던 시절, 가수가 될 거라는 기약도 없던 상황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꾸준히 하며 노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글을 쓰며 살고 싶은 나의 모습과 비교해 볼 때에 너무 낯선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쓴 1000자 정도의 짧은 글을, 누군가가 읽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만 가득한 상태로, 어떠한 다른 노력도 하지 않고 브런치에만 글을 발행하며 ‘왜 이렇게 사람들이 안 읽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는 내 모습이 위의 문장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글쓰기를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었나 하는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많은 지원자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가진 실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어 최선을 다해 오디션에 임한다.
그 수많은 지원자들 중, 우승자는 단 한 명, 조금 넓게 봐서 스타가 되는 지원자는 아주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세상이 쉽지 않은데 3~4일에 한 꼭지, 그것도 1000자 정도밖에 되지 않는 글을 쓰며 작가의 꿈을 꾸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하고 남사스러운 일이 아닌가..
글의 퀄리티가 높던 낮던, 일단은 많이 쓰고, 많이 고치고, 또 많이 쓰다 보면, 아주 조금씩이라도 문장이 점점 다듬어지지 않을까?
시간이 없다는 핑계 그만 대고, 열심히 써보자, 형식과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뭐든지 써보자. 작가로서의 인생을 살고 싶다면 쓰자.
써야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