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부. KT-KTF 합병
2008년, KT는 역사의 변곡점을 마주하고 있었다. KTF와의 흡수합병을 공식화하며 유무선 통합 1위 사업자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을 밝혔지만, 그 앞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외풍이 거셌고, 내부도 흔들렸다.
먼저 정권이 바뀌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의 전환과 함께 ICT 거버넌스를 책임져온 정보통신부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정부조직개편에 따라 정통부는 14년 만에 해체됐고, 그 역할은 방송통신위원회, 지식경제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로 흩어졌다. KT 입장에서는 공기업의 그림자가 아직 짙은 상황에서 새로운 권력구도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방송통신 관련 주요 권한을 이관받은 방송통신위원회는 MB의 멘토로 불린 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이 위원장으로 낙점됐다. 서릿발 같은 그의 존재감은 국회와 업계 모두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KT는 이에 맞서 대외 전략을 조정하고 대관 역량 강화에 돌입했다.
합병 전략의 수립은 되어 있었지만, 착수 시점을 잡는 것이 고민이었다. 정권 교체와 조직 재편, 경쟁사의 행보, 그리고 규제기관의 감시 시선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7월 25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맹수호 KT 재무실장(CFO)은 “합병 검토는 진행 중이나 결정된 바는 없다”고 했지만, 실제 내부에서는 이미 권행민 전무가 이끄는 그룹전략 CFT가 전략을 조율하고 있었다.1)
그런데 이번에는 예기치 못한 검찰 수사라는 암운이 몰려왔다. 2008년 9월 19일, 조영주 KTF 사장이 긴급체포됐다. 중계기 납품업체로부터의 금품 로비 혐의가 불거지며 KTF 사옥은 물론 관련 임원들이 강제 수사를 받는 상황이 전개됐다. 하반기 합병 실행을 목표로 치밀하게 설계된 KT-KTF 프로젝트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렸다.2)
조 사장은 사건 발생 사흘 만인 9월 22일 사의를 표명했다. 그 빈자리는 다름 아닌, KT-KTF 합병 전략을 설계한 권행민 전무가 채웠다.3) 10월 4일, 권 전무는 KTF 대표로 공식 선임됐다. 합병을 알고, 전략을 꿰고 있는 적임자였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검찰의 칼날은 KT 본사로 향했다. 10월 6일, KT 성남 본사와 광화문 지점, 그리고 남중수 사장 자택까지 포함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전개됐다. 전방위적인 수사에 내부는 패닉 상태였다.남 사장은 목디스크 수술로 병원에 머무르던 중이었지만, 복귀 후에도 수사의 그림자는 짙게 드리웠다.4)
업계 안팎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뒤섞였다. “KT를 노린 정치적 의도”, “낙하산 인사 포석”, “정권과의 알력” 등 명확한 실체는 없었지만 공기업 시절의 망령은 KT를 여전히 따라다녔다.
결국 KT는 새로운 선장을 찾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12월 8일 열린 면접에는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 김창곤 전 정보사회진흥원장, 윤창번 전 하나로텔레콤 사장, 우의제 전 하이닉스 사장 등 쟁쟁한 후보들이 올랐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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