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부. KT-KTF 합병
2009년 3월, 이동통신 역사상 가장 거대한 조정의 퍼즐이 마침내 맞춰졌다. KT와 KTF의 합병은 수많은 반대와 우려, 정권 교체의 혼란, 그리고 통신시장의 격동을 뚫고 공식 승인을 획득했다. 이로써 통합 KT, 그 이름 아래 또 하나의 시대가 열렸다.
KT가 방송통신위원회에 합병인가 신청서를 제출하자 곧바로 공정거래위원회도 경쟁제한성 여부에 대한 심사에 돌입했다.
2월 4일, 공정위 대회의실. 한철수 시장감시국장 주재 간담회에는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LG텔레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가 모여 합병 반대의견을 쏟아냈다.1) 케이블 진영도 별도로 반대 의견서를 제출하며 반대 전선을 강화했다. 방통위도 움직였다. 2월 20일부터 KT-KTF 합병심사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전문가 의견수렴에 들어갔다.
그 사이 KT는 내실을 다졌다. 2월 24일 열린 이사회에서 정관변경을 단행했다.2) CEO 직함을 ‘사장’에서 ‘회장’으로 격상시키고, CIC(Company-In-Company) 형태의 사내 소회사 체제 전환도 포함됐다. KT의 정관 개편은 합병 승인을 전제로 한 구조조정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이석채는 취임 2개월 만에 ‘회장’ 타이틀을 달게 될 참이었다.
이석채는 결연했다. 2월 25일, 공정위 발표에 앞서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합병을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모두 쓰겠다”며 의지를 밝혔다. 경쟁사들이 외치는 ‘필수설비 분리’ 주장에는 “민영기업의 사유재산이다, 정당한 대가를 치르면 쓰게 해주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그리고 결국, 공정위는 조건 없는 합병 승인을 내렸다. “경쟁 제한성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다만, 이후 시장 지배력 남용 등 행위가 포착되면 사후 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KT는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반면, SK텔레콤과 LG텔레콤, 케이블 업계는 입술만 씰룩였을 뿐, 실질적인 저항은 이뤄내지 못했다.
공정위의 문을 넘자, 마지막 관문은 방송통신위원회였다. 3월 11일, 방통위는 공개 청문회를 개최했고
예상대로 열띤 논쟁이 오갔다. 그러나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고, 당초 3월 16일 발표 예정이던 심사결과는 미뤄졌다.
3월 18일, 드디어 방통위는 조건부로 KT-KTF 합병을 승인했다.3) 조건은 크게 세 가지다. 전주·관로 등 설비의 제3자 제공방안 마련무선인터넷망 접속경로의 비차별성 보장, 유선전화 번호이동 제도 정착이다.
결정이 발표되자마자, KT 내부에는 안도와 환호가 교차했다. “이제 됐다”는 탄성이 나왔다. 물론 경쟁사들은 조건이 불분명하고 실효성이 약하다며 반발했지만, 그 목소리는 허공을 맴돌았다.
그리고 3월 27일, KTF는 이사회를 열고 KT와의 합병을 정식 결의했다.4) 이로써 통합 KT 체제는 사실상 출범을 확정지었다. 이 자리에서 이석채 회장은 선언했다. “KT를 연 매출 20조, 영업익 2조의 글로벌 ICT 기업으로 키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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