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부. 아이폰 쇼크
2007년 1월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애플 맥월드 2007 무대에 스티브 잡스가 오른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은 기존 아이팟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음악 재생기나 PDA도 아니고, 전화기 하나로 웹 브라우징, 음악 감상, 메시징까지 가능한 새로운 기기. 단말 하나가 통신을 넘어 생태계를 바꾸는 시대, 바로 ‘아이폰’의 시작이었다.
잡스는 “오늘 우리는 세 가지 혁신적인 제품을 소개한다. 와이드스크린 아이팟, 혁신적인 휴대폰, 그리고 획기적인 인터넷 커뮤니케이터”라며 세 가지 제품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하나의 기기임을 선포했다. 아이폰은 그 순간, 세계를 바꿀 게임체인저로 등극했다.
첫 아이폰은 2007년 6월 29일 미국에서 정식 출시됐다. 애플은 북미 2위 이동통신사 AT&T와 비공개 협상을 거쳐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고, 기존 이동통신사의 규칙을 뒤흔드는 파격적 모델로 통신과 단말의 권력 구도를 재편하기 시작했다.
혁신은 한 번에 끝나지 않았다. 2008년 7월 11일, 아이폰3G가 출시되면서 스마트폰은 더 이상 얼리어답터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이름에서부터 3세대 통신망(3G)과의 결합을 명시한 이 단말은 빠른 데이터 속도와 함께 ‘앱스토어(App Store)’라는 새로운 콘텐츠 유통 시장까지 열어젖혔다. 이어 2009년 6월에는 ‘스피드(Speed)’를 강조한 아이폰3GS가 공개되며 성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 모든 흐름에서 한국은 철저히 배제돼 있었다.
전 세계가 아이폰을 들고 열광할 때, 한국은 침묵했다. 첫 출시 이후 2년 동안 아이폰은 국내에 정식 출시되지 못했다. “왜 아이폰은 한국에 오지 않느냐”는 질문이 커질수록, 그 배경에 대한 해석도 분분해졌다. 정답은 없었지만, 다수의 정황과 실질적 요인들이 ‘닫힌 문’을 뒷받침했다.
무엇보다 먼저 거론되는 것은 위피(WIPI, Wireless Internet Platform for Interoperability)였다. 위피는 국내 무선인터넷 플랫폼 통합을 목적으로 정부 주도로 개발된 표준 플랫폼으로, 2005년부터 법적으로 모든 휴대폰에 의무 탑재됐다. 당시는 콘텐츠 생태계를 보호하고, 외산 플랫폼 사용에 따른 로열티와 기술 종속을 줄이겠다는 순기능이 강조됐다.
그러나 플랫폼이 ‘표준’이 아닌 ‘규제’로 변질되자 문제가 시작됐다. 위피는 아이폰의 iOS와 공존할 수 없었고, 국내 출시를 원천적으로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됐다. 애플 입장에서는 단말기 설계를 바꿔가며 위피를 탑재할 이유가 없었고, 정부 역시 폐지를 결단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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