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무선호출기 시대
국내 이동통신의 출발점을 어디로 설정할지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본 연대기에서는 ▲네트워크 인프라 ▲지원 단말 ▲고객 서비스 등 통신사업 상용화의 기본 요소를 모두 충족하며 일반 대중에게 실질적으로 제공된 최초의 사례라는 기준에 따라, 1982년 시작된 ‘무선호출기’ 서비스를 한국 이동통신의 실질적 기점으로 삼는다.
‘무선호출기’는 당시 정부 보고서나 통신 관련 문서 등에서는 ‘페이저(Pager)’ 또는 ‘무선호출기’라는 용어가 혼용됐으나, 대중적으로는 호출음을 딴 ‘삐삐’라는 명칭이 일반화됐다. 미국에서는 ‘비퍼(Beeper)’, 일본에서는 ‘포킷벨(Pocket Bell)’, 중국에서는 ‘BP기’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언론에서는 “담뱃갑보다 작은 휴대신호기”라는 묘사로 설명되곤 했다.
정부는 1982년 무선호출 서비스 제도 도입을 발표한 데 이어, 같은 해 12월 15일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가 서울 지역을 대상으로 첫 상용서비스에 돌입했다.1) 서울 을지전화국에 위치한 무선호출 취급국이 중심이었고, 도심 내 6개소에 설치된 기지국(안테나)을 통해 호출 신호를 송출했다. 초기에는 1만 회선 용량이 구축됐으나, 초도 공급량은 단 250대에 불과했다.
당시 무선호출기 가격은 15만 원, 가입비 1,500원, 월 사용료는 1만2천 원으로 책정됐다. 당시 물가를 고려하면 고가 서비스에 해당했음에도, 개통일 전날까지 접수된 신청서가 1,500건에 달할 만큼 수요는 뜨거웠다. 청약 경쟁률은 8대 1에 달했고, 관공서와 병원, 대기업 등은 우선 순위를 확보해 기기를 배정받았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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