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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012 vs 015, 굿바이 '삐삐'

3부. 무선호출기 시대

by 김문기

1990년대 초반, 무선호출기(삐삐)는 대한민국 이동통신 산업의 중심에 있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축적된 기술과 네트워크, 사용자 기반은 1990년대 들어 폭발적인 수요로 이어졌고, 그에 따른 제도적·산업적 전환이 본격화됐다.


1991년 4월, 체신부는 무선호출 수요 폭증에 대응해 전국 통일 식별번호 '012'를 부여한 무선호출전용망을 구축했다. 이로써 지역번호 없이 전국 어디서나 ‘012’만으로 호출이 가능해졌고, 이는 한국이동통신의 브랜드를 상징하는 숫자로 떠올랐다.1)


뒤이어 1992년 7월에는 음성사서함 서비스가 시범 도입됐다. 일반전화로 음성메시지를 녹음하면 무선호출 가입자가 이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능으로, 삐삐의 가능성을 한층 넓혀준 서비스였다.2)

다운로드.jpeg 수도권에서 경합을 벌인 한국이동통신 012(좌)와 나래이동통신 015 광고 포스터 [사진=SKT, 나래이동통신]

무선호출기 시장의 3차 전환점은 1993년에 찾아왔다. 한국이동통신이 독점하던 시장에 제2사업자들이 본격 진입한 것이다. 제주이동통신, 충남이동통신, 나래이동통신, 서울이동통신, 부일이동통신, 세림이동통신 등 9개 지역 기반 사업자들이 ‘015’ 식별번호를 부여받고 경쟁에 뛰어들었다.3)


수도권은 가장 격전지였다. 한국이동통신은 22개 기지국을 운영 중이었으나, 나래이동통신과 서울이동통신은 각각 50개 이상의 기지국을 구축하며 음영지역을 최소화했고, 치열한 마케팅 경쟁이 이어졌다. 가입자 수는 급속히 증가해 1992년 200만 명에서 1993년 8월 300만 명을 돌파했다.4)


경쟁은 서비스 혁신으로 이어졌다. 일부 사업자는 팩스, 생체리듬, 일기예보, 증권정보, 컴퓨터 사서함 서비스 등 다양한 부가 기능을 탑재하며 차별화를 시도했다. 또 주문자부착생산방식(OEM)을 활용해 국산 호출기를 대량 공급함으로써 모토로라 중심의 외산 독점을 흔들었다. 단말기 가격은 10만원대로 내려갔고, 사용료 부담도 줄면서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5)


다만, 무선호출기 보급이 늘어날수록 사회적 문제도 덩달아 잦아졌다. ▲대학 부정 입학 ▲시험 부정행위 ▲노동강도 심화 ▲자율성 박탈 ▲범죄 악용 등 무선호출기를 활용한 여러 잘못된 행위들이 꼬리를 물고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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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전문지에서만 10년 넘게 근무하며 전세계를 누볐습니다. 이전에 정리했던 이동통신 연대기를 재수정 중입니다. 가끔 다른 내용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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