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자동차다이얼전화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로 불리던 통신 장비가 본격적으로 '카폰'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84년이다. 과시와 상징의 통신기기에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이동전화'의 가능성으로 옮겨간 그 해. 정보통신 인프라 확대를 위한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와, 한국이동통신서비스의 출범은 이동통신 대중화의 실질적 시발점이었다.
1980년 10월, 체신부는 통신산업의 경영체제를 개선하고자 ‘경영체제개선위원회’를 구성했다. 정보통신을 국가산업의 중심축으로 삼겠다는 정책적 의지였다. 이어 1981년에는 한국전기통신공사법 제정과 전기통신법 개정을 통해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를 출범시켰고, 이로써 카폰 상용화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1982년 10월 ‘이동무선전화 현대화 계획’을 통해 미국의 셀룰러 방식인 AMPS(Advanced Mobile Phone Service) 도입이 확정됐다. 당시 기준으로 미국, 일본, 스웨덴에 이어 세계 4번째였다. 장비 공급을 위한 글로벌 제조사들도 속속 한국에 진출했다.
1983년 11월, 체신부는 '자동차다이얼전화 보급 세부계획'을 발표하고, 1984년부터 수도권 지역에 우선 3천대를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2차에는 같은 해 말 5천대 추가 공급이 계획됐다. 도심 고층 빌딩 옥상 10여 곳에 고성능 안테나가 설치됐고, 총 38억 원이 투입됐다. 교환기는 3천 회선 용량으로 구축됐다.
같은 해 12월에는 전기통신법이 폐지되고, 전기통신기본법과 공중전기통신사업법이 제정돼 제도적 정비가 마무리됐다.
1984년 3월 29일, 한국전기통신공사는 차량전화와 무선호출을 전담할 자회사로 ‘한국이동통신서비스’를 설립했다. 자본금은 5억원, 초대 사장은 유영린 전 원주지사장이 맡았다. 사무실은 광장전신전화국 2층 40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이 회사는 사실상 카폰 보급의 실무 주체였다. 4월 2일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카폰 청약접수를 시작했고, 실제 서비스 개통은 5월 7일부터 진행됐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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