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서정욱 '신의 한수',
긴박한 CDMA 라이브

13부. 정보통신부 신설, PCS 표준 경합

by 김문기

1995년 6월, 서울 광화문에서 삼성동 코엑스로 향하는 셔틀버스 안. 이동 중인 차량 내에서의 단 한 통화가 대한민국 이동통신의 향방을 바꿔 놓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통신 표준의 갈림길에서 서정욱 한국이동통신 사장은 위험한 도박을 감행했다. 승패는 오직 ‘끊김 없는 통화’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결과는, 기술이 아니라 용기와 집념이 이긴 사건으로 기록됐다.


1995년 중반, CDMA와 TDMA 간 PCS(개인휴대통신) 기술표준을 둘러싼 공방이 정점을 향하고 있었다. 정부의 PCS 사업자 선정 발표를 앞두고, 각 진영은 기술의 우위와 생태계 조성을 주장하며 수위를 높였다. 이때 한국이동통신 대표로 취임한 서정욱 사장은 승부수를 띄운다. 바로 CDMA 기술을 직접 체험하게 하자는 것이다.


당시 서정욱 사장은 정보통신 전시회가 열리는 삼성동 코엑스로 이동하는 셔틀버스에서 기자들이 탑승한 상황에서 실시간 CDMA 통화를 시연하겠다고 선언했다. 실패 가능성은 존재했지만, 성공한다면 CDMA의 불확실성에 종지부를 찍는 한 방이었다. 결과가 담보되지 않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전략이었다.


무리를 해서까지 추진하고자 했던 한국이동통신의 판단은 서정욱 사장의 면면을 살펴보면 납득할 수 있다. 서울대 공과대학 전기공학과를 거쳐 미국 텍사스 A&M 대학원 전기공학 박사를 취득한 후 공군사관학교 교수를 역임한 후 국방과학연구소장을 지내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과 과학기술부 차관, 한국통신 부사장 등 다채로운 이력을 갖췄다. 전전자교환기(TDX) 국산화에 일조한데 이어 이동통신기술개발사업관리단장을 맡아 CDMA 기술개발을 진두지휘했을 만큼 성공 DNA가 밑바탕에 자리한 인물이었다.


업계에서는 그를 방대한 독서량을 가진 공학박사 또는 지독한 워커홀릭 등으로 평하기도 할 만큼 일처리에 있어 실제적 완벽을 기했다.


한국이동통신 직원들에게 이 지시는 전시회의 준비를 넘어 ‘전시(戰時)’ 상황을 의미했다. 광화문에서 삼성동 코엑스까지의 모든 구간은 새벽까지 일일이 점검됐고, 통화 품질에 문제가 될 만한 버그는 밤새 제거됐다. 한 사람의 실수가 전체의 실패로 이어지는 극한의 긴장감 속에서, 엔지니어들은 서 사장의 명을 ‘목숨처럼’ 받들었다.


그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 결혼한 지 얼마되지 않은 한국통신 직원이 매일 밤 집에 돌아오지 못하자 아내가 남편을 의심하는 일이 발생했다. 사실은 이번 CDMA 통화 시연 때문에 밤낮이 없는 직원이었다. 이에 직접 서정욱 사장이 아내에게 일일이 전화하며 이를 해명하기도 했다는 후일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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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전문지에서만 10년 넘게 근무하며 전세계를 누볐습니다. 이전에 정리했던 이동통신 연대기를 재수정 중입니다. 가끔 다른 내용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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