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부. 정보통신부 신설, PCS 표준 경합
1995년, 한국의 통신시장에 다시 한번 ‘표준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개인휴대통신(PCS: Personal Communication Service)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기술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발생했다.
한국통신은 PCS 사업자 선정 소식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미 1980년대 말 한국이동통신을 분리하면서 이동통신 영역을 내준 경험이 있었고, 1994년 제2이동통신사 선정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PCS는 한국통신에게 다시금 이동통신 시장에 복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상철 단장을 중심으로 ‘무선통신사업추진단’을 출범시킨 한국통신은 전국 커버리지와 20만 원대 단말기로 이동전화 시장을 재편하겠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삼성전자, LG정보통신, 대우통신 등과 공동개발협약을 체결하고,1) 1995년 3월 8일 여의도 지역에 시티폰(CT2) 시범 서비스를 시작하고, 이후 시티폰을 위해 구축한 망 인프라를 PCS 기지국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2)
한국통신과 같은 유선 기반 통신사업자인 데이콤 역시 야심차게 PCS 사업 진출을 준비했다. 대도시 중심의 서비스 계획과 2000년까지 1조8000억 원을 R&D에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TDMA(시분할다중접속) 방식을 PCS 기술표준으로 선택했다.
TDMA는 당시 유럽 GSM 진영에서 널리 채택된 표준으로, 글로벌 호환성 면에서 우위가 있었다. CDMA보다 기술적으로는 한 발 늦었지만, 이미 상용화된 장비 생태계를 바탕으로 빠른 구축이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한국통신 입장에서는 후발주자로서 CDMA가 아닌 대척점의 기술을 채택해 차별화에 나설 필요가 있었고, 전 세계 도입 흐름을 고려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맞선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은 이미 CDMA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정부 주도 하에 수년간 수천억 원을 투입해 개발해온 기술이었고, 이를 PCS까지 확대 적용할 수 있다면 기술적·시장적 주도권을 계속해서 확보할 수 있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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