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부. 정보통신부 신설, PCS 표준 경합
1994년, 통신산업의 구조를 근본부터 재편하려는 정부의 2차 개편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개인휴대통신(PCS: Personal Communication Service)을 둘러싼 논쟁이 산업계를 뜨겁게 달궜다. 단말기 보급 확대와 고유번호 부여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이동통신이 가능한 시대를 예고했던 PCS는, 그러나 기술방식과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충돌로 오히려 혼선의 중심에 서게 된다.
PCS 개념은 영국 브리티시텔레콤(BT)의 레이몬드 스틸 박사가 제안한 것으로, ‘개인에게 이동전화번호를 부여해 초소형 단말기로 언제 어디서나 통화가 가능하다’는 이동통신의 미래상을 담고 있다. 유럽에서는 PCN(personal communication network), 미국에서는 PCS로 불리며 약간의 표현 차이를 보였지만, 핵심은 동일하다. ‘개인 중심의 이동통신’이다.
체신부가 추진한 2차 통신사업 구조 개편안의 핵심도 PCS였다. 기존 기간통신사업자, 특정통신사업자 간의 영역 장벽을 허물고, 누구든 일정 요건만 갖추면 통신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구조를 개방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PCS는 단순한 신규 서비스가 아닌, 통신산업 재편의 바로미터로 작용했다.
문제는 PCS 기술방식을 둘러싼 논쟁이었다. CDMA(코드분할다중접속)와 TDMA(시분할다중접속) 간의 경쟁은 제2이동통신사 선정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는 갈등 요소였다. CDMA는 국내 개발 진영과 미국 중심의 생태계가, TDMA는 유럽 GSM 진영과의 호환성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기업들 역시 각자 준비한 기술방식이 PCS 표준으로 채택되기를 강력히 원했다. 기술 방식 선택은 단지 서비스 품질의 문제가 아니라, 향후 시장 주도권과 생태계 장악력을 좌우하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기술방식 선택 못지않게 중요한 쟁점은 PCS 사업자 선정 문제였다. 1994년 5월 30일, 윤동윤 당시 체신부 장관은 국회 당정협의회에서 PCS 사업자를 우선 1개 선정하겠다고 밝혔다.1) 6월 30일에는 체신부가 2차 구조 개편 방향을 공식 발표하며, 1995년 중반에 사업자를 지정하고 1997년 시범서비스를 시작하겠다는 일정까지 공개했다. 법과 제도 정비도 동시에 이뤄졌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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