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부. 정보통신부 신설, PCS 표준 경합
1995년 10월 20일, 정보통신부는 PCS 무선접속방식의 기술표준으로 CDMA를 공식 확정했다.
그러나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표준이 정해졌다고 모두가 이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주요 사업자들은 여전히 ‘다른 길’을 꿈꿨고, 정부는 그들의 망설임과 저항을 직면해야 했다. 이동통신의 새 시대를 앞두고 막판 진통이 시작된 것이다.
기술표준 발표 이후에도 가장 완강한 자세를 보인 곳은 한국통신이었다. CDMA가 표준으로 확정됐지만, 한국통신은 여전히 TDMA 방식을 포기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글로벌 시장, 특히 유럽 GSM 진영과의 호환성과 해외 진출을 위한 준비라며 ‘글로벌 전략’을 강조했지만, 실제 속내는 달랐다.
정부 결정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회의와 함께, 다양한 기술변수에 대비해 TDMA 기반의 개발을 유지하려는 포석이었다. CDMA만을 고집했다가 기술적 문제가 생길 경우, 돌파구가 없을 수 있다는 현실적 고려였다. 정보통신부 입장에서는 명백한 불복으로 읽힐 수밖에 없었다.
같은 시기, 신세기통신의 움직임은 또 다른 불씨를 던졌다. 미국 에어터치가 11% 지분을 보유한 신세기통신은 아날로그(1G) 방식 이동전화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10월 24일, 에어터치 샘 긴 회장과 칼라 힐스 전 USTR 대표가 직접 정보통신부를 찾아 아날로그 방식 허가를 요청하면서 논란은 급속도로 확산됐다.1)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신세기통신은 CDMA 장비를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조달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이는 정부의 국산 기술 육성 기조와 정면 충돌하는 행보였다. 주파수 배분, 장비 도입, 사업권 부여 등 핵심 의사결정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온 에어터치의 로비력은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반대편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한국이동통신이었다. CDMA 개발을 주도해온 만큼, 시장의 후퇴 조짐은 좌시할 수 없었다. 아날로그 방식은 당시로서는 구시대의 유산이자 자사의 독점 영역이기도 했다. 신세기통신이 1G 도입을 현실화할 경우, 경쟁 우위를 빼앗길 우려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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