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부. 韓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1995년 12월의 마지막 주, 대한민국 인천과 부천 일대는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정부도 아니고, 언론도 아닌 한국이동통신 직원들이었다. CDMA 상용화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정작 가장 가까이에 있어야 할 이들의 신뢰조차 확실치 않았다.
상용화에 앞서, 그들은 직접 현장을 뛰며 CDMA 시험 통화를 반복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이 조용한 움직임이야말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현실로 만든 결정적 전주곡이었다.
현장 점검은 성과를 냈다.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도 “정말 된다”는 확신이 싹텄다. 이에 한국이동통신은 1995년 12월 26일, 정부로부터 정식 형식 승인을 받아냈다. 이는 CDMA 시스템과 단말기가 상용 서비스에 적합하다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동시에, 상용망의 적체를 방지하기 위해 정보통신부는 유휴 주파수 대역까지 추가로 할당했다. 시스템과 주파수, 규제가 삼위일체를 이루는 순간이었다.
1995년 12월 31일, 한국이동통신은 마지막 시험통화에 나섰다. 손길승 SK그룹 부회장과 서정욱 한국이동통신 사장이 인천 톨게이트에서 차량에 올라 인천 주안역까지 이동하며 최종현 SK그룹 회장에게 CDMA 방식으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 단말기를 번갈아 쓰며 진행된 이 통화는 단 한 차례의 끊김도 없었고, 마치 준비된 연출처럼 명료하게 이어졌다. “된다”는 확신은 이제 ‘된다’는 증명으로 바뀌었다.1)
마침내 1996년 1월 1일, 한국이동통신은 CDMA 방식의 세계 최초 상용 서비스를 개시했다. 그동안 상용화를 선언했던 나라들은 있었지만,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했다. 이 날부터 우리나라는 명실공히 디지털 이동통신 기술의 패권국으로 올라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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