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부. 韓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1996년 1월 1일,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세계 최초’를 기록했다. 한국이동통신은 인천과 부천 지역에서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의 디지털 이동전화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성취를 넘어, 전 세계 이동통신사들이 아직 시험 단계에 머물러 있던 CDMA 기술을 한국이 가장 먼저 ‘실제 시장’에 내놓았다는 데서 상징성이 크다.
비록 1월 1일은 공휴일이었지만, 상용화는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첫 가입자는 1월 3일 오전 9시 1분, 남인천영업소를 찾은 자영업자 정은섭 씨였다. 몇 달을 기다린 끝에 새 통신 서비스를 손에 넣은 그는 “통화음이 너무 깨끗해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이후 ‘1호 가입자’라는 타이틀은 국내 언론과 업계의 조명을 받았다.1)
서비스 개시는 서울이 아닌 인천·부천이었다. 한국이동통신은 애초 서울을 염두에 뒀지만, CDMA 운용에 필요한 안정적인 주파수 확보가 쉽지 않았다. 결국 주파수 여유가 상대적으로 있던 인천·부천을 선정했고, 이후 정부의 800MHz 대역 유휴 주파수 추가 할당을 통해 전국 커버리지를 확대해 나갔다.
1996년 4월 12일 서울 수도권 확대를 시작으로, 7월 울산, 8월 대구·경북, 9월 부산·광주·전남으로 이어지며 단 9개월 만에 전국 주요 도시에 인구 대비 약 79% 커버리지를 달성했다.
CDMA 서비스 초기 요금제는 ‘프리미엄’ 수준이었다. 기본료는 2만7천원, 통화요금은 10초당 25원. 15초 이용 시 20초로 인정돼 50원이 부과되는 방식이었다. 단말기는 LG정보통신의 ‘프리웨이 LDP-200’으로 약 72만원에 판매됐다. 현재로 따지면 플래그십 스마트폰 이상의 가격이었다.
서비스 보급에 속도를 내기 위해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은 1996년 1월 15일 정보통신부에 ‘단말기 직접 유통’ 허가를 요청했고, 1년 한시 조건으로 승인받았다. 이는 기존 단말 유통망과의 갈등을 방지하면서도 보급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절충안이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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