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부. 韓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1996년 4월 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
정태기 신세기통신 사장이 단상에 올랐다. “전파의 힘이 강하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파워디지털 017’의 서막을 알리는 자리. 바로 이날, 대한민국 제2이동통신사업자로서 신세기통신이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3개월 만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었다.
신세기통신의 출발은 녹록지 않았다. 컨소시엄 내 242개 기업이 얽힌 복잡한 이해관계, 외국 파트너의 아날로그 도입 요청, 잦은 경영진 교체 등으로 상용화 일정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한국이동통신이 인천·부천에서 세계 최초 CDMA 상용화를 이룰 때, 신세기통신은 상용화 일정을 6월로 미뤄달라고 정보통신부에 요청할 정도로 위기감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정태기 사장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했다. 1996년 1월, '4월 상용서비스 개시 추진위원회'라는 전담조직을 꾸리고 임원회의 명칭까지 바꿨다.1) 관련부서가 비상근무에 들어갈 정도로 전 직원이 총동원됐다. 전국에 3단계 지역별 구축계획을 수립했고, 2월부터는 수도권과 대전권에서 시범서비스를 시작했다. 3월에는 일반고객 2000명을 대상으로 품질 검증에 나섰고, 통화소통률 95%라는 수치를 확보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신세기통신은 아날로그와 연동하지 않았다. CDMA만으로 전국망을 구축하는 전략은 기술적 순도는 높았으나 리스크도 컸다. CDMA 커버리지가 닿지 않는 곳에서는 통화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후발주자의 기술적 자부심이었지만, 동시에 상업적 한계로 작용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세기통신은 정면돌파를 택했다. 상용화와 함께 요금제 차별화를 내세웠다. 기본료는 2만2000원을 유지하되, 통화료는 기존보다 50% 낮은 10초당 15원으로 책정했다. 통화 도중 끊길 경우 요금을 받지 않는 ‘품질기반 과금제’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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