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부. 제3이통사 찾아라, PCS 고개넘기
1996년 봄, 이동통신 업계는 제3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요동쳤다. 통신장비업체군의 ‘LG텔레콤’과 ‘에버넷’에 이어 비통신장비업체군에서도 치열한 컨소시엄 결성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뭉쳐진 고정 진영이 아니었다. 이해관계에 따라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 다른 진영과 손잡는 ‘연합과 해체’의 연속이었다.
통신장비 제조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비통신장비업체군은 자연스레 연합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효성과 금호, 한솔 등 그룹 계열을 중심으로, 전국망과 운용 경험을 갖춘 데이콤, 중소기업중앙회가 이끄는 중소기협 컨소시엄까지 가세하면서 비장비군은 처음부터 다자 구도였다.
하지만 첫 균열은 예기치 못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3월 14일, 한솔제지 구형우 사장이 공정위 국장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입건된 것이다. 한솔은 “PCS 사업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도덕성’ 항목이 심사 기준에 포함된 상황에서 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 사건은 이후 각 컨소시엄의 구성에도 도덕성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이어졌다.1)2)3)
그러나 한솔은 리스크를 감수하고도 컨소시엄 결성에 속도를 높였다. 3월 19일 쌍용그룹의 합류를 시작으로, 21일에는 효성과도 손을 잡기로 했다. 효성과는 각각 20%의 지분을 출자하고 서비스 권역을 분할하는 조건에 합의했다.
하지만 ‘한솔-효성’ 연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업권 분할 등 구체적 협상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같은 날 금호가 전격적으로 데이콤과 손을 잡겠다고 선언하면서 양사 관계가 꼬이기 시작했다. 데이콤은 네트워크 전국망을 보유하고 통신 노하우를 갖춘 다크호스였다. 데이콤은 지분 제한으로 인해 5%밖에 출자할 수 없었지만, 수도권 영업권을 내세워 금호를 끌어들였고, 금호가 이 조건을 수용하면서 ‘금호-데이콤’ 연합이 급부상했다.
우선 한솔은 22일 대기업과 중견기업 50여곳, 중소기업 300여곳과 함께 ‘한솔PCS 컨소시엄’을 공식 출범시켰다. 아남산업과 고합, 한화 등 대기업을 등에 업은 한솔은 50여 대기업 및 중견기업과 300여 개 중소기업 등이 컨소시엄 구성에 나섰다고 설명했다.4)
또한, 한솔은 효성을 배제하고 적진이던 데이콤과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마침내 3월 28일, 한솔과 데이콤은 각각 25%, 5% 지분 투자에 합의하고 서울, 부산, 경남권을 분할하는 조건으로 공식 제휴를 체결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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