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부. 제3이통사 PCS 사업자 선정
1996년 6월 10일, PCS 사업자 발표 이후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다. 허가를 획득한 LG텔레콤, 한솔PCS, 한국통신프리텔은 경쟁사 탈락의 여운도 잠시, 전력투구 모드로 전환했다. 각 진영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탄생을 축하했고, 새로운 이동통신 회사를 세우는 데 속도를 냈다. 한국형 PCS 3강 구도가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LG그룹은 PCS 사업자 선정 당일, 조용한 생맥주 파티를 열었다. 축제의 분위기는 물씬 풍겼지만, 과도한 자축은 피했다.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지하 1층 식당에서 열린 회식 자리엔 구본무 회장을 비롯해 정장호 LG정보통신 사장 등 100여 명이 모여 생맥주로 승리를 나눴다.
정장호 사장은 “국민과 정부의 신뢰에 부응하겠다”며, “국내에서 최적 장비 선택과 저렴한 요금으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해외 시장 진출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도 키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1)
LG는 정장호 사장을 LG텔레콤 대표이사로 내정하고, 7월 4일 서울 서초동 반도빌딩에서 창립기념비 제막식을 거행했다. ‘LG텔레콤의 산실. 반도빌딩 8층 영원히 기억되리라’는 문구가 상징적으로 새겨졌다.2)
이어 7월 11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LG텔레콤 창립총회를 통해 정장호 사장은 공식 선임됐다. LG는 1998년 1월부터 수도권을 시작으로 서비스를 개시하고, 2년 내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공표했다. LG텔레콤은 LG정보통신, LG전자, LG반도체 등 3개 그룹 계열사와 총 117개 기업이 참여한 컨소시엄으로 구성됐으며, 자본금은 2,000억 원, LG지분은 29%였다. 전국망 구축에는 총 8,3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었다.3)
한솔그룹 역시 자축의 분위기였다. 기존 제지 중심의 사업 구조를 벗어나 정보통신을 주력사업으로 육성하고자 하던 ‘한솔 플랜 2000’의 핵심 전략 중 하나가 바로 PCS 사업 진출이었다. 정영문 한솔기술원장이 한솔PCS 사장으로 선임되었고, 그는 “계획대로 철저히 준비해 1998년 서비스 개시에 차질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솔은 빠르게 움직였다. 선정 열흘 뒤인 6월 20일, 한솔PCS 사업설명회를 개최하고 자본금을 5,000억 원으로 증자한다고 밝혔다. 1998년 1월 수도권 서비스를 시작으로 2000년 전국 확대, 2002년까지 매출 1조320억 원, 시장점유율 35%를 목표로 세웠다. 이어 8월 1일, 서울 한국종합전시장 국제회의실에서 창립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공식 출범했다.4)
한솔의 파트너인 데이콤과의 관계도 주목됐다. 당시 5% 지분을 보유한 데이콤은 전신망과 브랜드 파워로 컨소시엄의 안정성을 높였다. 그러나 과거 LG와의 데이콤 지분 문제와는 달리, 한솔은 이를 전략적으로 잘 활용하며 별다른 잡음 없이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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