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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기 May 12. 2023

(9) 제2이통사 무산, '정치' 경제를 압도하다

4부. 제2이동통신사 선정

우여곡절 끝에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선경(대한텔레콤)이 선정되기는 했으나 노태우 대통령이 인척 기업에 허가한 불공정 처사라는 국민적 여론, 제6공화국 말기 정치권의 소용돌이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노태우 대통령과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이 사돈지간임을 고려해 선경이 특혜를 입었다는 것. 특혜 시비에 휘말렸기에 선경에 대한 제2이동통신사 선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 논리는 당시 정확한 근거는 없었으나 ‘사돈’이라는 관계와 그때의 정치적 성향에 맞물려 마치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다만, 그에 따른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인척관계와 상관없이 사업자 선정 자체가 공정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가령 명문대 총장의 아들이 해당 명문대에 실력이 좋아 수석으로 합격했다고 하더라도 총장 아들이기 때문에 탈락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처사라는 지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선경은 1, 2차 심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했기 때문에 실력으로 제2이동통신사업을 거머쥐었을 뿐이며, 인척관계는 사실상 이 자리에 낄 수도 없고 고려될 요소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산업적 측면을 벗어나 정치권에서는 ‘특혜 시비’라는 그 현상 하나만으로도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당시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그에 따른 여론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을 향해 독점운영에서 경쟁체제 전환이라는 산업적 목표가 일순간 정치화되는 순간이었다.1) 


‘정보통신산업’ 정치 격랑에 휘말리다


1992년 8월 20일 2차 심사결과가 발표되고 선경이 제2이동통신 사업을 따내자 다음날인 21일부터 ‘특혜 시비’, ‘도덕성 결여’, ‘짜놓은 선정’ 등 언론의 비판적 기사와 칼럼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특히 정치권의 반발이 거셌다. 야권은 물론 여당인 민자당 측도 선경의 제2이동통신 사업자 확정에 날을 세웠다. ‘6공 최대의 정경유착’이라고 결론 내린 정치권은 정기국회에서 국정조사권을 발동해 의혹을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차기 대통령 후보가 유력시된 김영삼 민자당 대표까지도 반대 의사를 공론화하면서, 청와대와 여당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확산됐다. 


김영삼 민자당 대표 최고위원은 발표 당일인 8월 20일 오전 고위당직자회의를 긴급 소집해 이동통신사업자 발표에 따른 대책을 논의했다. 노태우 대통령과의 청와대 주례회동에서도 승복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특혜 논란이 있는 선경을 제2이통사로 확정하게 된다면 여론의 반대에 휘말려 여권 역시 타격을 받을 수 있고, 이 타격은 차기 대선에서 악영향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추측이 커졌다. 


야당인 민주당도 이 흐름을 타야 했다. 김대중 민주당 대표는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이 무리한 성정이며, 또 다른 경제파탄의 우려를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여론과 경제실정을 감안해 사업자 선정을 즉각 취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주영 국당 대표도 유감을 표하고 백지화를 주장하면서, 선정 자체를 차기 정권으로 넘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2) 


이 같은 불복 선언에도 체신부는 의연하게 대응했다. 송언종 체신부 장관은 선정 과정에서 한 점의 의혹도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심사한 이상 친인척 관계는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대학입시에서 총장 아들이 응시했을 경우 실력이 부족하다면 합격시키는 일이 없어야 하지만 반대로 실력이 뛰어난데도 불합격시키는 일 또한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체신부는 심사기준 등 허가신청서에 상세히 공개돼 있기 때문에 세간에서 지적하는 선경에 유리한 평가기준 등은 사실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허가업무 추진 중에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을 만난 적도 없으며, 심사 결과를 사전에 청와대에 보고 못했다고 설명했다. 신규 사업자가 선정됐기 때문에 현재 실용시험단계에 있는 통신 관련 국산기기의 국산화를 오히려 촉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3) 


대한텔레콤을 이끈 선경 역시 특혜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유공사옥에서 김항덕 유공사장 등 대한텔레콤 컨소시엄 참여업체 16개사 사장단을 배석시킨 가운데 직접 특혜시비와 관련해 정면돌파에 나섰다.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국민께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하고 대한텔레콤이 공적 서비스 기관으로 운영해 이동통신 사업 특혜 문제를 깨끗이 씻겠다고 선언했다. 만약 1997년 이후 이익이 발생한다면 국민주 형식의 기업공개 등을 통해 이익을 국민에게 환원하겠다고 다짐했다. 만약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을 시에는 개인재산을 털어서라도 그에 상당하는 금액을 사회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특혜 논란과 관련해서 국민에게 보다 나은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오명을 벗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선경은 1986년부터 그룹회장실에 정보통신전담반을 설치하는 등 일찍부터 정보통신 사업 참여를 준비해 왔고, 선정 과정에서도 경쟁사보다 월등하지 않다면 사업 착수를 포기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노 대통령과 정치권의 접촉도 일체 없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특정 정치 인사를 만나지 않을 것이라 선을 그었다. 


선정에 따른 부당성이 증명된다면 정부의 어떠한 결정도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최 회장은 최악의 경우 사업권을 반납할 수도 있다고 결의했다. 만약 사업자 선정이 연기된다고 하더라도 차기 정권에서도 정보통신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다.4)5)


청와대도 특혜 논란에 대해 ‘공정한 심사결과’를 강조하고 나섰다. 여야 합의로 전기통신기본법을 제정했고 그에 따라 사업자를 선정했으며,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 야권의 우려를 인정하면서도 한 점의 의혹이라고 있다면 정부가 이렇게 당당할 수 없다고 확언했다. 만약 연기를 결정했다면 더 큰 비난이 노 대통령과 행정부에 쏟아졌을 것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이 같은 특혜 논란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어 심사기관 동안에도 체신부로부터 심사와 관련된 어떠한 보고도 받지 않을 정도로 신경을 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혜 논란에 불편했던 이들은 사실상 실제 선정작업에 나선 심사위원들이었다. 심사평가 위원들은 심사과정에서 외압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자신이 맡은 부분 외에 다른 심사위원들이 평가한 점수 등 전체 심사과정 역시 알 수 없었으며, 심사평가과정에서 의혹을 사지 않도록 신중했다고 회고했다. 모두가 ‘소신 심사’를 주장했다.6) 


당혹스러운 정부와 업계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중) [사진=SK그룹]

체신부와 심사위원, 청와대, 선정된 사업자까지 나서 특혜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으나 정치권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로부터 3일 후.


돌연 언론을 통해 선경이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자진 반납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민자당의 상당수 의원들이 악화된 당정 -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자당 대표 -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선경이 스스로 사업권을 내려놔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 당시 야권인 민주당과 국민당은 정부 결정의 백지화를 계속해서 주장하는 중이었다.7) 


선경의 컨소시엄인 대한텔레콤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컨소시엄은 국내 사업자로만 구성된 게 아니었다. 타 컨소시엄들과 마찬가지로 해외 사업자까지 포함된 상황이었다. 대한텔레콤의 미국 GTE 10%, 영국 보다폰 6%, 홍콩 허치슨 4%가 참여한 국제 컨소시엄 형태였다. 


유공의 지분이 31%로 가장 높기는 하나 나머지 66%의 반발을 견디기에는 부족했다. 특히 국내 정치적 특수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 기업의 경우 사업권 반납에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었다. 실무 측면에서는 뒤로 가기도, 나아가기도 쉽지 않은 혼란한 상황이다.  


체신부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번 결정된 행정조치가 정치권의 압력과 여론에 밀려 뒤집힌다면, '전대미문의 해프닝'으로 기록될 게 뻔했다. 정부 공신력 실추는 물론이거니와 또 다시 치뤄야 하는 재선정에 따른 부담도 가중된다. 무엇보다 체신부는 1980년 말부터 정보통신 구조조정에 나섰다. 3년만에 결실을 본 순간이 단 몇일만에 와르르 무너지는 광경을 지켜봐야 한다. 만약 공든 탑이 허무하게 무너진다면, 어느 공무원이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을지 자괴감에 허덕일 수 있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또한 표정관리에 신경쓰기는 했으나 마음의 불을 다스리긴 어려웠다. 정치 논리가 경제를 지배하는 사례가 지속된다면, 이는 곧 기업이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에 빠질 수 있었다. 당장 경부고속전철과 LNG 3호선, 영종도 개발사업 등 굵직한 현안들이 민관 협력에 따라 진행 중에 있었기 때문에 악영향은 불보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이동통신사 선정의 부정적 격랑은 멈추지 않았다. 되돌릴 수 없는 흐름에 등 떠밀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당시 업계에 따르면 선정된 지 나흘이 지난 24일 선경에서 잠정적으로 제2이동통신사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추정했다.8) 


정치, 경제를 압도하다


'대한텔레콤이 제2이동통신사를 접는다'는 명제는 생각보다 많은 후폭풍을 예고했다.


선경 입장에서는 그간 투입했던 비용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컨소시엄에 참가한 업체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설득의 과정은 역시나 가시밭길이 예고됐다. 


또한 포기하더라도 방식에 따른 문제가 있었다. '자진반납'과 '백지화'라는 두 가지 방법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갖고 있다. 정부가 선정 자체를 백지화한다면 선경은 책임에서 어느 정도 회피할 수 있지만, 자진반납의 경우에는 모든 책임을 정부가 아닌 선경이 져야 했다. 


체신부도 '백지화'를 선언할 경우 정부 공신력이 실추될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망신을 당해야 했다. 또한 특혜 시비 논란을 인정하게 되는 상황도 감내해야 한다. 선경의 탈락이 곧 2위와 3위 사업자에게 돌아가게 될지 또는 선정 작업을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할지도 판단해야 했다.  


선경과 체신부의 고민과 달리 이같은 부정적 분위기는 제2이동통신사에 도전해 고배를 마신 탈락 컨소시엄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동양과 동부는 백지화를 통해 재선정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며, 코오롱은 공정한 선정작업을 통해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항제철은 새로운 정권이 새로운 심사기준에 의해 적격업체를 선정해야 한다고 품평햇다.  


잡음이 끊이지 않았으나 선경은 할일을 해야 했다. 외국과 국내 참여업체 15개 사와 접촉해 의견수렴에 나섰다. 물론 예상대로 업체 대부분이 크게 반발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게 그들의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법률상 전혀 하자가 없고 심사과정이나 평가기준 과정에서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돌연 기업 스스로가 어렵게 따낸 이 사업권을 스스로 자진반납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실제 외국기업의 경우 피해보상계약 위반 위약금 청구 소송과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냈다.9) 


하지만 이미 불어온 바람은 막을 수 없었다. 정치권은 그러한 사정에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잇속을 채우고자 나선 정치권은 자신들의 주장만 강요할뿐이었다. 정치권은 체신부가 나서 선경의 제2이동통신사 자격을 반납받는 절차가 가장 자연스러운 대안이라고 훈수를 뒀다. 체신부는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공정한 심사과정을 통해 선정했는데 이를 다시 번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과적으로 제2이동통신사 무산은 정부보다는 정치권에 따른 압력이었다는게 현재까지도 유력한 후문으로 돌고 있다.10) 


3년의 노력 허망한 최후, 제2이동통신사 '무산'


8월 26일 청와대 국무회의. 제2이동통신사를 선정한 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그 때.


노태우 대통령이 침통한 얼굴로 각 부처 공직자들을 위로했다. 가슴 아픈 심정으로 유감을 표했다. 제2이동통신사 선정 불발. 3년의 노력이 몇일만에 허망하게 사라지는 순간이었다.11) 


이튿날 27일 오후 손길승 대한텔레콤 사장이 서울 을지로 선경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업 포기를 선언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손 사장은 ‘합법적 절차와 공정한 평가를 거쳐 사업자로 선정됐으나 물의가 커 국민 총화합에 기여한다는 취지에서 사업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끝은 아니라고 다짐했다. 오해받을 우려가 없는 다음 정권에서 실력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아 사업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12) 


다시 다음날인 28일 송언종 체신부 장관이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이동전화사업 신규허가대상자의 재선정문제는 다각도로 검토한 끝에 모든 문제를 다음 정부의 결정에 맡기기로 방침을 확정했다 발표했다. 


또한 송언종 체신부 장관을 비롯해 심사에 참여한 중요 인사들이 모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다. 이진설 청와대 경제수석 역시도 사의를 표했다. 최소한의 잘못도 오해도 없었다는 의미의 사직이었다. 공직자의 마지막 양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결국 이 사의 표명을 반려함으로써 마지막 자존감을 지켜줬다. 13)14) 


이처럼 길고 고단한 제2이동통신사 무산은 단 일주일만에 일어난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았다.  



1) <"당연한 결과""들러리섰다"희비갈려>, 동아일보, 1992. 7.30.

2) 이도성 기자, <"김영삼 발목잡자" 몰아붙이기>, 동아일보, 1992. 8.23.

3) 안종주 기자, <이동통신 사업자 확정 관련 기자회견 송언종 체신부 장관>, 한겨레, 1992. 8.21.

4) 홍인표 기자, <선경 최종현 회장 일문일답 "수익 전액 국민주 형식 사회환원>, 경향신문, 1992. 8.21.

5) 최영태 기자, <6년전부터 미서 사업경험...자격서 앞섰다 하자있을땐 반납...매출액 18% 연구에 투자>, 조선일보, 1992. 8.21.

6) <이동통신 심사위원들의 변>, 경향신문, 1992. 8.21.

7) <이동통신 [반납] 가능성", 경향신문, 1992. 8.24.

8) <정치 논리 압도...이게 뭔가>, 매일경제, 1992. 8.25.

9) <선경 "외국참여업체 항의-손배소 고민">, 동아일보, 1992. 8.25.

10) 안종주 곽정수 기자, <'이동통신 반납설' 업계등 반응 체신부 "권위 완전실추" 침통>, 한겨레, 1992. 8.25.

11) <비서진 일괄사표 제출할듯>, 조선일보, 1992. 8.27.

12) 안재승 기자, <손길승 대한텔레콤사장 일문일답>, 매일경제, 1992. 8.28.

13) <이 경제수석・송체신 사의 빠르면 내달초 개각>, 매일경제, 1992. 8.28.

14) <송 체신-이 경제수석 노대통령, 사표 반려>, 동아일보, 1992.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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