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부. 이동통신 혼돈의 세기말
5개의 이동통신 사업자가 치열한 경합체제에 돌입하기 전, 전 세계는 다음 세대의 통신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아날로그 1세대를 넘어 디지털로 전환된 2세대, 그리고 전 세계를 하나로 묶기 위한 3세대 통신에 대한 꿈에 부풀었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꿈의 통신시대’라 불렀다.
다만, 전 세계를 잇기 위해서는 모두를 관통할 통일된 기술체계가 필요했다. 즉, 기술 표준이 마련돼야 했다. 문제는 어떤 기술을 표준으로 선택하는가다. 즉, 누군가가 기술을 개발하고 표준으로 쓰인다면, 그 누군가가 이동통신 시장에서 승기를 가져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기술 표준은 누가 정해야 할까. 그 일은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수행하고 있다.
ITU는 국제주파수 분배 및 기술표준화를 위한 국제연합(UN) 산하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기구다. 최초의 국제 전신망을 관리하기 위해 1865년 설립됐다. 수년에 걸친 기술진화에 따라 ITU는 음성 전화의 발명, 무선 통신의 개발, 최초의 통신 위성 발사, 최근에는 통신기반 정보 시대를 포괄할 수 있을 만큼 확장됐다. UN의 전문기구 중에서 전기통신 관련 세계 최고의 국제기구이기도 하다.
2020년 기준 ITU에 가입된 국가는 193개로 약 900개 기업과 대학, 국제 및 지역 조직이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는 1952년 가입했다. 조직은 최고 의사 결정 기관인 전권위원회의와 이사회, 무선통신부문을 담당하는 ITU-R, 전기통신 표준화 부문인 ITU-T, 전기통신개발부문인 ITU-D로 구성됐다.
한마디로 ITU는 전기통신 기술과 관련된 전 세계적인 약속을 공식화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역시 주요 인사들이 각 작업반에서 핵심과제를 이끌고 있다.
전 세계는 3세대 통신으로 쓰일 표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물밑 경쟁을 벌였다. 성공한다면 거대 생태계를, 실패한다면 갈라파고스에 빠져 자멸할 수 있었다. 이동통신은 단순히 경제적인 부흥뿐만 아니라 국가 보안에도 미치는 영향이 컸다.
때문에 혼자 힘으로는 어려웠다. 세를 키울수록 유리했다. 적은 곧 동지가 되고 동지는 또 다시 적으로 만나야 했다. 경쟁과 상생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치 속에서 변증법적 결과물을 내야 했다.
예를 들어 다국적 기업 Q사가 신규 자동차 제조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최고속도 20Km/h를 달성하는 자동차를 만드는 과제다. 이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다양한 기업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가솔린이나 경유, 전기, 수소 등 다양한 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를 제작했다. 이 중 가솔린을 활용한 A 자동차가 목표 속도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A는 가솔린 자동차의 설계도면을 Q에게 제출하고 심사 끝에 최종 승인을 결정한다. 이에 따라 A가 설계한 자동차는 세계 곳곳을 누비게 되고, A는 돈방석에 앉는다. 또한 가솔린을 제공하는 정유사나 A가 활용하는 부품, 그간 파트너십을 맺었던 관계사들까지도 매출 상승의 기쁨을 누렸다.
물론, 현실은 이렇게 쉽게 일이 풀리지는 않는다. 전기를 연료로 하는 자동차를 개발하던 B는 20km/h 달성을 위해서 시작부터 C, D와 협업을 전개했다. 수많은 배터리 기업들이 B, C, D의 협업개발에 힘을 주기 위해 설계도 작성에 참가했다. 전반적인 부품업계도 친환경적인 전기차 개발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이에 따라 B, C, D는 ‘BCD협력체’를 만들어 더 많은 참가자들을 모집했다. 결국 전기로 20Km/h를 달리는 자동차를 만드는 데 성공하고 설계도를 Q에 제출해 최종 승인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대세는 가솔린 자동차에서 전기 자동차로 기울게 된다. 전기 자동차가 더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가솔린 진영은 A를 뒤로 하고 속속 BCD협력체에 가담한다. 정유업계도 어려움에 빠지자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제안하기도 한다. 결국 A의 설계도면이 앞서 채택되기는 했으나 BCD의 설계도가 세상의 중심이 된 셈이다.
실제 현실과는 다른 가상 시나리오이기는 하나 이 같은 절차가 표준이 제정되고 전 세계에 적용되는 하나의 사례를 보여준 셈이다. A가 최종승인을 받기 전에 BCD가 먼저 선점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또는 BCD에 대항하기 위해 A가 규합한 ‘AEF연합체’가 꾸려질 수도 있고, 또 다른 G가 등장할 수도 있다.
이렇듯 표준은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되는 양상을 보인다.
3세대 이동통신 표준명은 초기 미래공중육상이동통신서비스(Future epublic land mobile telecommunication system)라 불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줄인 플림스(FPLMTS)라는 명칭이 쓰였다. 공중 주파수 사용과 단일 기술표준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하나의 단말기로 음성과 데이터, 동영상 등 고속 멀티미디어 통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차세대 이동통신을 가리킨다. 최대 속도 2Mbps를 낼 수 있어 모니터 달린 단말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다만, 용어가 복잡하고 어려워 ITU에서 보다 쉬운 IMT-2000(International mobile telecommunication-2000)으로 표준명을 정립했다. 활용되는 주파수 대역이 2000MHz(2GHz), 상용화 시기가 2000년대임을 고려한 결과였다. 즉, 플림스와 IMT-2000은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동일한 의미로 통용된다.
표준명은 명칭을뿐 표준 기술 후보군과 동등관계는 아니다. 각각의 기술 후보가 경합을 벌여 표준으로 지정된다. 그렇다고 하나의 기술만이 표준이 되지는 않는다. 단독이 될 수도 복수가 될 수도 있다. 가령 '드림팀(표준명)'을 만들어 그에 준하는 실력을 갖춘 팀원(기술)들을 기준에 맞게 선별해 참여시킨다고 볼 수 있다.
2G 시대 기술은 미국이 이끈 CDMA와 TDMA, 유럽의 GSM, 일본 단독의 PDC 등 다양했다. 우리나라는 그 중에서도 2G를 구현할 기술표준으로 CDMA를 택한 셈이다.
3G 시대 기술표준 후보군은 같은 근간을 보다 확장시킨 개념이다. 유럽 GSM은 이후 HSCSD, GPRS, EDGE로, TDMA는 EDGE로, 미국 CDMA는 CDMA200 1xRTT로 진화했다. 각 국가와 진영들은 자신의 기술이 표준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더했다.
각각의 경쟁력은 명확했다. 유럽은 네트워크 장비기업과 단말 시장에서 위용을 갖췄다. 미국은 운영체제(OS)와 애플리케이션 생태계가 굳건하고 유선 인프라에 막강한 화력을 보유했다. 일본은 아시아 지역에서 독자 생존체계를 마련하고자 했다. 중국 역시 이동통신 시장 선점을 위한 눈치싸움을 벌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한국은 2차 신규 통신사업자(PCS) 선정 결과 발표 이후부터 3세대 통신 관련 이슈가 부상했다. 이미 이동통신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사업자의 경우 앞서 다음 세대를 대비해야 했고, 삼성과 현대, 대우 등 10여 개 대그룹과 중견그룹은 탈락의 실패를 거울삼아 다음 세대에서 신규 사업자 선정 기회를 잡아야 했다. 정부 역시 이를 주도적으로 지원해야 했다.
정보통신부는 1996년 10월 25일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IMT-2000 기술을 2001년까지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선적으로 ITU 국제 표준화 계획을 고려해 1999년까지 정부와 업계가 각각 약 1천억 원을 투자해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를 중심으로 표준 모델을 개발하기로 했다. 모델의 기능을 검증한 후 ITU에 제안해 국제 표준화를 이끌겠다는 포부였다. 표준으로 확정된다면 2001년 상용화를 추진하겠다는 로드맵을 짰다.1)
ITU는 1997년 4월부터 각 국가와 기관들로부터 표준안을 제출받고 1999년 12월 최종 표준안을 결정하기로 했다. 미국은 모토로라와 루슨트 등이 각기 다른 CDMA와 TDMA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기에 독자 세력을 구축했다. 일본은 중국을 포섭해 CDMA 키우기에 나섰고, 유럽은 유럽표준화기구(ETSI)를 중심으로 UMTS 표준을 제안하고자 했다. 우리나라도 ETRI를 중심으로 100여 개 업체가 모여 표준 모델 경합에 나선 셈이다.
1997년 1월 30일 차세대 이동통신기술개발협회의가 출범했다.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첫 회의에는 서용희 한국통신 무선사업본부장과 김영기 삼성전자 상무가 각각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맡았으며, 16명의 운영위원이 함께했다. 한국통신과 ETRI,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 데이콤, 삼성전자, 현대전자, 태일정밀, 태림전자 등이 이름을 올렸다.2)
같은 해 10월 정보통신부는 국제 정세에 부합하기 위해 복수 표준체계를 확립했다. 한국통신은 퀄컴과 루슨트, 노던텔레콤이 주도하고 있는 북미 방식을, SK텔레콤은 NTT 도코모와 함께한 일본 방식 개발을 주도했다. 한쪽이 아닌 양쪽 모두에 대한 가능성을 쥐고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기업은 기업 나름대로 3세대 통신에 대비했다.
SK텔레콤은 1994년부터 광대역 CDMA 개발을 착수해 1995년 비동기 방식의 핵심 기술인 모뎀 ASIC를 개발했다. 1996년에는 모뎀 ASIC 기능 개선을 이뤘다. 또한 정보통신부로부터 실험용 주파수를 통해 IMT-2000 기술을 개발한 SK텔레콤은 1997년 9월 대전중앙연구원에서 국내 최초, 세계에서 3번째로 128Kbps급 IMT-2000 시험 시스템 개발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또한 1998년 초 384Kbps급 시험 시스템 개발에도 성공한 후 2월 18일 김대중 대통령 취임 행사에서 IMT-2000 시연회를 열어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한국통신 역시 1997년 8월 6일 정식으로 IMT-2000 실험용 2.1GHz 주파수에 대한 무선국 허가를 받고 기술 개발을 본격화했다.
새천년을 앞둔 1999년 7월 27일. 정보통신부는 IMT-2000 정책 추진일정을 발표하면서 서비스 사업권 선정을 발표했다. 3세대 이동통신 시장 선점을 위한 불꽃이 재점화된 시기다.3)
1) <CDMA 방식 차세대 공중 육상 이통기술 [플림스] 2001년까지 개발>, 매일경제, 1996.10.26.
2) 유진평 기자, <플림스 <차세대이통> 표준모델 99년 개발>, 매일경제, 1997. 1.31.
3) <IMT-2000 그 도전과 성공>, [MOBILE STORY SINCE 1984], SK텔레콤, 2004.12.16, p.254-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