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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기 Jun 05. 2023

(40) 韓 단일 표준 플랫폼 ‘위피’ 몰락

11부. 아이폰 쇼크

  

2005년 KTF가 중소기업과 함께 '위피' 활성화에 나선 모습 [사진=KTF]


SK텔레콤과 KTF가 비동기식 WCDMA 상용화와 더불어 HSDPA를 통해 전국망을 구축하면서 본격적인 3세대 통신(3G) 시대가 열렸다. 동기식 사업을 포기한 LG텔레콤은 기존 2세대 통신(2G) CDMA를 업그레이드한 CDMA2000 1x EV-DO 리비전(Rev).A로 대응했다.


WCDMA가 음성뿐만 아니라 데이터 속도가 2Mbps 이상으로 올라감에 따라 시장 트렌드도 급속하게 변화했다. 더 긴 호흡의 글을 보낼 수 있는 멀티미디어문자메시지(MMS)와 주문형 영상(VOD), 음원을 제공하는 업체들이 탄생했다. 한편에서는 이동하면서도 즐길 수 있는 모바일게임 성능이 점차 향상됐다.


사용자들에게 가장 큰 변화는 유심(USIM)의 등장이다. 휴대폰에 넣는 가입자식별모듈(USIM)이 사용된 시점이야마로 3G가 시작점이다.


기존 휴대폰의 경우 기기 자체에 이동통신 정보가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기기변경 절차를 거쳐 신규 휴대폰 사용이 가능했다. LG유플러스는 기존 2G 방식을 업그레이드한 것이기 때문에 이 방식을 그대로 사용했다. 하지만 SK텔레콤과 KT는 유심을 도입, 신규 단말기에 유심을 꼽으면 언락폰의 경우 바로 사용이 가능했다.


유심이 도입되면서 기기변경이 보다 쉬워짐과 동시에 글로벌 로밍도 편해졌다. WCDMA는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표준이었기에 휴대폰을 각 국가에 맞춰 바꾸지 않아도 쓰던 휴대폰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었다. 유학길에 오르는 학생이나 출장이 잦은 직장인에게는 매력적인 기능이었다.


3G가 본격화됨에 따라 이통 3사도 이에 맞춰 새 옷을 갈아입었다. 각자의 특징을 살린 브랜드 마케팅 대결이 이뤄졌다. SK텔레콤은 '티(T)', KTF는 '쇼(SHOW)', LG유플러스는 '오즈(OZ)'를 브랜드명으로 사용했다. 특히 KT 쇼 브랜드는 당시 "쇼하라"라는 카피가 전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기도 했다.


‘위피’ 초기 목표 달성…역효과에 ‘당황’


데이터 속도 상승을 통한 콘텐츠 유통 활성화는 플랫폼에 대한 고민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난립해 있던 여러 콘텐츠 표준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중요했다. 생산자 입장에서도 소비자 입장에서도 보다 많은 콘텐츠들을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초기 이통 3사는 각기 다른 방식의 무선 인터넷 플랫폼을 운영했다. 때문에 개발자는 3가지 버전을 따로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랐다.


게다가 외산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어 로열티 문제도 부상했다. 퀄컴 브루, 썬마이크로시스템즈 J2ME 등의 라이선스 비용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특히나 통상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문제를 벗어나 국내 단일 플랫폼 표준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정부 주도로 2001년 국책사업을 통한 표준 단일 플랫폼 개발이 추진됐다. 그 결과 통합 무선 인터넷 플랫폼 ‘위피(WIPI)'가 출범했다.


2005년 4월 1일 정보통신부는 국내 무선인터넷산업을 진흥한다는 목적하에 휴대폰에 '위피' 시스템 탑재를 법으로 의무화했다.1) 즉, ‘위피’가 없다면 국내서 단말 판매가 금지된다. 


'위피'는 초기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국내 이통시장뿐만 아니라 단말 시장까지 외부로부터 단단하게 보호해 줬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제조사의 시장점유율은 80%에 육박할 정도로 대단했으나 외산폰에게 우리나라는 무덤과 다를 바 없었다.


'위피'는 초기 순항했으나 결과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통합이 지속됨에 따라 권력이 창출되고, 이는 갈라파고스 문제를 일으켰다. 고집이 심하면 아집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3G 국내 휴대폰 시장은 이통사가 중심이다. 단말 공급도 이통사가 했지만 콘텐츠도 이통사가 배급했다. 해외에서는 개발사와 함께 전문 공급자가 있었지만 국내서는 이통사가 곧 공급자였다. 개발자가 콘텐츠를 개발하면 이통사가 결제방식을 더해 포털에 올리는 절차를 밟았다.


즉, 이통사 고객은 단말에 상관없이 누구나 동일한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고, 개발자도 여러 표준에 얽히지 않고 하나에만 매달려 개발을 완료할 수 있었지만, 이는 통신사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공급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이통사가 곧 진입장벽 구실을 한 것.


이통사는 콘텐츠 유통 경로를 단숨에 쥘 수 있게 됐다. 이 안에 속해있는 개발자는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바깥쪽에 있는 개발자는 이 장벽에 막혀 제대로 된 서비스조차 묘연했다.


또 다른 문제로 국내서 유통되는 휴대폰은 법적으로 '위피'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했기에 외산 휴대폰의 국내 진입이 매우 어려웠다.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되는 역효과가 발현된 셈이다. 자연스럽게 경쟁에서 도태되니 단말 가격 인하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 같은 ‘위피’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단말이 바로 애플의 ‘아이폰’이다. 위피는 기존 외산 플랫폼과의 유사성으로 인해 라이선스 문제가 발생하고, 이통사별로 일부 다른 표준들이 뒤섞이는 등 시장의 역효과가 발생하면서, 경쟁을 둔화시킨다는 지적을 받아오면서 존립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는 2009년 4월 위피 도입 의무화를 폐지하기에 이른다.2) 우리나라 ‘아이폰 쇼크’의 배경이 완성된 시점이기도 하다.



1) 백재현 기자, <'위피', 4월 1일부터 의무화>, 아이뉴스24, 2005. 4. 1.

2) 황지혜 기자, <1일 `위피 탑재 의무화` 폐지>, 전자신문, 2009.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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