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짝사랑과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까지의 여정을 글로 담았다.
(자의적 타의적 철벽녀가 된 이유 (1)-(4))
글을 쓰며 학창 시절 동안 내면의 힘이 약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고 나를 구원해 줄 구원자를 찾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다 나는 또래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을 좋아한 적도 많다는 걸 깨달았다.
알게 모르게 야금야금 좋아해 왔다. 그 여파는 어떻게 되었을까.
현재 나는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이 심리상담을 통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많았다는 것과 아버지로부터 채워지지 않은 인정욕구가 다른 곳으로 뻗쳐나갔다는 걸 알았다. 젊은 남자 선생님들을 좋아했던 건 공부를 잘함으로써 인정을 얻고 이성적인 관심도 받고 싶었던 것 아닌가 싶다.
(1) 초 2 담임 선생님
이 선생님을 좋아한 건 아니고 내가 2학년에 전학 가서 몇 개월 동안 담임한 초등학교 첫 남자 선생님이다. 90년대 후반, 아이들이 무척 많을 때라 한 반에 40-50명까지 됐던 것 같다. 얼마나 아이들이 많았냐면 아주 잠깐이지만 오전반 오후반 나눠 수업을 할 정도였다. 학기가 끝나갈 즈음에 나 포함해서 전학을 많이 왔던 것 같다. 선생님이 나를 알고 계셨을까... 잘 모르겠다. 좀 무서우셨고 아이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도 무관심으로 대하셨던 기억이 있다. 이 선생님으로부터 남자 선생님에 대해 무관심하고 냉담하다는 첫인상이 박혔다.
(2) 초 6 담임 선생님
또 다른 학교로 5학년 때 두 번째 전학을 간 후 6학년 때 만난 담임선생님. 이 쯤은 내 사춘기였다. 전학 가서 친구 사귀기 어려워 나는 내성적인 아이가 되었고 내 마음을 부모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표현하지 못하고 점점 곪아갔다. 6학년 담임 선생님은 군 제대 후 바로 부임하셨는지 군대식 스타일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단체 기합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았고 나의 반항심도 극에 달했다. 그러면서도 그쯤 유행하던 마시마로나 졸라맨, 그리고 엽기적인 동영상 같은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자주 보여주셨다.
우리 반 1등을 하는 엄청 예쁜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나는 선생님이 알게 모르게 그 아이를 편애한다고 생각했다. 질투가 나면서도 외모와 성격, 공부까지 완벽한 아이라 질투를 티 내지도 못하고 (질투한다고 인지하지도 못하고) 아이들을 차별한다며 선생님께 분개했었다. 컴퓨터 시간에 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와 내 친구는 익명으로(?) 선생님께 편지를 보냈다. '차별하지 말아라, 단체기합 주지 말아라'라는 명령조의 말들을 썼다... 그것도 '당신=You'이란 호칭을 쓰면서.
권위의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섣불리 반발할 수 없었던, 그러면서도 선생님의 관심을 받고 싶었던 모순된 시절이었다.
선생님이 교내 수학시험 성적이 좋다며 영재교실에 들어가 보는 것 어떻겠냐고 권유하셨을 때 나는 그 선생님이 싫어 방과 후 컴퓨터 수업을 들어야 한다며 단칼에 거절했다. 부모님께 상의도 안 한 채. 그 수업을 들었으면 내가 외고가 아니라 과고를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3) 중학교 1학년 한자 선생님
중학교 1학년 때 한자 선생님을 1년 내내 좋아했다. 선생님들 중에 가장 젊으셨다. 마찬가지로 이분도 까칠하셨다. 그래도 담임이 아니니 선을 지키며 까칠하셨다. 말도 못 걸고 그냥 수업시간에 재밌게 수업하는 게 좋아서 나도 좋아했고 열심히 공부로 보답했다. 이때부터 반 1등을 하기 시작했으니 뭐 상부상조였다.
(4)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
특목고를 갔다. 그곳에 20대 후반? 30대 초반? 이신 수학선생님이 계셨다. 어렸을 때는 형편이 어려웠지만 서울대 수학교육과와 ROTC를 나오신, 똑똑한 분이었다. 이분 덕에 수학이 좋아졌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3년 내내 유학반 수학을 담당하셨는데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으셨다. 그런데 수학공부를 하며 모르는 내용을 수업 끝나고 여러 번 여쭤봤는데 점점 내 질문을 피하시는 게 느껴졌다. 내가 시험이나 입시와는 관련 없는, 교과서에 나오는 증명 과정이 궁금해서 질문했는데 학생들 대학 원서 봐주시고 추천서 써주셔야 하니 슬슬 피하셨다. 나도 눈치껏 상황에 맞게 질문했어야 하는데 날 피하시는 게 느껴지니 오기로 더 질문하다가 상처가 더 커졌다.
고 3 때 선생님이 자기한테 추천서를 받으려면 자기와 어떤 이벤트가 있었고 무슨 과목을 좋아하고 등등을 적어서 이메일을 보내라고 하셨다. 나는 미국 대학 원서를 안 냈기 때문에 해당사항이 없었는데 선생님께 그간 서운했던 것들을 몇 페이지가 될 정도로 적었다. 결국 보내지는 못한 것 같은데 그렇게 애정과 함께 아쉬움과 원망이 뒤섞이게 됐다.
선생님을 좋아하던 시절은 공부에 스트레스가 많던 시절이었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고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거에 목숨 걸던 시절. 약해진 멘탈을 짝사랑 상대에게, 그리고 젊은 선생님에게 의탁하던 시절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열정으로 하루하루 힘내서 공부하는, 공부의 고됨을 잃어버리는 시간이었다.
예전에는 선생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가르치는 게 업이고 학생은 공부하는 게 업이니 서로서로 고마울 게 뭐 있을까, 생각했다. 감정이 메마르고 숫기도 없을 때였다. 지금은 가르치는 사람의 고생과 열정을 알기에, 열심히 수업준비 하시고 가르치신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당장 우리 아이들을 매일매일 봐주시는 어린이집 선생님들께도 무한 감사하다...
이전에 짝사랑 글을, 그리고 이번 글을 쓴 후에 계속 옛날 짝사랑 상대와 선생님 꿈을 꾼다. 꿈속에서 많은 말을 하지 않고 과거의 일이 반복되거나 비슷한 감정을 느낄만한 일이 떠오른다.
그래도 글을 쓰고 꿈에 한번 나와주면서 과거의 나를 한번 더 마주하고 그런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시간을 보낸다. 나를 용서하고 상대를 용서하고 마음속에서 놓아주는 시간을 가진다. 이후에는 더 마음이 편해지길 바라며..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Tra Nguy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