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수 있는 용기

by 캔디스

단골 카페에 비치된 천주교 신부님이 쓴 책 <상처와 용서>에서 본 내용이다. 진정한 용서는 상대의 잘못을 덮어두고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이 상처받았음을 인정한 후 그럼에도 용서하는 것이라고 한다. 용서는 상대방의 잘못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지금껏 할머니 엄마 아빠 오빠의 잘못을 미화시키고 그 상황을 헤아리며 '그래 우리는 다 너무 힘들었어. 엄마 아빠 오빠 할머니 입장도 이해 돼', 라며 그들의 잘못을 축소시키려는 시도를 중단한다.


나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준 할머니는 이미 20년 전 돌아가셔서 나는 사과를 받을 수 없다. 그분은 본인이 나에게 어떤 잘못을 하셨는지, 그게 지금까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천국에 가셨을 때 회개하고 미안해하시지 않았을까.


할머니가 나에게 뭘 잘못하셨는지 그 영향이 무엇인지 철저히 직면한다. 아들만 귀하다고 손녀와 손자를 차별한 건 잘못한 일이다. 며느리 귀한 줄 모르고 자기 아들만 귀하다고 며느리를 타박한 건 잘못한 일이다. 엄마는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버거워 회사를 다니셨고 나는 집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대신 매일 화를 내는 사람 옆에서 눈치 보며 자존감 낮은 아이로 컸다.


그런 할머니를 용서한다. 일차적으로는 나를 위해서 용서한다. 더 이상 미움을 품고 그 상처를 지닌 채 살지 않기 위해. 이 상태에 머무르며 주저앉아 피해자로만 남지 않기 위해. 할머니의 시선을 내재화하여 자녀들에게 똑같이 전달해주지 않기 위해.


또 한편 할머니가 받았던 상처는 얼마나 컸을지 살아왔던 시대는 얼마나 매서웠을지 상상한다. 할머니도 아들을 못 낳았다고 시어머니가 타박했다고 한다. 셋째까지 딸이었으면 결혼을 파하고 친정에 돌아갔어야 하는데 결국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그렇게 낳은 아빠는 할머니의 친정이 있는 익산에서 낳았다고 이름이 재익이 되었다고 한다. 아빠를 낳고 얼마 안 지나 6.25 한국전쟁을 맞아 얼마나 무서우셨을까. 불안했던 할머니, 두려웠던 할머니를 상상한다.


차별의 피해자로만, 상처의 피해자로만 살고 싶지 않다. 거기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다. 차별받기 이전과 같을 순 없겠지만, 나에게 할머니의 차별은 유년시절 나의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 사건이지만 30대가 된 지금이라도 남은 내 인생을 위해 변화되고 싶다. 할머니를 용서하고 싶다.


그래야 나도 조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와 아픔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을 테니까.


나 또한 내 말과 행동을 돌아보며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주기를 멈출 수 있을 테니까.



사진: UnsplashEkaterina Shakhar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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