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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현 Jun 03. 2019

오락실에서


딸과 가끔 오락실에 간다. 아직 어리고 키도 작아서 할 수 있는 게임보다 못하는 게임이 많지만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때 시간을 보내기 제격이다. 요즘 오락실은 비디오 게임만 열 지어 있던 예전과 달리 농구나 에어 하키 같이 제법 다양한 종류의 게임이 있어 아이와도 함께 즐길만하다. 한 번은 집 근처에 새로 생긴 볼링장에서 우리 차례를 기다리며 다트 게임도 했다. 다트판 높이가 아무래도 성인 기준으로 되어 있어, 의자를 하나 가져와 그 위에 서서 던지게 해 줬다. 가장 자주 하게 되는 건 역시 인형 뽑기이다. 싸구려 인형, 뽑아봤자 뭐하나 하는 생각이 더 크지만, 딸이 좋아하기도 하고 그나마 할 수 있는 게임이기도 하다. 전에는 돈 낭비라 생각해 뽑아 볼 생각도 안 했고 하더라도 징하게 인형을 들어 올리지 못했지만, 딸과 여러 번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 작은 인형 정도는 가끔씩 뽑을 수 있게 되었다.



오락실에 다니지 않는 착한 소년이 있었다. 오락실에 갔다가 학생주임 선생님에게 걸린 친구들이 복도에서 오리걸음을 하는 것도 봤고, 어머니에게 걸리면 더 무서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물론 친구들을 따라서 몇 번 가 보긴 했지만, 어두컴컴한 분위기에 시끄러운 게임 소리, 게임 화면에 눈을 고정하고 얼굴이 발그레 올라있는 친구들과 형들, 동전을 바꿔주며 아이들을 감시하는 사장 아저씨의 무표정한 눈동자, 어느 하나 적응하기 쉬운 게 없었다. 스트리트 파이터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소년은 아무리 레버를 돌려도 ‘아도겐’이나 ‘오~류겐’같이 원하는 기술은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분위기에 적응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레버를 어떻게 돌려야 하는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혹여나 무서운 동네 형들에게 뒷골목으로 끌려가 괜히 맞거나 돈을 빼앗길 것 같은 조바심까지 들었고. 오락실에 다닐 수 없는 완벽한 조화. 선생님과 부모님의 말에 벌벌 떨고, 동네 형들을 무서워하며, 전자오락에 소질도 없는.

아도겐과 오~류겐


중학생이 되자 친구들은 슬슬 당구장에 출입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범생이였던 그 소년은 이번에도 역시 같은 이유로 당구장에 가지 않았다. 특히 소년의 상상 속 당구장은 툭하면 싸움이 벌어지고 과산화수소로 탈색한 형들과 괜한 시비가 붙는 장소였다. 더구나 스트리트 파이터를 못했던 것처럼, 당구를 친다는 건 스스로도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후에 대학생이 되어 당구를 처음 쳤을 때도 역시나 다른 누구보다 서툴렀고 한두 번 쳐본 뒤 일찌감치, 깔끔하게 포기했다.


소년의 대학 시절은 또 ‘펌프’의 시대였다. 고등학교 시절 DDR로 시작된 발로 버튼을 밟는 음악 게임은 2000년대 펌프(Pump it up)의 등장에 단순히 스텝만 밟는 게 아닌, 잘하는 사람들은 일명 ‘퍼포먼스’까지 하는 국민 게임이 되었다. 어딜 가도 ‘웃기지 마라, 제발 좀 가라!’라고 외치는 노바소닉의 노래가 들렸다. 이 게임 역시 처음에 한두 번 올라가 보고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다. 바보 같은 몸동작을 다른 사람 앞에 드러 낼 자신감은 이후에도 차마 생기지 않았다.


오락실에 다니지 않은 유년기는 삶 전반에 생각보다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친구들과 스트리트 파이터를 같이 못하던 국민학생은, 함께 짜장면을 시켜 먹으며 밤새 당구를 치는 추억 역시 만들지 못했고, 그렇게 점점 더 소심하고 소극적으로 변한 소년에게 펌프라는, 온몸으로 하는 게임은 감히 넘보지도 못할 벽이었다.  


소년이 그림자의 밖으로 벗어나게 된 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서다. 이제 공중 화장실에서 오줌을 눌 때 방귀가 마려우면 참지 않고 뀔 수 있는 뻔뻔함도 갖추었으니, 게임을 못하는 건 더 이상 부끄러운 축에도 못 낀다. 그리고 소년은, 이제 아저씨가 됐고 무엇보다 아빠가 된 소년은, 딸에게 본인의 소심함과 소극적인 성격을 대물리고 싶지 않다. 오락실에 있는 오토바이도 함께 타고, 자동차 경주를 하며 핸들도 함께 돌리고, 코인 노래방에 들어가서 ‘사랑을 했다’도 함께 부른다. 딸이 조금 더 커 펌프를 하고 싶다고 하면 함께 할 마음의 준비도 마쳤다. '아빠 왜 이렇게 못해!'라는 말 역시 들을 준비가 되어 있고.


한 번은 해적선에서 몰려나오는 좀비에게 총을 쏴서 죽이는 게임을 하는데, 너무 자극적인 화면에 놀라버린 딸을 안아서 달래줘야 했다. 딸을 품에 안은 소년은, 주눅이 들어있는 어린 시절의 자신 -어두컴컴하고 시끄러운 오락실에서, 머리를 탈색한 날라리 형들이 있는 당구장에서, 못난 몸 짓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펌프장에서-, 정말 여전히 어렸던 자신을 꼬옥 안아주는 기분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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