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을 고른다는 건 조금 번거롭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선물을 자주 주고받는 편은 아니다. 아내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몇 번 선물을 하기도 했지만, 어느샌가 뜸해졌다. 일단 아내가 나에게 선물을 하지 않는다. 하하. 꼭 그래서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점점 특별한 날도 서로 어물쩍 넘어간다. 친구끼리도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것도 어색하고, 사실은 그보다는 선물을 고르는 노력과 정성을 발현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메신저 앱의 선물하기 기능으로 무심한 척 아이스크림 쿠폰 같은 걸 주고받기도 하지만, 왠지 선물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하다.
가격을 제외한다면, 선물을 고를 때 가장 고민인 지점은 아마도 ‘실용성’과 ‘취향’이 아닐까 싶다. 너무 실용적인 건 선물 같지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실용적이지 않은 건 그냥 예쁜 쓰레기가 될까 무섭다. 취향도 그렇다. 받는 사람의 취향을 우선 고려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나의 취향, 나의 안목까지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실용성과 취향, 이 둘의 조합 역시 만만치 않다. 선물을 고르는 게 설레기도 하지만 막상 뭘로 할까 고민하다 보면 그냥 다 귀찮아지는 이유다.
가령 실용성만을 추구한 선물의 예는 이런 것이다. 친하게 지내는 회사의 차장님이 결혼 20주년 선물로 부인에게 최신형 드럼 세탁기를 선물했다는 것이다. 형수님이 ‘이 딴 게 무슨 선물이야!’라며 차장님 등짝을 내리 치는 게 눈에 선하다. 필수 가전제품에 취향 따위는 들어갈 자리가 별로 없다. 싼 걸 살지 비싼 최신형을 고를지의 문제다. 아이스크림 쿠폰을 고를 때도 받는 사람이 어떤 맛을 좋아할까 정도의 고민은 할 텐데, 이런 선물이라면 차라리 우리 부부처럼 그냥 어물쩍 넘어가는 게 나을 것 같다.
실용성과 취향 모두 고려했지만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내 동생이 나에게 줬던 턴테이블. 스피커가 내장된 레트로한 디자인의 턴테이블과 알지도 못하는 락밴드의 LP 한 장이었다. LP판은 그냥 커버가 예뻐 보이는 걸로 골랐다고. 동생과 나는 사실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닌데, 동생은 내가 음악 듣는 걸 퍽이나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다. 어렸을 때, 테이프를 열심히 사모으던 걸 봤기 때문일 것이다. 동생은 디자이너인데 아기자기한 피규어나 장식품으로 집안을 예쁘게 꾸미고 산다. 나름 힙하다고 할까. 타지도 못하는 핫핑크색 크루저 보드를 장식용으로 두는 타입? 그런 동생이 봤을 때 음악을 좋아하는 내게 턴테이블은 예쁘기도 하면서 적당히 실용적이기도 한 아이템이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음악 듣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 집이 잡지에 나오는 집처럼 예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동생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게 있다. 우리 집에는 아기가 있다는 것. 지금은 초등학생이 되긴 했지만, 집을 깔끔하게 가꾸며 살기는 역시 무리다. 거실에서 공놀이도 하고, 심지어 줄넘기도 하는데 떨어뜨리거나 부서질 위험이 있는 장식품을 위한 공간이 나올 리 없다. 그리고 LP판.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월정액제 스트리밍 서비스도 이용하지 않는다. 유튜브와 스포티파이, 그리고 각종 라디오 어플로 음악을 듣는다. 단지 장식을 위해 LP판을 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동생이 우리 집에 다시 왔을 때, 작은 방 한쪽의 턴테이블에 쌓인 먼지를 손가락으로 살짝 훔치는 모습을 봤다. 선물은 때로, 준 사람은 서운하게 하고 받은 사람은 미안하게 만든다.
물론 내가 한 선물이 실패한 경우도 있다. 몇 달 전 친구에게 준 결혼 축하 선물이 그러했다. 나는 그의 결혼식에서 사회를 봤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그와 만나기로 하고, 퇴근 후 회사 근처 백화점에 잠깐 들렀다. 작고 귀여운 머그잔 한 쌍을 사기로 마음을 먹고 주방용품과 그릇을 파는 꼭대기층까지 올라갔다. 먼저 유럽의 예쁜 마을 그림이 있는 접시나 컵을 파는 매장이 보였다. 마음에 드는 작은 머그잔의 가격을 물어보고 다음 매장으로 갔다. 가장 염두에 둔,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의 도자기를 파는 가게다. 하필이면 점원이 없어 한참을 기다렸다. 옆 매장에 있던 분께서 행사장에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점원분은 바쁘셨는지 생각보다 늦게 오셨다. 안 그래도 회사에서 조금 늦게 나온 나는 약속시간에 늦을까 조급해졌다.
깔끔하고 아담한, 그러니까 내 취향이기도 하고 그 친구도 마음에 들어할 것 같은, 그 컵의 가격을 물어봤다. 점원분은 가격을 말해주더니, 그 제품은 세일이 되지 않는다며 크리스마스 한정판으로 나온 다른 컵을 추천해 주셨다. ‘선물용으로 잘 나가요’라는 말과 함께.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다. 일단 사이즈가 너무 컸고 (내가 자주 쓰는 맥주잔보다 컸다), 컵에 그려진 화려한 그림도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한정판’이라는 말과 세일 전의 정가를 보니 지금은 이 컵을 사야 손해가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약속시간은 나를 재촉했다.
‘그걸로 할게요’ 말하는 순간, 점원은 빠른 손놀림으로 포장을 시작했다. 포장을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그 컵을 고른 것을 후회했다. 내 취향도 아니었고, 친구의 취향도 아닐 것 같았다. 그 매장에서 십여분 동안 점원을 기다리며 시간을 써버린 게 판단을 흐리고, 전혀 생각지도 않은 걸 사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도 이미 시작된 포장 작업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나도 늦긴 했지만 그도 바빴을 것이다. 빨리 포장을 끝내고 행사장으로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이미 마음에 들지 않는 컵이 들어있는 선물상자를 들고 터덜터덜 친구를 만났다. 선물하고 돌아오는 내내 기분이 영 산뜻하지 않았다. 모를 일이다. 내 마음과 다르게, 그나 그의 아내는 내 선물을 마음에 들어했을지도. 그래로 나는 지금도 물을 마실 때마다, 커피를 내리거나 맥주를 따를 때마다, 그 커다란 컵이 친구 신혼집의 제일 높은 찬장 한구석에 처박혀있는 상상을 한다.
선물을 고를 때는 ‘실용성’과 ‘취향’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나에게 더 필요한 건 백화점의 마케팅에 넘어가지 않는 민첩한 판단력이었다. 선물은 받는 사람뿐 아니라 주는 사람의 기분도 못지않게 중요하니까. 마케팅에 넘어가 충동적으로 산 선물은 주고서도 영 개운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