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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현 Jun 07. 2019

차는 쪽, 차이는 쪽

한 사람과 오랜 연애를 거쳐 결혼까지 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왠지 믿음이 간다고 할까. 한번 맺은 관계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알고, 성격도 크게 모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 같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어쩌다 보니 한 번의 연애와 한 번의 결혼을 하기도 할 것이고, 누구보다 성격도 좋고 관계를 소중히 할 줄 알아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여러 번의 연애, 혹은 여러 번의 결혼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내 생각이 그리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주변에서 이런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대인관계가 좋은 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그런 사람 중 하나는 ‘나는 한번 알게 된 사람은 절대 먼저 버리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회사에서 가장 -단연코 ‘가장’인데- 성격 좋고 사람 좋기로 소문이 나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결혼 전에 몇 번의 연애가 있었다. 헤어질 때 나는 대부분 ‘차는’ 쪽이었다. 자랑도 아니고, 잘나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저 혼자서 쉽게 지쳐버리고, 어딘가 모난 구석이 있는 성격 때문이다. 그때는 내가 그렇다는 것조차 몰랐다. 주변에서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건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날을 새는 정도의 흔한 일이었고, 나 또한 그 많고 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라 생각했다.


부끄럽지만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준비할 때도 여러 번 헤어지자는 얘기를 꺼냈다. 나보다 모나고 뾰족한 어머니로 인해 결혼 과정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 힘든 사람은 아내인데,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쉽게 이별을 얘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고, 더 힘든 시집살이가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비로소 나와 내 가족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정상의 범위를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지만, 우리 가족, 특히 어머니의 성격은 ‘보통’의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외가 식구들도 면면히 생각해보면 만만한 사람이 없다. 신경질적 기질에, 연락을 끊고 지내는 이모, 삼촌도 있다. 그런 피는 내 몸에도 흐르고 있었다. 조금만 힘들면 짜증부터 부리고,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도 않는다. 고등학교 때 어떤 친구는 내가 우리 반에서 제일 ‘쿨한 애’라고 표현했는데, 다른 말로 하자면 ‘참 이 없는 애’ 정도가 될 것이다. 네 살 터울의 동생과도 중학생이 된 후로 데면데면 지내고 있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반이 바뀌면 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친구는 단 한 명도 없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아내에게도 쉽게 신경질을 내고, 갓난아기인 딸에게도 순간의 ‘욱’을 참기 힘들었다. 말하자면 이런 ‘거지 같은’ 성격 때문에, 연애할 때도 항상 먼저 헤어지자고 하는 쪽은 나였던 것이다. 히스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키도 크고 잘 생긴 친구가 하나 있다. 여자 친구를 사귀지 못할 걱정은 해줄 필요가 전혀 없는 그런 녀석. 그런데 그 친구는 항상 ‘차이는’ 쪽이다. 차이는 이유까지 시시콜콜 알 수는 없으나, 그 친구는 그렇게 이별을 하면서 많이도 힘들어한다. 나처럼 매정하게 차 버리고, 금방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는 인간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한번 맺어버린 관계를, 그 속에서 주고받았던 정을, 함께 했던 시간을, 쉽게 버리기 힘든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 좋다. 나와는 다른 사람. 마음속에 따뜻한 구석이 있는 사람. 한 사람이랑만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하는 사람보다 훨씬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아파해 봤으니까, 다른 사람의 아픔도 더 잘 이해할 것이다.  

 

갓난아기였던 딸이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도 들어가면서, 나도 조금씩 내 모습을, 삐뚤어진 성격을 고쳐 나간다. 딸에게 예전 같았으면 쉽게 신경질을 부릴 일 ; 당근을 골라내고, 하루 종일 티브이만 보고, 어질어진 장난감을 정리하지 않아도, 이제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다. 성격이란 게 하루아침에 싹 바뀌기는 힘든지라, 가끔 딸에게 말도 안 되는 화를 낼 때도 있고, 아내에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때도 있지만, 빈도는 줄고 있다. 나와 다르게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아내는 내가 아직 멀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많이 변했고 더 변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나도 ‘차는’ 쪽 보다는 ‘차이는’ 쪽이 되고 싶다. 아내와 딸에게 내 온기를 모조리 전하고 싶다. 듬뿍 정을 주고, 동글동글 지내고 싶다. 자기 전에는 졸린 눈을 비비며 책도 읽어주고, 아침에는 실컷 뽀뽀도 해야지. 피치 못하게 어느 한쪽이 상처를 받아야 한다면 그건 내 쪽이고 싶다.

  

물론 가족에게 차이는 일 같은 건 결코 없어야 하겠지만. 이왕이면, 차지도 차이지도 않는 게 베스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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